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사가 신효인 Oct 19. 2023

최종 가사 시안이 나오는 과정

영차 영차 으랏차차

                 

안녕하세요.

작사가 신효인입니다 :)


날이 많이 추워졌는데, 따뜻하게 입고 지내시죠?


저는 부쩍 손발이 차가워져서 학원 차 오르내리는 아이들 손 잡아줄 때나, 학원에 막내 딸랑구들 머리 새로 묶어주거나 삔 꼽아줄 때 혼자 속으로 미안해하는 시즌을 맞았답니다 하하핳ㅜㅜ 아가들 손이나 이마가 너무 따뜻해요ㅠㅠ 반대로 아이들에게 제 손은 너무나 차갑겠죠...? 흑흑흑 오늘 딸랑구 한 명 벨트 채워주느라 제 얼굴이 아이 얼굴에 가까이 갔었는데, 아가가 제 얼굴에 뽀뽀하려고 입술을 쭉 내밀어서 귀여움에 기절할 뻔 했어요.. 하하하핳 (조금 전에 일어난 따끈따끈한 러블리 이슈..)


수다가 길었네요! 본론으로 들어가면, 이번 글에서는 저의 '가사 시안 탈고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저의 경우, 최종 가사가 나오기까지 크게 세 단계를 거쳐요.

Part 1) 곡 음미하기
Part 2) 가사 쓰기
Part 3) 최종본 탈고하기

이 중, 마지막 단계에 대해 오늘 나눠볼게요 :)


저는 곡과 충분히 교감하고(Part 1) 한 줄 한 줄 온 마음 다해 채우고 나서(Part 2), 마지막으로 검수(Part 3)를 합니다. 창의성이 발현되는 Part 1, 2 못지 않게 Part 3도 정말 중요한데요. 그 이유는, 저의 가사에 효용성을 더해주는 과정이기 때문이에요. 무슨 말이냐 하면, 밤새 영혼을 갈아넣어 뽑아낸 가사가 실수 또는 오류로 채택 문턱 구경도 못해보고 탈락되는 일이 일어나면 안 되잖아요. 그런 불상사를 막아주는, 쓸모를 더해주는 필수불가결 단계입니다. 그래서 저의 검수 과정은 꽤나 꼼꼼하고 치밀하답니다 흐 ^_^ 이 Part 3 안에도 여러 단계가 있어서, 하나 하나 소개해드리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드릴게요.



3-1. 문서 작성

저는 먼저 태블릿에서 작업을 시작해요. 태블릿 노트에서 브레인스토밍부터 기획, 가사 완성까지 한 뒤에 노트북으로 넘어갑니다. 태블릿에서 노트북으로 가사를 옮긴 다음, 노트북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 가사를 넣어 최종본 파일을 생성해요.


이렇게 하는 건 백업을 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제가 '환기'가 꼭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보던 화면을 계속 보다보면 무뎌지고 시야가 좁아지더라구요. 태블릿에서 노트북으로 작업 환경을 바꿔주면, 각성이 되어 더 꼼꼼하게 가사를 살피고 다듬을 수 있어요. 완성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답니다.



3-2. 음절 수 점검

데모를 다시 들어보면서, 음절 수 오류가 없는지 최종 점검하는 단계입니다. 태블릿에서 작업할 때 멜로디를 듣고 또 들었음에도, 저는 이 3-2 단계에서 종종 음절 수 오류를 발견해요. 두 칸에 세 음절을 넣어놓는 등. '아니, 몇 번을 들었는데 이걸 지금껏 그냥 지나쳤지?' 한답니다. 3-1에서 말했다시피, 작업 환경 변화가 역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오류 Zero라고 확신이 들 때까지 점검과 수정을 반복하고, 이제 정말 오류 Zero의 완전 최종본이라는 판단이 서면 그때부터 데모를 4번 더 들어보며 멜로디에 가사가 착하고 잘 붙는 지 체크를 합니다. (최종의 최종의 최종의 최종..ㅎ)



3-3. 단어 중복 사용 점검

Part 3에서 어느 단계 하나 빼먹을 수 없지만, 저는 이 3-3 과정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마감 시간을 맞추기 위해 졸음과 다투며 밤새 가사를 쓰다보면, 그 채로 가사의 주제와 메세지에 집중하다보면, 뇌의 활동이 둔해지고 큰 그림을 보지 못하면서 단어를 중복해서 쓰는 경우가 생겨요.(앞서 썼던 단어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그런..) 곡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그러니까 후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등장해야 하는 가사의 핵심인 단어 외에는 중복해서 쓰지 않고자 신경을 쓰는데도, 종종 그러더라구요.


