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63
마지막 한 알을 입에 넣고 목으로 넘겼다.
페마라. 2.5mg 쥐눈이콩 크기. 작지만 힘은 셌다.
유방암 항호르몬제. 5년간 복용한 약에서 졸업했다.
당장은 만세를 부르고, 나에게 축하했다.
"끝이다!"
2019년 10월 말부터 2024년 12월 중순까지. 처음 약 받고 1년간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일상의 일부로 이 약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약 부작용에 관심이 생겼다. 앞 뒤 빽빽하게 깨알 같은 글씨로 부작용이 적힌 약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재발 방지에 필수적인 약이라는 말에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5년을 먹기로, 담당의와 이야기하고 동의서까지 썼다. 널리 알려진 대로 부작용은 나타났다. 멀쩡하던 온몸의 관절이 하루아침에 뻣뻣하게 굳어버린 듯, 앉았다 일어나기도, 손가락 마디마디를 펴기도 어려웠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삶의 질이 바닥인 채로 아침에 눈을 뜰 때면 나오는 건 한숨과 애처로움이었다. 3개월 후 진료 때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니 다른 약으로 바꿀지 고민해 보라고도 했다. 객관적으로 말해, 효과가 약간 적다는 말에 그냥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부터 미련을 버리고 꾸역꾸역 하루도 빠짐없이 약을 먹고, 매일 산책을 나갔다. 어느새 5년이라는 길게 느껴졌던 시간은 지나갔다. 흘러간 시간만큼 몸과 마음은 적응했고, 크게 불편함 없이 잘 살고 있다.
생각해 보니 계속 유지한 게 참 잘한 일이다. 터널을 통과하고 뒤를 돌아보니 그제야 보였다. 인생의 대부분이 그런 거 같다. 당장 힘들다고, 몇 개월이 힘들어 바꿨으면 어땠을까?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실, 암은 졸업이 없다. 누구나 알 듯, 평생 관리해야 한다. 약 졸업도 당장은 없다. 하나를 끝냈을 뿐, 또 다른 약이 기다리고 있기에 마냥 좋지만은 않다. 임파선 전이가 있는 유방암 2기 환자라 앞으로 5년간 약을 바꿔 복용해야 한다. 재발과 전이를 막을 수 있다는데 군말 없이 먹어야지. 첫 번째 약에 비해 부작용이 덜하다고는 하나 여하튼 또 다른 시작이다. 그냥 영양제 하나를 5년간 꾸준히 먹으며 건강관리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지난 5년간 몸에 온 신경을 쓰고 생존을 위해 살았다면 새로 받은 약과 함께 할 5년은 이전보다는 힘을 빼고 부드럽게 살고 싶다. 센 놈한테 맞아봤으니 약간 덜 쎈놈이 오면 몸이 알아서 "괜찮네, 견딜만하네" 하고 넉살 좋게 넘어갔으면 좋겠다. 그럴 것 같다.
살면서 괴로움이 매번 올 때마다 흔들림이 전혀 없을 수는 없지만 나도 모르게 강도를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다. 지난번보다 수월하다, 세다, 약하다, 비슷하다로 점수를 매긴다. 오고 가는 것들의 강도를 조절할 수는 없으나 기준이 생겼고, 생존을 위한 굳은살이 생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견디는 힘은 강해졌다. 그만큼 건강해졌으니 이 또한 적응하겠지라는 여유 아닌 여유도 감히 부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