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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신효인 Nov 02. 2024

늦깎이 선생님의 영어 교육 실습

계속되는 프로 N잡러의 삶


- 이전 발행 글 일부-

https://brunch.co.kr/@shinhyoin/99

작년부터는 강사 해보자고, 교육받자고 적극적으로 푸쉬를 하시는데, 무서워서 도망 다녔어요. 뭐가 그리 무섭냐면.. 글쓰기를 소홀히 하게 될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워요. 제가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일단 맡았다! 하면, 진짜 엄청난 책임감을 갖고 임해요. 제가 영어 강사를 하게 되면, 제 성에 차는 정도의 수업 퀄리티를 만들기 위해-쪽팔리지 않기 위해! 제가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수업 준비에 쏟을 게 분명한데.. 그러다 글쓰기/작사가 뒷전이 될까 봐 너무 두려워요. 안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걸 좇다가 주객전도가 될까 봐 그게 두려워요.

지난주에 원장님께서 5세 공개 수업 한 번 보러 오라고 하셔서 수업 참관을 해봤는데요. 수업하시는 선생님 진짜 멋지고 대단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지붕 뚫는 텐션으로 할 자신이 없..어..요.. ㅠㅠ  그리고 차량, 카운터에서 일하는 지금보다 더 밀착해서 학부모님들을 대해야 하는 것도, 타인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저라서 우당탕탕 초보 강사의 모습을 누군가에 보여줘야 하는 것도 너무 부담되고요. 가슴속에 스파크가 튀어야 움직이는 제 성향상.. 마주한 이 기회를 잡는다는 게.. 엄청난 도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자격증은 왜 땄냐? 수입원에 대한 고민이 계속 있었고, 마침 시간이 있기도 했고, 원장님의 제안이 좋은 기회이지 않을까-기회가 왔을 때 그걸 그냥 흘려보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따봤어요. 저도 제 맘을 잘 모르겠어요! 영어 강사 할 생각이 전혀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걱정되는 점들을 다 제치고 덤빌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 기로에 서있답니다..ㅎ



- 이전 발행 글 일부-

https://brunch.co.kr/@shinhyoin/102

부탁을 받아 어학원에서 아이들 영어 시험을 잠깐 대신 봐줬을 때 느낀, 그 찰나의 재미에 날 맡겨보기로 했다. 그래서 부장님께 영어 강사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부장님께서는 교육자 양성 과정을 밟게 해 줄 수는 있으나, 자리가 없다고 생각해 달라고 하셨다.




영어 교사 하겠다고 의사를 전달하고서, 후회가 막심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안 들어도 됐을 말을 들어 상처받았고, 서로를 소중하게 여긴다 생각했던 사이에 금이 갔다. 내가 의지하고 애정하는 이에게서 미움, 무시받는 듯한 느낌은 견디기가 힘들었다.


이런 상황을 원했던 건 아닌데.
이런 문제가 생길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마음이 지옥이 되니, 도전하고자 했던 스스로의 패기는 그저 원망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불안도가 상승했다.


도망가고 싶다.


내가 물크러지기 시작했다.




도망갈 것이냐. 버틸 것이냐.


감정의 둑은 이미 무너졌다. 둘 중에 뭘 선택한다고 해서 수습이 되는 상태가 아니었다. 물에 잠겨 휩쓸리고 꼬르륵 대는 와중에 생각을 해보았다.


둘 다 지옥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뭐 하나라도 남는 걸, 득이 되는 걸 선택하자.


- 도망가서 내가 얻는 것: 없음.
- 버텨서 내가 얻는 것: 영어 공부, 연수 수료, 교사 체험 기회


연수 과정에 첫 발을 디뎠다.


판을 뒤엎어 보자.




