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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Aug 05. 2024

에어컨 없는 여름은 없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91

집 앞 마트를 지나갈 때 에어컨 실외기가 쉼 없이 돌아간다. 아파트 로비는 스탠드 에어컨 덕분에 시원한 공기가 퍼져 쾌적하다. 집안에 들어서면 다시 후덥지근하다. 웬만해서는 에어컨 바람을 피하는 나도 올여름에는 매일 에어컨 리모컨을 쉽게 누른다. 내 몸이 더위를 못 견디게 변했을까. 이제는 에어컨 없는 생활이 불가능할까. 기억을 더듬어 봐도 올해만큼 에어컨을 달고 산 적은 없다.


1993년? 1994년? 정확한 기억은 없다. 역대급 폭염의 해로 기억되는 1994년 처음으로 집에 에어컨을 들여놓았던 것 같다. 당시 2층집이던 우리 집에는 스탠드 에어컨 1대씩이 거실 한쪽에 떡하니 서서 위엄을 뽐냈다. 그 시절부터 부진하던 아빠의 사업이 날개를 달기 시작해 꽤 살만해졌다. 더위에 시원하게 지내라고 자식걱정에 에어컨을 두 대나 살 정도였으니 아빠의 사랑이 뜨겁긴 했다. 한 여름에는 시원한 거실에서 주로 공부했다. 당시에는 에어컨을 보유한 집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생활필수품'이라 여길 정도로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한국갤럽의 연례조사에 따르면 국내 가구당 에어컨 보유율은 1993년만 해도 6%에 불과했지만, 역대급 폭염이 닥친 1994년 이후 늘기 시작했다. 1998년 24%, 2001년 36%로 증가하다가 2012년 74%, 2018년에 87%로 늘었다.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보유율이 무려 98%에 달한다. 에어컨은 이제 밥솥이나 냉장고 같은 ‘생활필수품’의 지위에 올랐다.

출처 및 인용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581


2012년 여름이었다. 

당시 안방에는 벽걸이 에어컨 한 대가 있었다. 열대야에 에어컨을 하루 틀고 잤을 뿐인데, 1살 배기 아들은 모세기관지염으로 1주일을 입원했다. 그때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이를 키우면서 밤에 절대로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26평 남향집에서 7년을 사는 동안 한낮에는 각자 회사와 어린이집에서 시원하게 보낼 수 있어서 에어컨 없는 생활이 가능했다. 집에 있는 주말을 보내기가 힘들었어도 선풍기를 틀거나 안방 에어컨 한대로 지내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2019년 울산으로 내려갔다. 45평 널따란 집은 구축 아파트라 시스템 에어컨이 없었다. 안방과 거실에는 이전 거주자가 에어컨을 사용한 흔적이 흉물스럽게 배선으로만 남아 있었다. 4년 살다 갈 건데 굳이 에어컨을 사야 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항암을 하며 어느 해보다 힘없이 지낼 나를 생각해 저렴한 스탠드 에어컨 1대를 거실에 들였다. 결과적으로는 안 사도 됐을 법한데, 당시는 미리 여름을 걱정했었다. 살아보니 남쪽이고 바다가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울산의 여름은 경기도에 비하면 그리 덥게 느껴지지 않았다. 기온이 2-3도는 낮았다. 바람도 잘 통하고 앞 뒤가 탁 트인 집이라 거실에서 에어컨을 몇 번 틀지 않고 방마다 선풍기를 사용하면서 4번의 여름을 무사히 보냈다. 


작년에 경기도에서 여름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가끔 에어컨을 틀었다.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이들 방에도 시스템 에어컨을 추가로 설치했다. 거실만 가끔 틀고 그럭저럭 여름을 지냈다. 내가 에어컨을 멀리하는 생활습관을 들인덕에 아이들도 에어컨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대신 방마다 선풍기는 필수였다. 우리 집은 에어컨보다는 선풍기와 친한 집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역대급이다. 우리 집도 에어컨에 의지해서 산다. 6월부터 9월까지 에어컨을 끼고 사는 친척집에 비하면 우리 집은 상대적으로 적게 쓰는 집이지만 에어컨 사용이 나름 급증했다. 특히 아들은 매일 에어컨을 틀고 생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족 중 가장 더위에 약하다고 주장한다. 나도 아침부터 선풍기는 기본이고, 한낮에는 에어컨을 튼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땀으로 범벅되는 것을 참을 수 없을 만큼 더위가 심각해졌다. 혼자 있는 집에 에어컨을 켜기가 부담스러워 커피값을 내고 카페에도 한두 번 가봤지만 1시간 이상을 앉아 있지 못했다. 하루 틀어도 천 원 정도 전기세가 나온다는 남편말을 믿고 짧은 여름 동안 틀기로 했다. 설정온도는 28도로 시작해 29도로 유지하고, 그것도 3시간이 지나면 머리가 지끈거려서 끄고 다시 선풍기를 켠다. 


그저 에어컨 사용이 늘었다는 글을 쓰고 싶었다. 두서없이 주저리 쓰다 보니 에어컨에 의존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났다는 것이 더욱 확실하다. 특히 올해가 그렇다. 

그런데, 벌써부터 무섭다. 내년은 또 얼마나 더울지. 내후년은... 앞으로는...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처럼 "지금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구 온도가 계속 오르고 있다. 에어컨 사용으로 시원하게 지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어쩐지 마음이 불편하다. 전기세 증가는 그렇다 치더라도,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더운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사람의 열을 식히기 위해 에어컨을 많이 사용할수록 폭염 같은 이상기후는 계속 진행될 것이다. 악순환을 끊을 수 없을 것 같다. 에어컨 없이도 살았던 우리 세대와 달리 우리 집 아이들을 봐도 요새 아이들은 더위에 약하다. 더위를 견딜 수 있는 인내심도 부족해 밖을 나가는 순간 "더워, 너무 더워"를 1초에 한 번씩 뱉는 것 같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을 살았던 우리 세대보다 에어컨 바람 속에서 자란 다음 세대의 건강과 지구의 건강이 매우 염려된다. 물론, 에어컨의 혜택을 못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현실도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지구를 덜 열받게 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찜통더위와 관련한 기사가 많이 보였다. 그중에 에어컨 없이도 살만하던 태백시에도 에어컨 설치가 급증했으며 고랭지 배추농사의 절반은 망쳤다는 기사는 이상기후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8421


에너지 경제신문 기사를 통해 올해 전력 수요 예상치도 살펴볼 수 있다.

https://www.ekn.kr/web/view.php?key=20240805027498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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