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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호 Jul 22. 2023

샌 프란시스코에 두고 온 마음

가수 토니 베넷의 죽음에 부쳐

토니 베넷(1926~2023)

주말 아침에 뉴스를 검색하던 중 미국의 재즈가수 토니 베넷이 무려 96세로 타계한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레이디 가가와 함께 공연하던 모습을 보며 이 사람은 웬지 100세 이상 살 것처럼 정정해 보였는데 결국 영면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니 베넷의 노래를 처음 접한 것이 아마도 중학교 때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디제이 이종환씨가 진행하던 심야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것 같고 그때 들었던 곡이 바로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였다. 이전에 알던 스코트 맥켄지의 자유분방한 느낌의 곡인 San Francisco와는 다르게 차분하고 세련된 곡이었다. 당시 ‘카세트 테이프’에 노래를 녹음해서 영어 리스닝 연습을 하던 나로서는 좋은 영어 교재였다. 이 곡의 장점은 고음이 안 올라가는 음치였던 나도 저음으로 적당히 깔면서 얼마든지 부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곡을 다 외우고 고등학교 들어갈 즈음부터 이 곡이 내 최고 애창곡이 되었다. 물론 친구들 앞에서 부르지는 않았다. 이 곡은 오직 나 혼자 듣고 부르는 나만의 노래였다.


시간이 흘러 터키 이스탄불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운전하는 동안 들으려고 CD를 몇 개 구입했다. CD 중 대부분의 시간을 들었던 것이 프랭크 시내트라와 토니 베넷의 베스트 앨범이었다. 매일매일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너 출퇴근하는 도중에 두 사람이 부르는 The way you look tonight, The best is yet to come, I’ve got you under my skin 등 미국 팝과 재즈의 가장 스탠다드한 곡들을 들으면서 운전했다. 물론 그 중의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였는데 비록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는 아니었고 가본적도 없었지만 보스포러스의 긴 다리를 지날 때면 이 노래로 바꾸어 들었다. 이 곡은 이스탄불의 고대와 현대가 믹스된 풍경과도 나름 잘 어울렸다.


그러던 중 샌프란시스코로 출장을 갈 기회가 있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저녁에 비행기 타기전까지 시간이 있어 아침 일찍 호텔에서 나와 금문교 쪽으로 걸어갔다. 영화로만 보던 샌프란시스코의 경사진 언덕을 지나 다리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거리가 꽤 되었는데 얼추 한시간 정도 걸어서 ‘빨간 색 다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금문교를 걸어 가면서 좌 우측의 풍경을 보고 혼자 이 노래를 수십 번씩 흥얼거렸다. 길을 잘 몰라 3~4시간을 여기저기 걸으면서 나중에 도착한 곳이 ‘팔로 알토(Palo Alto)’ 부근이었는데 그때는 걷는 것이 힘든 줄도 몰랐다. 이후에 배를 타고 부두로 오는 도중에 알카트라즈 감옥 등의 풍경을 볼 수 있었고 노래의 가사와 더불어 주변의 풍경을 생각해보니 마치 오래 전에 본 것 같은 데자뷰(Deja-vu)를 느꼈다. 이 날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었고 모든 풍경 하나하나가 아직도 연속사진처럼 떠오른다. 이 모든 것이 한 가수와 그의 노래에서 비롯되었다.


이태리계인 토니 베넷은 2차대전 당시에는 미군의 일원으로서 나치와 싸웠던 전쟁 영웅이었고 제대 후 가수로 되었는데 부드러운 저음으로 많은 스탠다드 재즈곡들을 부르면서 인기를 누렸다. 또한 여러 가수들과의 협연을 통해 노년에도 그래미상을 받는 등 지칠 줄 모르는 활동을 이어갔다. 이러한 그도 세월의 흐름을 거슬릴 수는 없었나 보다.


내 인생에서 부지불식간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한 노래와 그 노래를 부른 가수의 죽음에 부쳐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 보았다.


고인의 안식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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