연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100% 영어로 진행됐다. 내용은 어렵고, 많았다. 머리가 아팠다. 그렇지만 설렁, 대충 할 수 없었다. 교육이 끝나고서 평가자가 날 탈탈 털고자 했을 때, 하나도 안 털리고 싶었다. 뇌가 저릴 만큼 열심히 했다. 토할 것 같았다.


영어 인터뷰가 있다는 말은 없었는데, 만일에 대비해 준비해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뭘 물어보실까' 고민해 보고 예상 질문을 뽑아서 답변을 만들었다. 머릿속으로 영어 인터뷰 상황을 만들어 인터뷰 연습을 했다. 방 안에서 혼자 미친 사람처럼 중얼중얼, 팔을 휘적휘적.


와중에 이력서를 요청받아 4년 만에 새로 제출했다. 어학 관련된 건 싹싹 긁어서 담았다. 내가 영어 교사 하겠다고 진짜 덤빌 줄 알았던 건 아니었지만, '혹시' 싶어 봄에 영어 교수 자격증을 따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에 허전한 이력서를 제출하는 건 수치였을 것..


연수를 마치니 날 기다리고 있는

- 1차 테스트: 본사 코치에게 수업 시연
- 2차 테스트: 6세 대상 실습 수업 (평가자들 참관)


1차 테스트인 시연 수업을 앞두고, 내가 수업해야 하는 unit과 lesson을 본사 코치님으로부터 받았다.


부장님께 부탁드려  교구를 미리 빌렸다. 일주일 동안 lesson plan을 달달 외우고, 필요한 교구를 숙지 및 순서대로 정리하고, 학습에 필요한 율동과 게임 그리고 개인 준비물을 준비했다. 집에서 리허설을 하고 또 했다. 테스트 당일까지 1~2시간 일찍 출근해서 연습하고, 동갑 친구인 선생님께 모르는 거 물어보고, 시연해 피드백도 받아보았다.




10월 18일.

Zoom으로 본사 코치님께 수업을 시연했다.


실제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듯, 수업의 Intro를 열었다. 그런데 코치님께서 얼굴에 장난기 가득 한 채 테이크 아웃 커피잔을 들어 보이시더니 왈,


May I drink this coffee?


진짜 팥 앙금 다 튀어나온 빵처럼, 파앙- 터져서 웃었다.


어느 6세가 수업 시간에 커피를 마시나..ㅎ


ㅋㅋㅋㅋㅋ Yes, you may ㅋㅋㅋㅋㅋㅋㅋㅋ.


긴장이 확- 풀렸다. 코치님의 센스와 배려에 감사 감사 무한 감사. 덕분에 준비한 대로 시연 수업을 잘 마쳤다.

  

Time Lapse.


이어진 피드백 시간.


코치님께서 '아이들 영어 가르친 경험이 있으신 거죠?' 물으셨다. 난 무경력자이다. 저거.. 나 시연 수업 잘했다는 의미지..? (1차 자신감 장착)


그리고 저 물음은 내가 준비했던 영어 인터뷰 예상 질문 리스트에 있었다. (2차 자신감 장착)


순간 돌았다 내가. '아니요. 없습니다.' 하면 될 거를, 영어 답변을 냅다 뱉었다. 대왕 소심이가 진짜 미친 자신감 뽐내셨다. 나를 어필하고 싶었다.


그렇게 영어로 대화가 시작됐다. 영어 교수 경력이 있는지, 영어 공부는 어떻게 했는지, 왜 이 일에 도전해 보게 됐는지, 해보니 어떤지 등을 물어봐주셨다. 코치님께서 워낙 친절하게 리드해주시기도 했고, 나를 시험하고 평가하려는 느낌이 아니라 진짜 내 이야기가 궁금해서 물어보시는 것 같아 편하고 차분하게 답변을 할 수 있었다. 연습했었던 영어 인터뷰 답변 다 가져다 써먹었다 으하하하핳.


1차 테스트가 끝나고 나니, 실습도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내 안에 차올라 있었다.


