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해온 공직생활을 접고, 생뚱맞게 선택한 일은 출판사 설립이었다. 정신없이 달려오다 문득 멈춰보니, 이제는 천천히, 미니멀하게 살고 싶었다. 그렇게 달라진 삶의 속도를 기록하고, 직접 책으로 엮어내겠다는 오기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출판사 문을 두드렸다가 좌절하고, ‘책 만들기’ 수업까지 들었지만, 결국 출판사를 세워 내 책을 내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사무실도, 직원도 없이 대표부터 편집자, 작가까지 모든 역할을 나 혼자 맡아야 하는 어리둥절한 여정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출판사’라고 하면 빌딩 안의 사무실, 그리고 빼곡한 서가가 떠오른다. 하지만 나의 사무실은 내 집 작은방 한켠이다. 책상 위에는 노트북 한 대, 프린터, 커피잔, 포스트잇, 그리고 내 글의 초고가 전부였다. 세상이 많이 변해 이제는 컴퓨터 한 대와 인터넷만으로도 출판사를 낼 수 있다. 인쇄는 POD(Print On Demand, 주문형 인쇄) 시스템으로 해결되고, 표지 디자인은 캔바나 미리캔버스 같은 온라인 툴로 직접 만들 수 있다. 출판의 모든 과정이 디지털로 전환된 셈이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최근 몇 년간 등록된 출판사 중 절반 이상이 1인 출판 형태라고 했다. 예전처럼 대형 출판사만이 책을 낼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작가 스스로 출판사를 세우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책을 낸다. 그야말로 세상은 ‘출판의 민주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 흐름은 마치 유튜브·1인 방송 시대처럼, 혼자서도 콘텐츠를 만들고 배포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덕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작은방의 서재를 ‘비와나무출판’이라는 이름으로 정하고 출판사 등록을 했다. 비가 촉촉하게 나무를 적시듯,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고, 나무처럼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성장하는 미니멀한 출판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이제 나는 1인 기업의 대표가 되었다. 실상은 노트북 하나로 모든 일을 해내고 있다.
사실 출판사를 시작한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함은 아니다. 나에게 출판사는 ‘사업체’라기보다 글을 계속 쓰기 위한 시스템이다. 누가 만들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내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낼 수 있는 방법, 그게 출판사를 시작한 이유다. 글을 쓰는 일은 외롭고, 출간의 문턱은 높다. 나는 출판이라는 시스템을 빌려 나의 글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싶었다.
물론 기댈 동료도, 조언해 줄 선배도 없다. 모든 판단과 결정은 내 몫이다. 밤늦게 컴퓨터 앞에 앉아 원고를 고치다 보면 ‘내가 왜 이렇게 무모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그래도, 이건 내 이야기잖아.” ‘출판사’라는 이름은 글을 쓰겠다는 약속이자 다짐이다. 그 약속이 나를 매일 글을 쓰게 한다. 사무실도 없고, 사람도 없고, 돈도 많지 않지만, 그 모든 결핍이 오히려 내 글을 단단하게 해 줄 거라 믿는다.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온다는 건, 그 안에 담긴 용기와 고집, 그리고 오래된 꿈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일이다. 그리고 그 꿈이야말로 내가 출판사를 시작한 이유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그래서 돈은 벌어요?”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아뇨, 그래도 매일 행복하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