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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eh May 20. 2023

서핑 회고록

5월이다. 오랜만에 협재에 갔다. 5월인데도, 그러니까 해수욕장을 개장하지 않았는데도 해수욕장 주차장은   있고 해변에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이주해 오던 9  제주 협재 해수욕장은 여름철을 제외하고 주차 걱정이 없을 정도로 비수기엔 정말 한가했다. 그런데 이제는 성수기 비수기가 따로 없을 정도다. 겨울에도 주창장에  들이  찬다. 그러니 오늘 5월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협재바다에 서핑족이 많이 늘었다. 한때 나도 서핑에 관심  갖었었는데,…


20대 후반 꽃다운 나이에 나는 호주 시드니에 있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 년을 계획하고 갔지만 지내다 보니 오 년 가까이 살게 되었다. 본다이 비치는 물론이거니와 호주 곳곳에 있는 비치에는 꼭 서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호주사람들은 비 오고 바람 불고 날씨 궂은날에도 서핑을 했다. 어쨌든 나는 호주에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서핑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023년 5월 협재 바다의 서핑족들



와이영Wyong(시드니와 뉴카슬 사이)에 살 때 브레드라는 동네 친구는 비 와도 혼자, 바람 불어도 혼자, 시간 날 때도 혼자 서핑하러 다니는 수준급의 서퍼였다. 서핑을 꼭 배워보겠노라고 다짐도 했겠다, 동네에 훌륭한 서퍼도 있겠다 싶어 브레드에게 서핑을 가르쳐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브레드가 말하길,…

,“너 수영할 줄 아니?”

“앗! 수영? 음,.. 못 하는데!”

“그럼 수영부터 배우고 와”

아!!!! 서핑의 시작은 수영이었구나!

이렇게 해서 호주에서는 서핑을 구경만 하다가 한국에 돌아와서야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새벽반을 삼 년 반 다닌 덕에 시화호 수영대회에서 3km 완영메달도 받았다. 수영을 배웠으니 이제 서핑을 시작할 때다.

그러나 수도권에 살면서 서핑을 하러 다니기가 웬만한 열정 아니면 못한다. 그리고 이때는 대한민국 해수욕장에서 서퍼들을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들 때였다. 그리고 또 삶에 바빠 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2004년 제3회 시화호핀수영대화 완영메달



9년 전 내가 제주로 이주해 왔을 때도 서핑하는 사람은 없었다. 제주 바다가 서핑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어서 서핑하는 사람이 없는 거라고 혼자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 일이 년 사이 서핑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늘어가는 것을 보니 서핑 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내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오늘 유난히 눈에 많이 띈 서핑족을 보니 25년 전 호주 해변에서 봤던 풍경이 제주 앞바다에서도 펼쳐지고 있었다. 10년만 젊었어도 서핑에 도전했을 텐데,… 하늘의 명을 깨닫기도 전에 이제 내 나이가 지천명이 됐으니 서핑이 웬 말이냐. 작은 나의 서핑 회고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본다.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운 나이가 된 것이다.

10년만 젊었어도 저 전화번호 눌렀다 성인 강습도 하냐고.



그때 그 브레드는 놀랍게도 수영할 수 있는 실력과 서핑할 수 있는 실력을 어렸을 때 혼자 배웠다고 한다. 어렸을 적 그에게는 놀이터가 바다였으리라. 수영과 서핑은 이렇게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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