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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Dec 19. 2024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64

나이 들면서 인간관계는 원하든 원치안든 점차 좁아지고

새로운 인연은 서로를 알아가기도 전에 한계에 부딪혀 나도 모르게 관계의 선을 긋게 된다. 여기까지다. 

더 이상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말자고.




"하나도 안 변했어! 똑같아!"

"언니! 그런 얘기하는 건 나이 들었다는 증거예요!"

"나이 들었잖아! 근데, 어쩜 20대 때 얼굴과 이미지에서 변한 게 없을까! 그 느낌 그대로야!"

"좋은 걸까요?"


영문과에서 친하게 지냈던 옛사람들을 만났다. 어쩌다 가끔 따로 만났지만, 셋이서 만난 게 10여 년이 넘었을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각자 살기 바빴다. 올해가 가기 전 만나자는 약속대로, 선배언니가 운영하는 카페를 찾았다. 얼굴을 보자마자 반갑게 안아주었다. 바라만 봐도 흐뭇했다. 엊그제 만난 사이 같았다.


과거를 찐하게 함께 보낸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편안하다. 지금 어떤 가방을 들고 나왔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중요하지 않다. 눈치 보며 자녀 학업이야기와 소비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내 이야기를 어디까지 꺼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어떤 관계를 유지했었는지가 중요하겠지만 이들은 가끔 타임머신을 타고 철없던 시절, 걱정 없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주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까불고, 장난치고, 때로는 진지하게 속내를 털어내도 부담 없다. 그만큼 힐링을 주는 귀한 존재들이다. 무엇보다 "나"를 중심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 좋다.


"언니, 영문학과를 선택했다는 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자기만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에요. 자기 방식대로 살기를 작정한 사람들이죠. 헤헤."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방식대로 사는 삶. 그런 것 같다. 특별한 뜻을 품은 문학소녀는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인간다운 삶, 어떻게 살 것인가"란 키워드만은 잊지 않고 살았다. 


 "나만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삶을 사는 인생길. 긴 인생, 아직 늦지 않았다면서 그들은 집에 있는 나를 계속 자극했다. 내가 꿈꾸고 펼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실행할 수 있는 아이디어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맞장구치며 갈증 난 목을 축이듯 흡수했다. 학창 시절, 미래를 꿈꾸는 학생으로 변신한 듯했다. 앞으로도 나를 응원하겠다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에너지를 뺏기는 만남이 아닌 나를 충만하게 충전시킨 시간이었다. 


우리모두 연로하신 부모님을 돌보는 중년의 딸들이 되었다. 각자 힘든 일상을 잠시 잊고 청춘으로 돌아간 두어 시간이 행복했다. 영하의 기온으로 쌀쌀했지만 따사로운 햇살과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 덕분에 훈훈한 나들이였다. 



선배가 운영하는 카페 "에스페란자 로스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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