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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eh Jun 10. 2023

브로콜리 할머니를 소개합니다.

나는 동네 신고식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자리를 잡은 못된 육지 것이다. 이사오자마자 아이가 태어나고 집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 바빴다는 이유가 변명이라면 변명일 것이다. 이사 오고 일 년이 지나서야 아이 돌 겸, 수수팥떡을 조금씩 돌린 게 작은 성의 표시의 신고식이었다. 그것도 여덟 집만 겨우 말이다.(우리 집은 골목집 중의 골목집이지만 동네의 센터에 자리하고 있어 여덟 집과 접해있다.)




그 여덟 집 가운데 10시 방향에는 '브로콜리 할머니'가 사신다. 우리 집이 137-1이고, 브로콜리 할머니 댁이 137-11이니 1, 3, 5, 7, 9, 11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 다섯 집을 지나야 브로콜리 할머니댁이 있다는 뜻인데, 실제로는 옆집이다. 하지만 정식으로 대문과 대문으로 가려면 다섯 집을 지나야 하는 건 맞는 얘기다. 어쨌거나, 수수팥떡 이후로 할머니는 매해 손수 농사지으신 브로콜리를 한 아름 들고 오셨다. 수수팥떡 몇 개의 대가 치고는 감사하게도 너무 후하다. 그 이후로 우리는 10시 방향의 옆집 할머니를  '브로콜리 할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브로콜리 할머니는 올해로 졸수(卒壽)가 되셨다. 제주에서 태어난 제주 토박이다. 그래서 할머니와 이야기하면 반은 못 알아듣는다. 우리 동네에서 십리정도 떨어진 곳에서 이곳으로 22살에 시집오셨다고 한다. 그 당시 우리 동네에 할머니의 고모가 살고 계셨는데, 고모의 중매로 시집오게 되었고, 현재는 그 고모님 덕(?)에 나의 이웃이 되어 주셨다.

2023년 6월 10일의 브로콜리 할머니, 할머니 댁에서


우리 집은 남편이 제주를 좋아하고 은행빚이 한가득이지만 제주에 땅도 사고 집도 지어서 이변이 없는 한 이 터에서 노년을 보내다 하늘나라로 갈 것이 예정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옛이야기가 궁금해 가끔씩 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놀러 오시면 이것저것 여쭈어 보곤 했다. 먼저 1. 우리 동네 골목길을 브로콜리 할머니 남편되시는 분이 힘을 써 길을 넓혔다는 것과, 2. 할머니 댁 앞에 있는 자태 좋은 퐁낭도 여전히 있었다는 것과, 3. 지금은 길 하나로 마을 이름이 다르지만 예전엔 같은 동네였던 곳으로 물허벅에 물을 길어 다녔다는 것, 4. 우리 골목길 입구에 있는 천평 가까운 넓은 밭이 있는데, 그 밭 이름이 '구실앗디' 라는 것. 5. 그래서 옆 마을에서는 아직도 우리 동네를 구실 앗디라고 부르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 구실앗디의 뜻을 알고 싶어 여쭤 봤지만, 할머니도 그 단어의 의미는 알지 못하셨다. 우리 집 터의 역사도 궁금해 여쭤보니, 초가집이 두 채 있었다고 한다. 초가집에 마지막으로 살던 사람들이 일찍 병으로 돌아가셨다면서 이 집 터가 그리 좋은 집터는 아니라는 말씀도 해 주셨다. 그리고 초가집을 없애면서 나온 쓰레기를 현재 우리 집 마당, 더 정확하게 말하면 왕벚꽃 나무를 심어 놓은 그 자리에 한가득 묻었다고 한다. 어쩐지 처음에 심었던 벚나무가 몇 달 만에 죽더라니. 지금 심은 왕벚나무는 무려 7만 원이나 주고 오일장에서 사 와 다시 심은 것이다. 죽진 않았지만 심은지 5년이 넘었는데, 자라는 속도가 영 시원찮다. 다 그 쓰레기 더미 때문인 것 같다. 초가집 이후로 우리 집 터는 펜션을 지으려고 했던 분도 계셨다고 하고, 뒷집이 이 땅을 사려고 했다고도 했다. 한 동안 풀이 가득한 버려진 땅이었는데, 우리가 이사 오기 직전에는 137-4에 사시는 부지런한 삼춘이 아무도 가꾸지 않은 이 땅을 일구어 쪽파 농사를 짓고 계셨다.

2017년 브로콜리 할머니와 지훈이, 137-7 창고에서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을 6살, 3살에 잃었지만, 그 후로 2남 4녀를 두신 브로콜리 할머니는, 겨울에 쪽파 작업도 하시고, 매주 마을회관에도 가시며 건강한 생활을 하고 계신다. 우리 집에 오시는 횟수가 예전만 못하시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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