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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Aug 31. 2024

기획의 렌즈로 세상을 보라

기획이 두려운 당신께


20년 전만 해도 공무원 조직 내 기획부서에는 여자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 기획팀은 남성 중심의 조직이었고, 그곳에 발을 들이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기획이라는 단어가 가진 매력에 끌렸고, 그곳에서 일하면 뭔가 특별해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혼자서 기획 책도 보고 강의도 들으며 준비한 덕분인지, 결국 기획팀으로 발령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 기획업무를 맡았을 때, 나는 나를 증명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하지만 첫 기획보고서를 작성할 때,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첫 번째 기획서를 작성할 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모든 정보를 기획서에 담았고, 페이지가 늘어날수록 뿌듯함도 커졌다. ‘이 정도면 팀장님께 인정받겠지’라는 기대에 차서 기획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욕심이 크면 화를 부른다는 말처럼, 돌아온 반응은 냉정했다. 팀장님이 "이 기획서는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야?"라며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핵심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셨다.


그제야 내가 얼마나 기초적인 실수를 했는지 깨달았다. 기획은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퇴근 후 남아서 기획서를 다시 작성했지만, 다음 날에도 결재를 받지 못했다. 선배의 도움을 받아 기획서를 수정했고, 몇 번의 수정을 거쳐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한동안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기획이라는 단어 앞에서 풀이 죽었었다. 20년 전, 남성 중심의 기획팀에서 여자로서 나의 자리를 찾는 것이 어려웠지만, 그 경험 덕분에 나는 '기획통'이라는 별명을 얻고 오랫동안 기획 일을 할 수 있었다.


일상이 기획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매 순간 기획과 마주한다. 당신이 지금 30만 원을 가지고 남편의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 장바구니를 들고 백화점에 간다고 상상해 보자. 매장 입구를 지나면서 할인 광고가 눈에 띈다. 50% 할인된 신상품 블라우스가 보인다. 할인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흔들려 블라우스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한쪽에서는 덤으로 제공되는 무료 샘플 코너에도 잠시 들른다. 요즘 부쩍 푸석푸석한 얼굴에 샘플 화장품을 바르니 기분이 좋아진다. "이 정도는 나를 위해 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며, 예정에 없던 화장품까지 결제한다. 또 다른 한쪽 무료 시식 코너에서 맛보고는 새로운 레시피를 시도해보고 싶어 햄과 만두를 무심코 장바구니에 집어넣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원래 계획했던 소고기와 미역, 오징어와 반찬거리는 사지 못했고 예산이 초과되어 버렸다. 이런 경험, 한 번쯤은 있지 않았는가?


이처럼 단순한 장보기에서도 예산과 우선순위를 정해, 사야 할 물품을 미리 정해 놓았다면, 할인 상품에 눈이 가더라도 리스트를 보며 필요한 물건을 우선 구입하고 나머지 돈으로 다른 것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일상 속 작은 선택의 순간에도 기획 마인드가 필요하다. 사전에 나의 예산을 고려한 계획만 세웠더라도, 돈을 정신없이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기획이라는 단어가 조금 더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직장에서 상사의 승인을 받을 때나 고객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서도 기획이 필요하지만, 간단한 선택의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기획 마인드가 필요하다. 기획은 현재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기획이라는 렌즈로 인생을 바라볼 때, 모든 선택이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은 기획가가 되어야 한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당신을 만들 것이다. 기획을 통해, 당신의 인생을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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