예를 들어서.. 음.. [이러저러해서 결국 이렇게 되었어]라는 이야기를 하는 가사에서 '결국'이라는 단어를, [너 뿐이야]라는 이야기를 하는 가사에서는 '유일'이라는 단어를 재차 쓰는 거죠. 영어로는, [새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사에서 'new'가 거듭 등장하거나... 저는 이런 경우를 매우 경계해요. 같은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건, 가사 퀄리티를 확 떨어트리거든요. 표현을 풍부하게 못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구요!


그래서 중복 단어 사용 여부를 예민하게 체크하는데, 사람인지라 제 힘만으로는 완벽하게 중복이 차단되지 않더라구요. 이런 저를 도와주는 비서(?)가 있어요! 그 비서는 바로 워드의 '검색 기능'이에요. 워드에서 [Ctrl+F] 단축기를 누르면, 단어 검색이 가능해요.



이렇게 띄워진 창에 저는 가사를 채우는 모든 단어를 하나씩 검색해봐요.


제가 만약에 'save'라는 단어를 세 번 사용했다면, 'save'저 창에 검색했을 때 [3개 일치]라고 뜨고 'save'가 포함된 문장들을 보여준답니다.


이때 은, 한글은 어근(또는 어간) 위주로 검색 본다는 건데요. (그러니까, 실질 형태소를 검색하는 거죠! 최대 간단하게 설명해 볼게요.) 사진 속 예시 가사를 빌려서 설명을 해보면,


[Verse 1]
시간이 흘러
...

(중략)

[Chorus 3]
...
흐른 눈물에


이 경우에 저는 첫 줄에서 '시간/흘/흐'를 검색해 봐요. 첫 줄에 '흐'는 없지만, [흘러]의 원형은 '흐르다'이기 때문에 사용한 '흘' 뿐만 아니라 '흐'도 검색해 보는 거예요.


그러면 맨 마지막 줄의 [흐른]이 검색으로 걸러질 거고, [흘러]와 [흐른]의 의미/쓰임을 검토하면서 둘 다 둬도 되는지 또는 하나를 수정해야 할지, 뭘로 수정할지 고민해 보는 거죠. 판단에 따라 수정 없이 갈 수도 있고, 수정이 될 수도 있구요. 이 예시 같은 경우에는.. 저는 그냥 뒀을 것 같아요.


쉽게 기억하자면, 검색하려는 단어의 '원형이나 떠오르는 활용형도 검색해 본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흘러] 검색하면 [흐른]이 검색으로 안 걸러지니까요. 영어도 비슷하게, 가사에 [news]가 등장한다면 저는 'news'도 검색해 보고 'new'도 검색해 보구요. 꼼꼼. 꼼꼼.


가사의 단어들을 하나씩 검색창에 넣는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좀 더 꼼꼼하게 확인하기 위해서 그 단어의 원형이나 다른 활용형도 검색창에 넣어보는 겁니다!



3-4. 애드리브/추임새 채워 넣기

데모를 듣다 보면, '어? 이것도 가사지에 넣어야 하나?' 싶은 애드리브/추임새들이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들리는 것들은 최대한 다 가사지에 넣으려고 해요. 왜냐하면, 애드리브/추임새도 가창자에 의해 '불리는' 부분이기에 가사에 포함되는 거고, 그러면 작사가인 '저의 몫'이죠! 데모에서 들리는 것만큼은 제가 다 적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데모에 들리는데 가사지에는 없다? 그래서 아티스트가 연습을 하다가 가사지에 없는 그 부분을 손글씨로 채워 넣는다? 으으 상상만 해도 미안하고 민망하고 괴로워요. 그래서 예를 들어, '워어어어' 같이 표기하기 힘든 애드리브들도 (그 길이나 소리를 완벽하게 다 표현하지는 못하더라도) 'woahhh'로 가사지에 넣어둬요. 가창자가 '아 여기에 애드리브가 있구나'라고 알 수 있게요.


아티스트는 녹음을 할 때, 높은 퀄리티를 내기 위해 가사지에 많은 메모를 적어 넣어요. 호흡은 어떻게, 발음은 어떻게, 어디서 음을 꺾을지 등등. 데모에 존재하는 가창되는 부분들을 빠짐없이 제가 다 적어서, 아티스트가 연습하거나 녹음할 때 해당 부분에 저런 스킬적인 디테일을 메모할 수 있게 저는 가사지를 씁니다. ('woahhh' 같은 부분은 곡이 발매되었을 때, 곡 정보에 들어가는 가사에는 빠지더라도요!)