실습 수업에는 원장님과 부장님께서 참관하신다.


좋아. 보여주겠어.


1차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걸 치밀하게 숙지 및 준비하고, 리허설을 하고 또 했다. 말을 너무 많이 한 탓에 목이 아파서 그만한 날도 있었다.




10월 30일.

2차 테스트, 6세 대상 실습 수업이 있는 날.


집에서 교구 점검을 한 번 더 하고 준비물을 모두 챙겨 유치원으로 갔다. 1시간 일찍 도착해서 교구 세팅을 하고, 리허설을 빠르게 두 번 했다.


으악. 떨려.


떨리는데, 분명 설레기도 했다.


아이들 앞에서 직접 하는 건 또 어떨까?


기대가 됐다.


아이들이 대답을 잘해줄까..?


걱정도 됐다.




교실 입장.


새로운 영어 선생님이 들어서자, 아이들의 호기심 가득 찬 반응이 쏟아졌다. 낯 안 가리고 맞이해 주어서 너무나 감사.. 또 감사..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수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교구를 든 손이 잘게 떨릴 정도로 긴장을 했다. 아닌 척, 여유 있는 척 준비해 온 대로 진행을 하는데, 아이들 눈을 마주하면서 자연스레 긴장감이 점차 내려갔다. 아가들이 지인-짜 예뻤다. 예뻐서 수업하면서 녹았다. 어떻게 그렇게 예쁘지.


브런치에 첨부하면 영상 화질이 왜 이렇게 떨어지지ㅠㅠ


나름 철저하게 준비를 해갔지만, 역시나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생겼다. 교구를 담아놓은 카트가 움직이면서 단어 카드가 섞이고 아래위가 뒤집혔다.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분리하고 아이들에게 카드를 내밀어 보여줄 때 자연스레 아래위를 다시 제대로 뒤집었다.


Action activity 중 하나는 안 하고 넘어가 버렸다. 'pulled'의 의미와 발음을 체득하게 해 주고자, 내 팔을 잡아당기는 활동을 준비해 갔었다. 원래는 그 활동을,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대왕 당근을 땅에서 뽑는 농부 아저씨의 이야기를 읽어주는 파트에서 했어야 했다. 그런데 까먹음. 조금 지나 '앗차' 알아차리고서,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지금 어디 끼워넣긴 애매한데.. 그냥 하지 말고 넘길까? 아.. 핵심 활동으로 준비해 온 건데 그거..ㅠ


버리긴 너무 아까워서, 하기로 빠르게 결정. 'Green'의 발음과 의미를 배우는 맨 마지막 학습을 끝내고서, 자연스레(나름..ㅎ) 이행했다.


Good job! Excellent! We leaerned about the color 'green'.

Alright, we're going to play one last game. Do you remember the story where the farmer pulled up the carrot? Do you remember?

My dear friend, can you come over here? (총총 와서 내 옆에 선 아가)

Can you pull my arm? Try it!

Oh, I think she needs more strenght. My dear firend, can you help her? Can you pull my arm, too? (한 명 더 합류!)

We need more volunteers! My dear friend, can you help them? (한 명 더 합류!)

(뽑혀주는 액션 발사!!)

Finally! Good job. You're as strong as Superman!

(끝인사)


이렇게 활동 학습을 끝으로 수업을 마쳤다. 40분이 뚝딱 흘렀다.




오늘 느낀 점.


나는 아이들을 정말 좋아한다.
그리고.. 재밌는데?!


내가 아이들을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왜지? 난 왜 이렇게 아가들을 좋아하는 걸까..?! 동생도 그렇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나보다 작은 생명체들을 돌봐주고, 지켜주고, 예뻐해주고 싶어 하는 건가.. 아이 보다 성인이 더 맞다는 선생님들을 많이 봤는데, 나는 반대다. 나는 어른들이 너무 어렵다ㅠ 아이들의 순수함이 날 편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대할 때는 분명 내 모든 언행이 자연스러웠는데, 교실에서 나와 부장님/원장님과 이야기 나눌 때 내가 하염없이 삐걱댔던 걸 보면.


