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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Apr 13. 2024

응 괜찮아 정말 괜찮아

고명재 시인 북토크에 다녀와서

고명재 시인 북토크에 다녀왔다. 장소는 경의선숲길 뒤편에 있는 북카페 <북티크>였다. 처음 이곳을 갔을 때 잠깐 헤맸었다. 경의선숲길을 따라 쭉 걷다가 여기가 아닌 것 같아, 하고선 다시 돌아왔다가 결국 지나가는 분에게 물어서 겨우 시간 맞춰 도착했다.


북티크 안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면 왠지 긴장된다. 함부로 열어선 안 될 것 같은 모양으로 위엄있게 닫혀있다. 손잡이를 돌리고 철컥 문을 여는 순간 옷장 문을 열고 나니아로 들어간 루시처럼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다. 그래도 두 번째라 망설임 없이 손잡이를 돌렸다.


들어가니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중간중간 자리가 비어있었지만 제일 앞자리 그것도 시인과 정면으로 마주 보는 자리만 비어있어서 그곳에 앉았다. 너무 정면이라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시선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용기 냈다.


일곱 시 오 분. 고명재 시인이 대기 공간에서 나왔다. 맑고 밝은 사람이 나와 인사했다. 홀로 다수의 사람을 바라보며 덩그러니 놓인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서는 “오, 이 의자 무슨 왕좌 같네요” 몸을 뒤로 젖히고 다리를 꼬아 보였다. 다들 웃었다.


무슨 얘기부터 시작할까. 시인은 책이 만들어진 과정부터 얘기했다. 작가의 말은 백번인가 천 번 정도 퇴고했다고. 백번에서 천 번까지라니 도약이 컸지만 얼마나 오래 고심하고 고쳤을지 그 말을 마음에 꼭 담았다. 작가의 말에도 나와 있지만 책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를 쓰게 된 이유는 김민정 시인의 말 때문이었다.


처음 김민정 시인을 만났던 날 그는 물끄러미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명재 씨는 무채색으로 글을 써보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때 사실 속으로 많이 놀랐다. 나는 비구니들이 업어서 키운 아이였으니까.

_13p, 본문 중에서


그렇게 글을 쓰고 묶어 이 책이 나온 것이다. 고명재 시인의 말을 들으며 김민정 시인이 얼마나 공들여 책을 만드는 사람인지 다시 감동했다. 김민정 시인의 산문집 <읽을, 거리>를 읽고 나서 그리고 시인에 대한 말을 여기저기서 들을 때마다 그가 얼마나 진득한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 알수록 볼수록 좋아진다.


책 본문과 표지 용지를 선택할 때, 디자인, 색상은 물론 목차를 엮고 편집하는 전 과정에서 허투루 하지 않는다는 게 느껴졌다. 특히 목차를 가나다순으로 묶은 뒷얘기를 들으며 김민정 시인에게 또다시 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주제별로 묶는 게 너무 어색해. 삶이란 기쁨도 슬픔도 언제나 불쑥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이니까 가나다순으로 묶자. 그렇게 제안하셨다고 했다. 나는 처음부터 의도하고 가나다순으로 작업한 줄 알았다.


글로 보던 고명재 시인은 고요한 절에 청명하게 울리는 풍경 소리 같았는데 실제로는 밝고 유쾌했다. 북토크 도중 어색한 침묵이 흐를까 봐 내심 걱정했었는데 웬걸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함께 모인 사람들 모두 적극적이었다. 분위기가 너무 좋아 시간이 미끄러지듯 흘렀다. 고명재 시인이 오랜만에 서울 왔으니 늦게까지 해도 되냐고 물었다. 내 옆 뒤로 앉은 사람들이 미소로 답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두시간 가까이 북토크가 진행됐다.


시인이 접어 둔 글과 독자가 접어 둔 글을 하나씩 낭독했다. 나도 용기 내서 부탁했다. 반찬가게를 하는 엄마 아빠의 가게 간판만 봐도 가슴이 아프다던 내용이었다. 다 읽고 나서 시인님이 물으셨다. “왜 이 글을 읽어달라고 하셨는지… 혹시 국수 좋아하세요?” 이 먹먹한 내용을 읽으시곤 국수 좋아하냐고 묻는 시인이라니. 그 밝음이 좋았다. 나는 떨면서 답했다.


“저희 엄마도 지방에서 칼국수 가게를 하세요. 시인님 책을 읽고 집에 내려갔을 때 멀리서 보이는 허름한 간판을 보면서 간판만 봐도 가슴이 아프다던 시인님 글이 생각났어요. 집에서 혼자 읽으면서도 눈물 흘렸고요. 시인님의 시 중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도 좋아해요.”

내 이야기를 들으시곤 육수는 멸치 쪽이냐고 물으셔서 다시 웃음이 나왔다.


그날 들었던 얘기 중 가장 가슴에 남은 건 신춘문예에 떨어진 이야기였다.

무려 십 년 동안 신춘문예에 떨어졌다. 한 삼 년 정도는 미친 듯이 접수했다. 계속 떨어지니까 나는 안 되나보다 생각하고 학교 교정을 걷다가 너무 울고 싶어서 잔디밭에 앉아 선글라스를 끼고 울었다. 잔디밭 옆에선 어르신들이 장이요, 포요 하고 장기를 두고 있었다. 한참을 울다가 선글라스를 벗었는데 세상이 달라 보였다. 그때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신춘문예라는 제도권 안에 들어가려고 하지 말자. 글 쓰는 사람들과 경쟁하고 당선된 시를 보며 “내 시가 더 나은데”하고 질투했는데 등단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어쨌든 계속 쓸 거니까. 그때부턴 떨어져도 떨어지나보다 생각했다. 그렇게 꾸준히 썼더니 몇 년간은 예심에만 자꾸 통과하고 어느 날부터는 최종심까지 계속 통과하다가 결국 당선되었다고.

시인은 이 얘기를 산문집에 이렇게 썼다.      


너는 평생 아무도 보지 않을 시를 쓸 거야. 홀로 그냥 쓰다가 사라질거야.

너는 남의 글만 읽다가 지워질 거야. 흔적도 없이. 아무도 모르게. 그래도 괜찮니.     


응. 괜찮아.

이제는 괜찮아. 정말 괜찮아.     

_32p, 본문 중에서     


시인의 산문집뿐 아니라 시인이 따로 준비해 온 시와 문장도 함께 읽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가장 이상한 세 단어>와 <쓰는 즐거움>에 대해 킴 투이의 <루>의 아름다운 장면을 시인의 목소리를 따라 눈으로 함께 읽었다. 읽은 이후의 느낌을 여기저기서 자유롭게 말했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침묵 속에 같은 시를 읽고 서로 다른 감상을 나누고. 너무 좋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시인의 얼굴과 카페 안을 가득 채운 저항 없이 느슨한 얼굴의 근육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장면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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