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맞는 아홉 번째 4.3
한창이던 동백이 하나 둘 떨어지면, 잠시 75년 전의 역사를 기억하며 묵념사이렌 소리를 듣는 곳이 제주다. 오늘이 지방공휴일인지 어찌 알았는지(하지만 학교는 등교한다),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때를 쓴 아들에게 '학교 땡땡이'를 허락해 주었다. 학교에서 책상에 앉아 4.3을 배우는 것보다 역사 현장을 직접 가 보는 것이 더 산 지식이라고 합리화하며 우리는 대정읍에 있는 섯알오름으로 향했다.
섯알오름 학살터
섯알오름을 올 때마다 답답한 마음을 눈물로 훔치게 된다. 4.3이 끝나지 않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집단학살이 자행된 곳이 바로 섯알오름이다. 우리 읍 주민들이 대거 학살된 곳이기도 해 마음이 더욱 아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수용시설이 좁아 넓은 곳으로 옮긴다는 새빨간 거짓말로 252명을 두 차례에 걸쳐 트럭에 태웠다. 새벽녘 트럭에 실려 가는 동안 분위기를 알아차린 그들은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트럭에서 고무신을 벗어던졌다고 한다.
75년 전 이런 비극을 아들에게 설명하고, 옆에 있는 태극기가 조기 게양된 이유도 열심히 설명했건만, 아들은 알아들었지 못 알아들었는지,... (에효) 학살터 주위로 조성된 추모정이며, 추모길을 공원처럼 신나게 뛰어다닌다.
섯알오름 들어가기 전 바로 옆에는 일제가 만들어 놓은 격납고 시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알뜨르비행장이 남아 있고, 그 넘어 밭으로 가면 지하 벙커가 있다. 이곳은 '다크투어리즘' 코스로 다리품을 팔며 4월에 꼭 한 번쯤은 걸어봐야 할 그런 곳이다.
예술로 승화된 4.3
쉬쉬했던 4.3을 수면 위로 올린 분야는 예술계였다. 현기영 작가가 1978년에 발표한 <<순이 삼촌>>은 4.3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1992년 강요배 화가는 <<동백꽃 지다>>로 3년간 50편의 4.3 연작을 완성했다. 그리고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임흥순 감독의 <<비념>>과, 김동만 감독의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등 많은 예술가들이 4.3을 알리고 노래했다.
그리고 지금 4월, 제주 곳곳에서 <4.3 미술제>가 열리고 있다. '기억의 파수'는 제주현대미술관에서, '경계의 호위'는 예술공간 이아와 포지션 민, 그리고 산지천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제주현대미술관에서는 임흥순 감독의 <<비념>>을 감상할 수 있었고, 박경훈 작가의 판화작업들, 이명복 작가의 대서사 그림, 홍성담 작가의 작품도 볼 수 있었다.
감당하지 못할 이 상흔은 어디에서 왔는가! 누구의 잘못인가! 제주의 슬픈 역사를 보면, 제주사람들이 육지 것이라며 포용이 아닌 경계로 대하는 이유를 이해하고도 남는다. 아직도 4.3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희생자나 유족을 찾고 있다. 제주의 4.3에 꼭 완성된 봄이 오기를 바라면서 제주를 다시 보게 되는 오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