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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ngwon LEE Nov 21. 2024

고립된 고마운 선배

어느 날 커피를 마시며

"다들 어디 가셨네요. 선배님, 커피 한잔 드시겠어요?"

"어, 좋지. 지금은 메일 확인할 게 있어서, 있다가 한 시간 뒤에 가자."


화장실을 다녀오니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없고, 까마득한 선배 한 분만 남아 계셨다. 조금 졸리기도 해서 점심 전에 같이 커피를 마시러 갔다.


사실 이 선배는 내가 입사 면접 때 A+ 점수를 줬다던 분이시다. 실제로 그런 등급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분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다. 중요한 건 나를 높게 평가해 주셨다는 사실이다.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잘 나누지는 못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 선배는 정년을 앞두고 계시며, 동시에 주위 직원들과 교류가 전혀 없다. 모두가 꺼려하는 분이기도 하다. 또, 지금까지 업무적으로 관계된 적이 없어 따로 대화를 나눌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같은 팀으로 합류하면서 이렇게 기회가 생긴 것이다.


"네가 언제 입사했지?"

"2014년에 했습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애들은 몇 살이고?"

"큰 애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요."

"그래, 요새 일은 어떻노?"

"이전 팀에 비해 단발성 업무가 많은 것 같아요. 급히 처리해야 할 일도 많고요. 그래서 전보다 많이 바빠졌습니다."

"그래. 여기가 잡무가 많다."

"네, 맞습니다."


나름 새로 맡은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는데, '잡무'라는 표현에 아주 살짝 '음...' 했지만, 짧은 순간에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내 기분과 상관없이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갔다.


이 선배는 주위 직원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스스로 교류를 차단하고 계시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고립은 굳어져 간다. 아마 부서 내에서 이 선배와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너그럽고 사려 깊어서가 아니다. 다만 예전부터 고마운 마음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회가 생기면 대화를 하게 된다.


사람은 하루에 오만(50,000) 가지 생각을 한다고 한다. 정말 말 그대로인 것 같다. 잠들어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중 95%는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한다. 불과 5% 남짓한 생각만이 우리를 긍정적으로 이끌어 준다고 한다. 그런데 그나마 이 5%의 긍정적인 생각도 상황이 바뀌면 손바닥 뒤집히듯 부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어 버린다. 아무리 각오하고 결심해도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걱정은 태산 같으며, 입에서는 욕이 술술 흘러나오는 이유다.


이 선배도 하루 대부분을 부정적인 생각에 잡혀 있는 듯하다. 꼭 대화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온몸에서 그런 분위기를 풍겨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엔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시는 것 같다.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는 것이 좋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런데 아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하지만 마음은 좀처럼 다잡아 지지 않는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1961년 스웨덴에서 태어나 불과 스물여섯 살에 다국적 기업의 임원으로 지명되었다. 그런데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자친구와 재산까지 두고 태국 밀림 속 승려로 귀의해 17년간 수행에 매진했다. 마흔여섯에 승복을 벗은 그는 한 인터뷰에서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엇을 얻으셨습니까?" 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17년 동안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에 매진한 결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가 얻은 초능력입니다."


우리는 늘 '옳음'에 시달린다. 내가 옳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을 꺾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내 옳음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유일하게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각오나 결심이 아니라, 내 '옳음'을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 선배는 내게 참 고마운 분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 이야기를 선배에게 해 드리고 싶다. 물론 나이 차이가 많아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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