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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Apr 29. 2024

골 때리는 책

피에르 바야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여름언덕

제목부터 골 때린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니. 쉽지 않은,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조금 있었지만 다 읽고 나면 이 책 정말 골 때리게 웃긴다는 말이 이해될 것이다. 책 좀 읽었다고 우쭐해하는 사람에게 우아하게 일침을 날리고, 안 읽었다고 움츠려 있는 독자에게 해방감을 준다. 우아한 비판과 고급스러운 유머, 시종일관 말장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절대 우스꽝스러운 책이 아니다. 유머가 없는 유머야말로 고급 유머라고 했다. 이 책이 그렇다. 웃기다. 정말 재밌다. 그런데 웃기고 재밌다고 말하기엔 심각하고 진지하다. 그래서 참신하다.


이 책은 김상혁 시인님 인스타를 보고 구매했다. 너무 재밌다고 추천하셔서 - 정확히는 내가 혼자 추천 당한 것) 바로 구매해서 읽었다. 이 책 저 책 읽느라고 다 읽기까진 시간이 꽤 걸리기도 했고 중간중간 어렵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서 괜히 읽었나? 싶기도 했는데 다 읽고 나선 이런 생각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일단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하겠다는 것이었다.(하… 슬퍼…) 방금 읽은 책도 덮으면 생각이 안 나는 나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도무지 말할 수 없겠으니 책에 대해 말하려면 목차라도 읽어야겠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내게 무용하겠으나 유익했고 한때 필독서는 다 읽던 시절이 있었으나 한동안 책을 멀리한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읽지 않았다고 쫄 것 없고 읽었다고 으스댈 것 없다. 읽지 않은 책을 이고 지고 사는 독자들을 향해 시종일관 유쾌한 농담으로 그 짐을 덜어준다.


책 좀 읽었다고 으스대지 말자. 독서 강박을 버리자. 독서를 지성의 행위로 비독서를 비지성의 상태로 구분하는 편견을 버리자. 필독서라는 것도 어쩌면 폭력이다. 안 읽었다고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우리는 몇 시간이고 충분히 대화할 수 있다. 세상엔 책이 많아도 너무 많다. 안 읽은 책도, 안 읽을 책도, 못 읽은 책도, 못 읽을 책도 셀 수 없이 많다. 어차피 우리의 기억은 유한하고 읽은 책이라도 그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다시 읽어보면 이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 하고 놀라는 경우도 많다. 그저 지금부터라도 책 읽기에 대한 압박을 버리고 유유한 마음으로 책을 가까이하면 좋겠다.


이제 더는 안 읽은 책에 쫓기지 말고 - 내가 책의 주인이다! - 책꽂이에 빳빳하게 꽂혀 있는 펼쳐보지도 않은 책에 대해 부채감을 내려놓고 책 읽기를 강박처럼 생각하거나 지성인의 행위로 생각하는 편견도 버리고 아몰랑 그냥 즐기자. 안 읽은 책에 대해 더 이상 집착하지 말자. 내 호흡대로 흔들리지 않고 우직하게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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