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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거운언니 Dec 02. 2023

나쁜년이긴해도 죽일년은 아니네

 남편 외도를 알고 이혼을 결심한 다음 날 마산에 있던 고향 친구를 부산으로 불렀다. 사실 내가 불렀는지 원래 약속했던 날이었는데 공교롭게 그렇게 된 건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각자 아직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키즈카페에서 만났던 것만은 정확하게 기억한다. 눈은 아이들에게서 떼지 못 한 채 우리는 심각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주고 받았다.

 어쩌면 평소보다 우린 더 말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덤덤하게 새벽에 있었던 일련의 일들을 일러주고 한동안 말이 없었던 것 같다. 잠시 아이들을 바라보다 친구가 입을 뗐다.

 “결혼 생활 동안, 오빠가 너한테 잘해줬다면 사실 애들 봐서라도 너한테 한번쯤 참으라고 말했을 것 같아. 근데.. 나는 너한테 그런 말 못하겠다. 그 년이 나쁜 년이기해도 죽일년은 아니네. 이혼하게 해줘서 한편으론 고맙다.”

 친구의 말은 오래도록 나의 위로가 되었다. 아이들을 위해 참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친구가 에둘러 해줬던 것 같다. 그 간 남편의 횡포를 참으며 살았던 나를 친구들은 꽤 많이 안쓰러워 했었다. 

 산후 조리원은 비싸다고 안 보내주려고 하면서 자기 등에 하는 문신은 의논 없이 덜컥 200만원이란 돈을 쓰고도 싸게 했다고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멀리 사는 친구들에게 구구절절 결혼해서 사는 이야길 하진 않았었지만 어디 털어 놓을데도 없던 내게 친구들은 유일한 대나무 숲이었다. 참다 못해 굵직하게 털어놓는 이야기들이 어쩌면 더 안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친구가 해준 그 위로 덕분에 상간녀를 조금은 덜 미워할 수 있었다. 어쩔수 없는 열등감에 몸서리치게 괴롭다가도 어쩌면 그 덕분에 끔찍하게 참아오던 결혼 생활을 끝낼수는 있었으니까.

 남편이 돈이 없어도 괜찮았고, 폭언을 쏟아 부어도 이해했다. 그저 사람이 힘들면 그럴 수 있다고 도리어 안쓰러워도 했었다. 유일하게 딱 하나 외도 만큼은 못 참는다 했는데 그렇게 딱 하나 그 신뢰를 무너뜨린 대가로 삶은 모든 걸 바꾸어 놓았다.

 바람은 남편이 폈는데 대가는 내게 더 가혹하다는 것이 짐짓 억울했지만 결혼에 대한 선택은 내가 했었기에 이혼에 대한 결과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두렵지만 내가 준비해야할 것들에 대해 빠르게 알아보고 준비하기로 했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이혼이 힘들어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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