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전문분야를 선택하는 것은 소수의 특권

- 그렇지만 모두에게 기회는 있다

by 쎄씨로이어

지금 20대들에게 묻고 싶다. 본인은 본인이 잘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

만약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은 인생의 많은 시간을 아낀 것이라 축하드리고 싶다.


나의 경우는 달랐다.

나는 파워 J형 인간이지만, 정작 인생의 큰 일들은 계획한 대로 흘러간 적이 없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대학 입학의 경우, 친구가 수시로 대학을 빨리 붙은 것이 부러워 나도 재수를 하지 않기 위해 적당히 성적에 맞추어 지원했고, 지원한 학교들의 전공은 모두 달랐다.

그중 가장 남들이 좋다는 학교에 합격하여 다니다가 우연히 들은 교양에서 '법, 행정' 관련 과목이 나의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뜬금없이 행정고시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고시공부라는 게, '어디 한번 해볼까?'라는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되는 일이었던가.

나는 고시반의 무시무시한 포스를 가진 선배님들을 보고 지레 겁을 먹고, 그냥 학교를 열심히 다니다가 공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3학년쯤엔, 갑자기 미국 유학이 가고 싶었고, 졸업할 때쯤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생겨 로스쿨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로스쿨에 입학하고 나서는, 어차피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변호사가 되었다.


변호사가 되었을 때도 나는 어떤 전문분야의 변호사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은 없었다.


로스쿨 다닐 때 들었던 상법 강의가 재밌었고, 기업과 관련된 실무수습이 흥미로워 사내변호사로 취직을 한 것일 뿐, 로펌은 어떨까, 회사는 어떨까 깊은 고민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이후 금융회사 사내변호사로 이직하게 된 것도, '나는 금융 전문 변호사가 될 거야'라는 생각보다는, 일단 다니던 법무법인에서 지나친 근무량에 번아웃이 왔고, 송무 외에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 컸으며, 무엇보다 뷰가 좋은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쯤 되면 J라고 말하지 말고, P도 거의 파워 P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솔직히 저때도 30대 초중반이었기 때문에 아주 깊은 생각은 없었던것 같다.

(사실 이직에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연봉과 복지 아니던가...)


이런 내가 '금융 컴플라이언스' 분야에서 8년 넘게 일하고, 금융 전문 분야를 가지게 해 준 것은 선택에는 과감할지언정, 그 이후 스스로에게 맞는지 냉정하게 판단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진 덕분이 아닌가 싶다.


학부 때 들었던 '법 행정'과 관련된 과목이 흥미로워 행정고시를 볼까 싶었지만, 결국 여러 탐색의 과정 끝에 법학을 전공하고 법률가가 되었고, 로스쿨에서 들은 상법 관련 코스가 흥미로워 사내변호사가 되었지만, 좀 더 다이내믹한 법률환경을 경험해 보고 싶어 법무법인으로 이직했다. 금융 쪽 사내변호사가 된 것은 앞서 말한 이유와 전문분야를 가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고 아마 이 분야가 나와 맞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미국으로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이게 될까? 내가 이때까지 해온 거랑 너무 다르지 않나?'라는 생각보다는 일단 좋아 보이면 해보고, 그 안에서 해답을 찾는 나의 방식이 결과적으로 나의 인생에 큰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어려서 무모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리 파워 J라도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어떤 것이 마음에 들어 보인다면,

마음에 들게 된 이유가 아무리 하찮아도 나의 내면의 소리이니 들어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내가 8년 전 그 회사의 뷰에 마음을 뺏기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내 전문분야를 찾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있었더라도 금융은 아니었을 것 같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치열하게 살아온 여러분에게,

생각보다 인생의 방향은 작은 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마음이 뛰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꼭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을 알지도 못하면서 선택하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좋은 빌딩에서 일하고 싶어'

'나는 멋진 슈트를 입고 일하고 싶어'

'나는 고액 연봉자가 될 거야'

이 정도의 생각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꼭 대단하고 멋진 이유로 '나는 ~~ 분야의 전문가가 될 거야'라고 생각을 해야만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여기지 않는다.


전문분야를 경험하기 전에 '선택'할 수 있는 인사이트와 자기 통찰이 있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그분들의 특권이다. 더 미리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렇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나만의 전문분야를 가지고,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존중과 존경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인생은 언제나 예측불허이기 때문에... 삶의 방향은 어찌 될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그 방향을 바꿀 기회는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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