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꿈 이야기
내가 가진 첫 번째 꿈은 마술사였다. 마술사. 일곱 살에 어울리는 꿈은 제법 아니었는데, 나는 대통령이며 영웅이며 하는 것들은 입에도 담지 않는 아이였다. 내 손 안에서 작은 마술을 부릴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던 아이였다. 차라리 프로 당구 선수가 되어 묘기 당구를 기막히게 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꽉 막힌 입시 생활에서 내가 임의로 정해둔 꿈은 선생님 정도였다. 그게 제법 어울렸다. 나는 잘하는 분야는 곧잘 하는 학생이었고, 어머니를 닮아 가르치는 쪽에도 소질이 있는 학생이기도 했다. 그러나 많이 가르쳐 친구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나니 남는 건 없었다. 나는 가르침을 한 게 아니라 호구를 당했다-에 가까운 무언가를 했었다. 나는 밥 한 번 사겠다는 말의 무게를 19살에 깨달았다.
어쩌다 보니 발 닿게 되어 온 국어국문학과. 이젠 꿈은 모르겠고 돈이나 많이 벌고 싶다. 갓 입학 당시 주변에서 들려오는 뭘로 벌어먹고 살 거냐는 질문. 나는 항상 세모눈을 치켜뜨고 응수하기 바빴다. 어련히 알아서 벌어먹고 살게요. 내 손금은 뭐라도 될 손금이라고 했단 말이에요. 타고난 재능은 결국 빛을 발하게 된다니까요.
절절하게 세상에 내 포부를 외치기도 수십수백 차례. 나는 이제 꿈은 모르겠고 삶은 어려운 어른이 되었다. 따뜻한 물 잘 나오는 집에서 배곯는 일 없으면 그걸로 되는 거지. 그래도 아이돌 같은 반짝거리는 삶이 좋은데? 모두에게 관심을 받고, 휘황찬란한 것들을 쥐고 사는 삶을 꼭 살고 싶다가도 - 거울을 보면 살이 너무 많이 쪘다. 운동해야지, 운동해야지. 꼭 운동해야지. 그 말을 반복하는 것으로는 이미 나를 이길 자가 없다.
그러다가 저번 주부터는 계절을 갈듯 몸살이 훅 왔다. 하루 이틀 하면 얼추 낫던 몸살도 3일, 4일로도 모자라서 진통제를 스무 알 가까이 먹고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나는 어제 이 시간 아프지만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아이돌 말고, 아프지 않은 삶을 빌었다. 운동으로 잘 가꿔진 몸도 아니고, 멋진 미소와 마스크도 아니고, 지긋지긋한 두통 없는 순간만 바랬다. 무슨 큰 마음을 먹고 살아왔던 걸까. 내 몸 간수나 잘하는 삶을 좀 살지. 후회가 번뜩 밀려왔다.
그렇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나는 명에도 없는 큰 맘을 먹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슬프려나 싶다. 그래도 눈 감으면 잘 자는 그런 삶을 살고만 싶다, 나는. 지루하고 의미 없는 날들이 내가 바랬던 날들이었다. 내가 만족스럽지 못하게 쳐다보던 그제는 오늘 내가 바라는 날이다.
참 알량하기도 하지. 병상에 누워 어제고 오늘이고 하던 날마다 이런 생각을 했으나 나는 내일 또 큰맘을 먹으려나 싶다. 그렇게 큰 맘 먹다 보면 언젠가 큰 삶 큰 꿈 살게 되려나. 나의 알량한 꿈 이야기는 앞으로도 그렇게 그렇게 이어질 듯하다. 세상에 한 획을 긋게 해 주세요-와, 이 두통이나 어떻게 해주세요-의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