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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호 Dec 03. 2021

따뜻한 것으로 흐르는 삶

연말에는 꼭 집에 가야겠다

날이 부쩍 추워졌다. 12월이면 한겨울인지라 그러려니 할 법도 하다가, 매서운 북풍에 숨이 턱턱 막혀 걸음을 주춤대었다. 나는 그래도 나름 지리산 자락에서 커왔어서 추위에는 강하다고 자부했었다. 그 말도 오늘만은 취소. 날이 너무나도 춥다.


본가도 이렇게나 추우려나. 강아지는 잘 있으려나. 텃밭의 무화과는 잘 붙어있으려나. 제법 애어른 같은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집에 걸음 하지 못한지도 어언 두어 달이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스타벅스에서 따뜻한 음료를 시켜두고 고향 생각을 하다니, 이것도 제법 신기한 연관이다.


최근에는 사진첩 정리를 했다. 만 오천장 가량이 되는 사진을 솎아내다 보니, 절대 지우지 못할 사진은 내 사진도 노을 사진도 아닌 집 사진이었다. 무심하게 툭툭 찍어둔 집의 전경이나 강아지들의 동영상이 그렇게 아깝게 느껴졌다. 앞으로도 아까울 예정이기에 지울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지난주에는 역 앞에서 사천 원을 주고 귤 한 봉지를 샀었다. 과일 챙겨 먹는 일이 집에서는 그리도 쉽던데 밖에서는 어찌나 어렵던지, 자취하며 사 먹지도 않던 귤을 이제야 사 먹는다. 집에 과일 좀 들어왔으려나? 앉아서 다 같이 먹으면 참 좋을 텐데.


나는 밀감이나 단감이나 하는 것들을 참 좋아한다. 온한 색이고 따뜻한 색인 것들. 예를 들면 할머니가 덮으시던 얼룩덜룩한 솜이불이라거나 화장실 유리 샷시문을 넘어 비추는 마름모 주광등 빛을 좋아한다. 나무 느낌 가득한 우리 집 천장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담뱃구멍이 듬성듬성 나있는 아버지의 갈색 돕바가 생각이 난다. 검은 옷을 입은 지금의 어머니보다 빨간 스웨터를 입었을 소싯적의 어머니가 더 좋을 듯하다. 빨간 옷을 입은 오늘의 어머니는 더 좋겠지. 황구 좋아하시는 아버지, 노란 꽃 심으시던 손길. 세상은 역시 따뜻한 색으로, 따뜻한 것으로 흘러가는 것이 맞다. 정말이다.


그런고로 내일은 빨간 옷을 입어볼까. 주광등을 밝게 켜볼까. 지는 해를 빤히 바라봐보자.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하자. 아버지가 자랑하시던 토마토를 떠올려보자. 이번 연말에는 꼭 집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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