출처: RIIZE Youtube 공식 채널 'Memories' Recording/Dance Practice I RISE & REALIZE Ep. 2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물어보기도 애매한 그런) 고민이 들 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거나 '내가 어떻게 해야 이 곡이 세상에 나오는 데 보탬이 되는가' 또는 '어떻게 해야 내 가사지를 받아 든 이에게 도움이 되는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명료해지더라구요 :)


'come on/let's go/here we go' 같은 추임새들도 데모에서 가져다가 가사지에 넣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새롭게 쓴 가사에 맞춰서 수정해야겠죠? 예를 들어보면,


<데모 가사>
Now I don't care (let go)

<최종 가사>
익숙하게 (난 또)


이렇게 3-4 단계에서 메인 가사 외에 덧붙여야 하는 애드리브/추임새 등을 가사지에 꼼꼼하게 채워 넣습니다.



3-5. 메일 작성

이제 다 왔습니다! 3-1부터 3-4 거쳐 최종 가사지가 워드 파일로 탈고되었으면, 그 파일을 첨부하여 의뢰 메일에 대한 회신 메일을 작성합니다. 저는 메일을 보낼 때, 인사와 용건 소개에 더불어서 가사에 대한 설명을 곡 당 5 문장 내외정도로 적어서 보내요.


이것도.. 누가 시킨 건 아닌데요! 첫 시안을 제출할 때, 메일 양식 같은 것도 없고 어디 조언을 구할 데도 없어서 '회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하고 소심이인 저는 고민을 많이 했더랬죠. 제가 메일을 받는 입장이라면.. 하고 생각해 보니, '요청해 주신 @@ 님의 %%곡 가사 시안 첨부하여 메일 보내드립니다.'하고 파일 하나 띡 첨부되어서 오는 것보다, 가사에 대한 작사가의 설명이 짧게라도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메일에 가사 소개를 한 문단 정도 적게 되었고, 그게 저의 form이 되어서 지금까지도 계속 그렇게 메일을 작성하고 있어요.


마감 시간에 맞춰서 메일 작성을 하고, '전송' 버튼을 누르면 탈고된 시안 제출 완료!




저의 최종 가사 시안이 나오는 과정은 이러합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매뉴얼을 만들어놓고 일했던 건 아니고요, 일하면서 이렇게 자리를 잡게 되었어요. 매뉴얼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업계 표준이나 정석은 절대 절대 절대 아니고, 제 방식일 뿐이어요.)


3-1에서 3-5까지 거치는데 저는 평균적으로 2시간 정도 들어요. 잠이 너무 부족하니까 '이 과정을 좀 단축해야 하나' 하고 진지하게 고려해 봤는데, 안 되겠더라고요. 줄이거나 덜어낼 것도 없고, 이 과정을 소홀히 하면, 꼭 실수가 나와요.


근데 제출한 뒤에 실수 발견한 건 아무 쓸모없거든요? 이미 떠나간 배.. 버스.. 내 이름 걸고 하는 일인데, 프로답게 해내야 하는 건데!! 실수가 있으면 얼마나 민망하고.. 창피하고.. 닦이지 않는, 닦을 수 없는 내 얼굴에 뱉은 내 침.. 이이익!!


그래서 저는 양보 없이, 타협 없이 이 매뉴얼을 꼭 지켜서 시안을 제출해요. 그리고 저는 기본적으로 잠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이렇게 매뉴얼이 있는 게 해롱해롱할 때 참 힘이 많이 되더라고요. 


이번 글도 도움이 되거나, 참고할 부분이 있다기쁠 것 같아요. 오늘 글을 적으면서, 가사 시안 form이나 의뢰 메일은 어떻게 오는지, 저는 어떤 식으로 시안 제출 메일을 적는지도 궁금하시겠다 싶더라고요. 쭉쭉 뻗어가는 잔가지!! 그래서 이 내용들도 차차 들고 올게요.


제가 처음 브런치 시작할 때만 해도, 작사 관련 글감이 많지 않았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나눌게 많아진 게 새삼.. 신기해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걸어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기도 하고요. 글을 쓰면서 또 기운을 얻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만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검열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문을 점점 작게 만들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