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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슨 Mar 12. 2023

사라진 대한민국 야구의 입지에도 봄은 오는가?

2023 World Baseball classic

2021년에 치러진 도쿄 올림픽에 이어, 6년 만에 개최된 이번 WBC에서도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준 야구 대표팀의 모습 그리고 이를 통해 제대로 드러난 대한민국 야구의 현실을 보고 답답한 마음에 이제 야구 보기 시작한 지 대략 16년째 되어가는 평범하지만 야구에는 진심인 한 야구팬의 생각을 간략한 듯 간략하지 않게 적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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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라는 대회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2006년에 만든 국제 야구 대회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만든 만큼 당연하게도 대회 진행 방식의 여러 부분들이 미국에 유리하게끔 되어 있다. 특히 조별리그 조 구성이 그렇다. 이번 대회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전력에 가장 맞먹는다고 여겨지는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일본 등의 팀들을 모두 하나의 조 혹은 미국과 다른 조로 편성하는 것을 통해 미국이 좋은 대회 성적을 다른 경쟁 팀들에 비해 더 손쉽게 올릴 수 있게끔 해놓았다.

그런데 이런 편파적 조 구성을 통해 반사 이익을 얻은 팀도 있었다. 대표적인 팀이 바로 우리나라이다. 우리나라는 강팀 일본과 같은 조로 편성되긴 했지만, 호주, 체코, 중국이라는 객관적인 여러 지표로 봤을 때 우리나라보다 전력이 약한 3팀도 함께 편성되었기 때문에 조 2위까지 다음 라운드 진출이 가능한 대회 규정상 조 1위는 아니더라도 조 2위로 무난한 조별 예선 통과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상황은 사람들의 예상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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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렇게 문제였을까? 모든 건 1차전 호주전에서 시작되었다. 호주 대표팀의 실력과 전력을 너무나 과소평가한 것일까?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한 투수 운영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대한민국 야구 실력이 문제였을까? 아마도 위의 이유를 비롯한 다른 모든 복합적인 이유들 때문일 확률이 가장 높일 것이라 생각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는 사실상 연결되어 있는 문제다. 대회 시작 전부터 조 2위로 다음 라운드 진출한다는 전략이 가장 합리적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전략적 열세였던 일본과의 경기보다는 호주와의 경기에 더더욱 총력전을 펼쳐하는 게 당연했다. 그렇다면 호주전에서는 오로지 훈련 과정이나 연습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을 우선적으로 기용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투수진의 경우, 국제 대회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나 팀 내에서 가장 컨디션 좋은 선수들로만 운영해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서의 운영은 이와 다르지 않았나 싶다. 이번 대회가 첫 국제 대회이거나 아직은 국제 대회 경험이 부족했던 투수들은 호주, 일본전이 아니라 체코, 중국전에 등판하는 게 더 맞는 선택이 정말로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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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다르게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정말로 실력의 문제일 가능성도 다분하다. 대표팀의 에이스 투수가 누구냐고 야구팬들에게 2008~2010년에 물어보면 십중팔구가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 선수를 이야기했다. 같은 질문을 2023년에 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선수의 이름을 댈 것이다. 이게 바로 문제점이다. 아무리 앞선 3명의 선수 기량이 훌륭하다고 한들, 이 선수들도 나이를 먹기 때문에 기량이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 선수들을 대신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줄 선수가 반드시 필요했지만 이번 대표팀에는 그런 선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투수진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타자들도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준 것 또한 사실이다. KBO 리그를 오래 보다 보면, 한 가지 리그의 특징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바로 어느 팀이건 새로 데뷔한 신인 투수가 자신의 KBO리그 첫 경기에서 높은 확률로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것이다. 난생처음 보는 투수의 공에 타자들은 적응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다 보니 그 신인 투수의 첫 경기에서만 타자들이 힘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적응의 시간이 끝나면, 그 신인 투수가 류현진이나 김광현 선수 같은 괴물이 아닌 한, 타자들은 금세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국제 대회 경기는 타자들은 매우 높은 확률로 살면서 처음 보는 투수의 공을 공략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 선수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승후보 미국, 도미니카, 일본도 그렇고, 심지어 야구보다 축구가 중심인 유럽 국가들에게도 그렇다. 모두 똑같은 조건이다. 결국 타자들의 능력은 이러한 상황에서 얼마나 빠르게 적응력을 보여주느냐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호주전에서 보여준 대한민국 타자들의 경기력은 당연히 실망스러운 쪽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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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전은 경기 내적, 외적인 요소 모두의 복합적인 문제 때문이었다고 말한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하지만 일본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는 오로지 실력의 참패였다. 일본전을 보면서 나는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의 근본적인 인프라 차이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구나 싶었다. 한국 프로야구가 뿌리 깊은 여러 인프라 문제들을 하루빨리 제대로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일본과의 격차가 더 벌어지는 건 시간문제이다.

한국 프로야구 리그를 보면 어떤 투수가 150km의 공을 던지면 그 선수에게 엄청난 이목이 쏠린다. 그런데 일본 프로야구나 메이저리그를 보면 160km에 가까운 공을 던지는 선수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렇다 보니 150km 공을 던지는 선수는 점점 평범하게 여겨진다. 그러면 150km의 공은 타자에게도 평범해진다. 이미 평균 150km 구속의 공이 눈에 익숙해져 있는 일본 타자들은 평균 140km 중반의 구속을 갖는 우리나라 투수의 공에 금방 익숙해지는 게 당연하다. 반면 우리나라 타자들은 난생처음 보는 평균 구속 150km대의 일본 투수들의 공에 한 경기 내에 빠르게 적응하기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차이는 금방 극복할 수도 없다. 앞서 말했듯, 리그의 인프라 문제라는 근본부터 뜯어고치지 못하면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나도 극복하기 힘들지 모른다.

뛰어난 수비로 한국 팬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현지의 많은 팬들과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 김하성 선수도 사실 메이저리그 진출 첫 해 타격 지표는 그렇게 인상적이지 못했다. 100마일에 육박하는 속구에 크나 큰 약점을 노출하다 보니 별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시즌이었던 지난해 김하성 선수는 속구 대처 능력을 비롯해 여러 타격 지표에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 주었다. 김하성 선수의 사례처럼 속구 대처 능력은 리그에서 속구에 노출되는 빈도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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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빨리 아마추어 시스템부터 리그의 깊은 근본을 바꿔야 한다. 물론 쉽진 않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팬들의 외면과 같은 여러 어려움들이 닥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

그렇지만 만약 이번에도 정신 차린 척만 하고, 대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장의 리그 흥행에만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인다면, 대한민국 야구는 류현진, 김광현, 이정후 선수처럼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에만 100%, 200% 의존하는 야구를 하게 될 것이고,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야구와의 격차는 더더욱 걷잡을 수 없이 벌어져 영원히 우물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더 많은 팬들이 프로야구 혹은 야구라는 스포츠를 떠나게 될 것이다.

이번 대회가 이전부터 조금씩 진행되어 왔던 야구의 하락세에 정점을 찍을 가능성은 매우 매우 높다. 하지만 이런 위기 상황을 선수는 물론이고 감독, 코치진을 포함한 대한민국 야구계 전체가 08,09년도에 있었던 야구 붐의 재현을 위한 기회로 삼는 진정성 있는 태도를 제발제발제발제발 좀 보여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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