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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신효인 Aug 09. 2023

검열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문을 점점 작게 만들지

머릿속에서 그냥 나오는 건 없다


https://brunch.co.kr/@shinhyoin/80


안녕하세요.
작사가 신효인입니다 :)

요즘 날씨가 많이 더운데, 컨디션 관리 잘하고 계신가요?

이번 글에는 '가사를 쓰는 과정' 도움이   있는 내용을 담아보려고 합니다 :)

멜로디가 가진 글자 칸 수에 맞춰서 가사를 쓰는 게 작사가들의 일이죠. 가사 내용은 , 화자(가수) 성별/연령/이미지  그리고 기획사가 요청하는 바에 따라 방향이 결정돼요. 이에 따라 기획한 스토리를  나타내면서도 곡에  붙는 가사를 쓰기 위해서 작사가들은 책상 앞에 앉아 오랜 시간 고민을 하죠.


'이 단어가 좋을까? 이게 나을까?'


끊임없이 생각을 하며, 머릿속에서 혹은 하얀 종이 위에서 수많은 단어들을 썼다 지우길 반복합니다.


이때 저는 '지우기'를 아주 최소화하는 편이에요. 일단 떠오르는 대로 다 적어요. 예를 가져와서 저의 작업 스타일을 조금 보여드릴게요.


-
[Middle 8]
2 2 2(아/야)


이렇게 글자수를 먼저 따요. 글자수 표기는 0/ㅇ/ㅁ/_ 등 자신에게 편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해도 됩니다. 저는 칸 수를 숫자로 표시하고, 라임을 맞춰야 하는 부분에는 괄호를 사용하여 중성(음절의 구성에서 중간 소리인 '모음'_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을 써둬요.

그다음, 저 칸 수에 넣고 싶은 단어들을 떠올리며 적습니다. 저는 슬래쉬를 사용해서 구분 표시를 하며 떠올리는 대로 다 적어요.


-
[Middle 8]
2 2 2(아/야)//더는 꿈이 아냐//이젠 꿈이 아냐//막연하지 않아//환상 속이 아냐


쓰면서 '이건 좀 별론가? 잘 안 붙나? 단어가 좀 튀나?' 이런 생각이 들어도 일단 다 써넣어요. 

제가 '지우기'를 최소화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어요.

일단 <머릿속에서 지우기>부터 이야기를 해볼게요. 머릿속에서 자체 검열을 강하게 하는 게 습관이 되면, 아이디어가 나오는 이 점점 좁아져 막히게 되어요. '이건 별로다'하는 자체 평가 데이터가 계속해서 쌓이면 무의식적으로 자신감도 줄고, 적어놓고 눈으로 앞뒤와 함께 보면 괜찮은 단어나 구절도 쉽게 흘려보내게 됩니다. 그러니 머릿속에서 자꾸 아이디어를 쳐내지 마시고, 일단 다 적어보시길 권해드려요. 일단 적어놓은 다음, 빼도 되니까요! 한 큐에 완벽한 단어를 뽑아내려고 하기보다, 고민하고 조금씩 만져가면서 베스트를 찾아가는 과정을 밟는 게 중요해요. 풍부하게 시작해서, 점점 좁혀가면 됩니다. 머릿속에서부터 별로라고 일찍이 쳐내지 마시고, 일단 손가락을 움직여 적어보세요! 눈으로 다른 파트와의 밸런스와 궁합을 봐보세요!

그다음은 <종이에서 지우기>를 이야기해볼게요. 발음, 전체와 이 단어의 결, 중복 여부 등을 고려해서 종이 위에 풍부하게 적어놓은 선택지들을 이제 가지치기해야겠죠? 이때 Backspace를 다다다다다 눌러서 '삭제'하지 마시고, '새로 옮겨 적기'를 추천드려요. 위의 예를 다시 한번 가지고 와서 설명드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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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dle 8]
2 2 2(아/야)//더는 꿈이 아냐//이젠 꿈이 아냐//막연하지 않아//환상 속이 아냐


-
[Middle 8]
더는 꿈이 아냐//환상 속이 아냐


-
[Middle 8]
더는 꿈이 아냐


이렇게 새로 적으면서 정리를 해가는 거예요. 이 방법이 도움이 되는 점은, 작업을 하다 보면 '음... 뒷부분이랑 같이 다시 보니 아까 그 단어랑 더 잘 맞겠다' 혹은 '여기 반복 구간은 아까 그걸로 변형을 주면 딱 좋겠다'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냥 삭제를 해놓으면 '아아...?! 근데 그게 뭐였더라..? 이거였나...? 오에.. 느낌이 조금 다른데?' 되어버릴 수 있어요. 그 구간을 지나서 이미 다른 멜로디와 단어에 엄청난 집중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떠올리려 하면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있어요.(많아요!) 이럴 때를 대비해서, '새로 옮겨 적기'를 해놓으면, 페이지를 다시 올려서 탈락된 선택지들을 다시 한번 눈으로 보며 검토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수정 내역을 데이터로 다 쌓아놓는 거죠. 곡의 후반 부로 갈수록 가사 길이가 늘어나기 때문에 새로 옮겨 적는 양도 늘어서, 수정 횟수에 따라 워드 페이지 수가 엄청나게 많아질 수 있어요. 그래서 페이지 여백을 좁게, 글자수를 작게 해서 (페이지를 확대해서 시력 지키기!) 작업하면 편리하답니다.


(저는 브런치 글도 '새로 옮겨적기'로 수정 과정을 거쳐서 탈고해요!)

좋은 가사, 최고의 가사를 뽑아내고 싶은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자꾸 머릿속에서 아이디어를 탁탁탁 엄격하게 쳐내고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데모를 듣는 동안 작가님 머릿속에 떠오른 모든 건, 다 그냥 떠오르는 게 아니거든요. 어떤 포인트가 곡과 연결이 되어서 작가님 마음속, 머릿속에서 그 단어가 튀어 오른 거예요. 그러니까 그 단어를 마주한 순간에는 '오에..?!' 싶더라도, 쳐내지 말고 꼭 적어보세요. 다 적어놓고서 고민을 해보세요! 한 번에 '오 예스! 바로 너야!' 하는 단어를 찾으려 하기보다, 떠오른 아이들을 하나하나 부르며 음미해 보고 궁합도 봐주고 다듬어주고 하면서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가면 됩니다 :) 

오늘 글도 작가님께 참고가 되거나 도움이 되는 내용이면 기쁠 것 같아요. 모두 편안한 저녁 시간 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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