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이가 죽었어.” 선생님이 한참 허공을 응시하다 입을 열고 한 말이었다. 어젯밤 영진이가 급성 맹장으로 병원에서 수술을 받다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영진이는 중학교 입학해서 만난 나의 첫 짝꿍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카시아꽃이 핀 길을 흥얼거리며 함께 집에 갔었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부터 내 옆자리에는 하얀 국화 한 송이가 놓이기 시작했다. 시끄럽던 교실도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영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부터 해가 지면 천장에 숨어 있던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덮어 버리는 꿈을 꾸다 깨어나길 반복했다. 매일 밤 나는 시시포스의 형벌을 받는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학교에선 영진이의 빈자리가 보기 싫어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으로 나갔다. 여름 태양이 너무나 뜨거워 땅이 일렁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뛰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 매일매일 달렸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영진이가 흥얼거리던 가사, 아카시아꽃의 달큰한 향기, 빈자리에 놓인 하얀 국화꽃이 박제된 기억처럼 선명하다. 그 후로도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여러 번 보아왔다. 죽음으로 한 사람의 세계가 닫히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아름다운 삶 속에서도 죽음을 마주할 때마다 허무의 늪에 빠져 버렸다.
한가롭게 책을 읽고 있던 지난 주말 오후,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빗방울이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전화했다. ‘이모가 돌아가셨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최근 몇 년 사이 엄마의 형제자매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났다. 작년 큰외삼촌이 죽었을 때 엄마는 며칠 동안 식사도 못 하고 누워만 있었다. 이모의 죽음으로 엄마가 받게 될 충격이 걱정되었다.
오후 늦게 가족들과 함께 장례식장에 갔다. 어두운 장례식장 입구에 꽃분홍 한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이모의 사진이 낯설었다. 저렇게 고운 한복을 입고 사진 찍던 날 이모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제 이모는 세상에 없다. 남겨진 이모부는 말없이 소주만 들이켜고 있었다. 상복을 입고 있는 사촌 언니의 얼굴에서 고단했던 시간의 흔적이 보였다. 어릴 때야 자매처럼 친했지만 커서 각자의 삶을 살다 보니 이런 날에나 볼 수 있는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엄마는 언니의 등을 말없이 도닥여 주었다. ‘이모, 지난주 엄마한테 용돈 주시고 가셨다면서요?’ 언니는 울먹이고 있었다. 언니는 엄마를 보면서 죽은 이모를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도 참았던 눈물을 닦아가며 “이제 내 차례지.” 혼잣말이었지만 내 귀에는 아프게 들렸다. 엄마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당신 차례가 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나왔다. 이모의 죽음보다 엄마의 슬픈 독백에 마음이 아팠다. 지금 나는 나에게도 닥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울고 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저녁에 지는 게 당연하듯 우리는 태어나면 죽는다. 영진이의 죽음부터 지난주 이모의 죽음까지 나는 그간 수많은 죽음을 마주하며 살았다. 언젠가는 엄마와 이별해야 할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 아니 그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 나는 영진이가 죽고 어둠 속에서 두려워만 했었다. 이제 그러기엔 남은 시간이 짧다.
“진수 씨 있어요?” 나는 엄마에게 전화한다. “오늘 비도 오는데 해물 부침개나 부쳐서 같이 먹을까요?” 직장을 다니면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별로 없었다. 비 오는 소리와 프라이팬에서 부침개 지글거리는 소리가 섞여 행복한 오후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이제 진짜 소중한 걸 챙기며 엄마와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 이모 죽음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