빈 교실에서 사용한 교구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부장님께서 오셔서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공 들여서 준비 많이 한 게 보였다고, 보기에 너무 예쁘고 좋았다고 하셨다. 정말 잘했다고 재차 말씀해 주셨다. 노력을 인정받아서 기뻤고, 잘 해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원장님과도 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칭찬을 많이 해주시곤, 내년에 작은 자리라도 꼭 주겠다고 하셨다.


확약을 받았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저번 연봉협상 때 약속받았던 월급 인상이 올해 갑자기 취소되고 되려 월급이 반토막이 났기 때문에.. 이 약속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차량 동승자 자리도 내년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이렇게 4년째 1년 단위로 근로 재계약을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안정적이지 못하지만, 이 불안감을 '안주하고 변화를 피하는 성향의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계속 쓰고 있다. 글을 꾸준히 쓰는 데에 보탬이 되기도 하고.


필요에 의해 언제 내쳐질지 모른다는 걸 올해 크게 체감하고서, 수입원을 분산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에 대한 실천 중 하나로, 외국의 언어 학습 플랫폼에 한국어 교사 등록 신청을 했다. 자격증, 학위, 자기소개서 등 제출하고 소개 영상도 찍어 올리고.. 그게 얼마 전에 승인이 났다. 다른 선생님들의 플랫폼 체험 후기를 보니 승인 나고 1주일 뒤쯤부터 수업 의뢰가 온다는데 나는 승인받은 그다음 날에 의뢰가 왔다. 지금 상담 중인데, 고정 수업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모르겠다. 잘해봐야지!


아무튼, 실습 수업을 끝으로 큰 도전 하나를 마쳤다. 이전까진 내 직업으로써 평생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직군이었는데, 해보니 나와 잘 맞고 재밌다는 느낌을 받았다. 좋은 기회였다. 글의 서두의 썼듯이 초반에 맘고생이 심했기에,


그냥 처음에 '해볼래? 해보자.' 제안받았을 때 하지 왜 이제와 덤벼서 이런 일을 겪고 있을까.


하고 자책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 마음먹기까지 그만큼의 시간이 내게 필요했다. 쉽게 결정 내릴 수 없는, 내 인생에 너무나도 큰 일이었다. 새로운 일에 몰두하느라 글을 소홀히 하게 되진 않을까 겁이 많이 났고,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일인지-책임질 수 있는 일인지 충분히 고민해야 했다. 이런 내 신중한 성격에 대해 '도도하다'라는 말을 들어 퍽 속상했었다. 아직도 아린 말이다. '너 뭐 돼?'로 들렸다. 어리석은 선택을 피하고 싶고, 폐 끼치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이-긴 고민이 누군가에게는 비싸게 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거 아니었는데..ㅜ 설득하는 입장, 인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불편했을 수 있겠다. 그래도 나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심에, 기다려주심에, 이렇게 도전해 볼 틈을 열어주심에 감사하다. 증명해 보여서 다행이고.


다음에 또 무언가 도전을 할 때는 덜 겁내보자. '그냥' 한 번만 해보자.


생각이 여기까지 닿고 보니, 엄마가 떠올랐다. 자기 마음이 동하기 전까진 끄떡도 안 하는 나 키우느라 고생 많이 하셨겠다 싶어서. 해야 하는 이유를 일일이 다 설명해 줄 수 없는(설명해 줘도 못 알아들음), 일단 엄마 말대로 해야 하는 일들이 어릴 땐 참 많은데 말이지. 그걸 어찌 다 끝내 내가 할 수 있도록 만드셨을까. 고생했겠다 울 엄마. 고마워 엄마.


11월도 변함없이 열심히, 성실하게 살자. 화이티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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