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위원회
이혼하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자 덜컥 겁이 났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경우 남편과 이혼한 사실을 말해 놓았기에 신경 쓸 것이 많이 없었다. 선생님들은 나를 아이들의 엄마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같이 살고 있지 않아도 어떤 일이 생기거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아이들의 일을 가장 먼저 들을 수 있었고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는 달랐다.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했고, 나 또한 초등생 학부모로서 낯설고 어려웠다.
사실 아이들을 직접 돌보고 있다면 이런 걱정 따윈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등하교도 나의 몫이 아니었고, 아이의 학교생활이 어떤지 , 매일 알림장에 뭘 적어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창 중요한 시기에 아이가 주눅 들지는 않을지, 이대로 멀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지 겁이 났다.
엄마가 함께 살진 않지만 너한테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너를 위해 어떤 것들을 하고 있는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학부모 운영위원회 학부모 위원을 선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하겠다고 했다.
처음엔 학부모운영위원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학교에 대한 여러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을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서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아이가 학교에서 소풍을 언제 가는지, 체육대회가 언제 열리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직접 참여해 보니 학부모 위원이 된다는 것은 아이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교육의 전반적인 모든 것에 관심과 두고 참여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학부모 위원회에서는 주기적으로 회의를 한다. 교장선생님, 교감 선생님 그리고 각 담당 선생님과 함께 진행한다. 학부모 위워은 회의에서 나오는 안건들을 속속들이 검토하고 의견을 내며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소회의 및 그룹에도 참가해야 한다. 소그룹들은 중복 참여가 가능했고, 자발적 참여였지만 필수 인원이 있어 한 개 이상은 꼭 참여해야 했다. 나는 방과 후 교사 선정 면접에 참여하기도 했고, 아이들 급식 업체 방문 후 설문에 참여해 업체를 결정하는 일도 했다. 안건은 주로 선생님들이 계획하셔서 가져오셨다. 결정에 대해서는 학부모 위원들의 의견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사실 나는 착실하고 열심히 하는 학부모 위원은 아니었다. 한창 배달대행업을 하고 있던 때라 바빠서 참석을 못 할 때도 있었다. 회의가 열리기 전 아이를 통해 보내오는 회의 안건 출력물을 확인도 못 하고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심지어 아이를 보지 못해 회의 출력물을 아예 못 가져갈 때도 있었다. 대게 다른 학부모 위원들의 출석률도 나와 비슷했지만 정말 학교에 관심이 많고 열정적인 학부모님을 볼 때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의 학교 사정과 운영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너무 바빠 소풍을 챙기지는 못해도 언제쯤 소풍을 가고 어디로 가는지 미리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 학교생활에 관심을 놓지 않는 엄마라는 점에서 내 죄책감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급식 모니터링을 위해 학교에 방문해서 아이의 얼굴을 한 번 더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아이가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게 되자 학교 운영위원은 더 열정 있고 아이의 학교를 함께 발전시켜 주실 수 있는 다른 분들에게 자리를 넘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아빠와 할머니는 학부모 위원을 계속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일도 너무 바빴고, 잘할 수 없으면 안 하는 게 맞단 생각에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학부모 위원 참여가 부족해, 한 해 더 부탁한다는 전화였다. 그렇게 1년을 더 활동하게 되었고, 아이가 3학년이 되자 또 같은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3년 내내 아이 학교 ‘학부모 운영위원’을 하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아이 학교에 관심을 가지고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번거롭고 힘들었다. 하지만 아이가 다니는 학교 교실에서 회의를 진행하다 보니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 대한 친밀감과 동시에 아이와의 강한 유대감도 느껴졌다. 아이의 주변을 아는 만큼 아이와 이야기할 거리도 늘어났다.
“교실 올라갈 때 보면 계단에 좋은 글귀들을 써 놓았잖아? 넌 그중에 어떤 글귀가 제일 마음에 와닿아?” 하고 물으면 아이의 볼에 발그레 생기가 돌았다.
초등학교 학부모 위원은 학교에 모집 공고가 떴을 때 신청서를 넣으면 할 수 있다. 학기 초에 아이가 학교에서 지원서를 가지고 오거나 학교 홈페이지나 하이클래스 같은 학급 소통 앱을 통해 모집 기간을 알 수 있다.
지원자가 많아서 학부모 위원이 못 되더라도 다른 활동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학부모 급식 도우미’, ‘등교 도우미’, ‘도서 도우미’ 등도 있다. 아이와 학교에서 마주치면 아이는 환한 미소로 ‘우리 엄마다!’하며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든든해한다. 그 미소를 통해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최근에서야 초대받았는데, 요즘엔 앱으로 학교 가정통신문과 알림장 확인이 가능하다. 초대 코드를 선생님께서 보내주시니 만약 받지 못했다면 학교에 문의하면 된다. 매일 아이가 세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학교에서 날아오는 통신문이나 알림장, 앨범, 자유게시판 등으로 충분히 아이의 학교생활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알 수 있다고 해도 학부모 운영 위원으로서의 활동은 또 다른 의미이므로 적어도 1년 정도는 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