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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l 21. 2024

아는 체하는 강아지가 있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83

반려견을 키우는 세대가 눈에 띄게 늘었다. 7년 전 입주 초만 해도 반려견이 있었나 싶다. 울산에서 지금의 아파트로 복귀하고 나서 보니 60세대가 사는 한 라인에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 1/3세대가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는 듯하다. 비슷한 시간대 엘리베이터 안 밖에서 익숙한 반려견들을 지나친다. 보통은 낯설다고 사람을 향해 짖거나 주인과 함께 별 반응이 없이 조용히 지나간다.


몇 달 전, 포메라니안 두 마리를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났다. 곱게 빗질한 흰색 털이 탐스럽고 우아하게 보여 나도 모르게 예쁘다고, 옆에 있던 입주민을 향해 말을 건넸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를 보며 웃자, 우리 대화를 들은 듯, 한 마리가 꼬리를 쳤다. 자기소개를 하는 듯했다. 팔랑거리는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주택에 살 때 마당에서 키우던 따롱이와 바둑이가 생각났다. 사람을 잘 기억해 동네 주민들에게 사랑받던 아이들이었다. 


그 후로 집 주변을 지나가다가 마주치면 나를 기억하는 듯했다. 부부가 한 마리씩 산책을 시키거나 여자 입주민 혼자 두 마리를 산책시킬 때면 가던 길을 잠시 멈춰 서서 내게 눈길을 보냈다. 기분 좋게 강아지와 주인에게 아는 체하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서 인사하는 입주민이 한 명 더 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엘리베이터 안과 밖에서 사람들과 마주친다. "안녕하세요"라는 간단한 인사인데도 사실 먼저 인사를 건네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보거나 벽을 보고 서 있다. 옆집, 윗집, 아랫집에 누가 사는지 서로 모를뿐더러 관심 없이 사는 게 일반적인 도시 생활자의 모습이다. 


어느덧 15년이 되었다. 마당 있는 단독주택에서만 살던 내가 결혼과 함께 처음으로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 살게 되었다. 9층 높이에서 살 수 있을까? 바닥과 천장을 공유하는 데 불편한 점은 없을까? 등등의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살아보니 편했다. 주택에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낭만이라는 친구는 경험상 남아있지 않다. 엄마가 집을 관리하느라 혼자서 애쓰는 뒷모습을 가끔 지켜봤다. 내 생활에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와 함께 사는 집을 관리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느꼈다. "부지런한 사람만이 주택에서 살 수 있다"라고 눈으로 확인했기에 쉽게 아파트 생활이 가져다주는 편리함에 생각보다 빨리 적응했다.


불편한 점이 있다면, 공동 주택이라 층간소음에 민감하고 엘리베이터를 공용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까지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 층간소음 때문에 이웃 간에 얼굴 붉히는 일은 없이 순조롭게 살았다. 아파트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울산 아파트에서이다. 


울산은 특별했다. 내가 살았던 우정동 아파트만의 특징일 수도 있겠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 입주민들이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사 후 처음 마주친 입주민이 건넨 인사에 참 어색했었다. 환영인사를 건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그 후 탈 때도 내릴 때도,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공용의 공간에서 만날 때 인사를 했다. 환경의 영향 덕분에 우리 가족도 상냥한 이웃이 되어 주민들과 자연스레 인사를 건네며 살았다. 별거 아닌데도, 돈이 들 지 않는데도, 쉽게 하지 못하는 "안녕하세요."라는 말 한마디의 힘을 느꼈던 인사성 밝은 곳이었다. 


다시 돌아온 용인 아파트는 조용하다. 가끔 얼굴을 아는 입주민에게만 인사를 건넬 뿐, 조용히 타고 내린다. 특별한 강아지 덕분에 자주 마주치는 입주민과 어색하지 않게 인사를 나누게 되어 고맙다. 반려견이든, 아이든, 짧은 순간 마음을 움직일 매개가 있으면 조금 더 수월하게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을 텐데. 덜 삭막하지 않을 텐데. 



추억 속 우리 집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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