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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Apr 18. 2024

나만 불편한가

에스컬레이터 솔에 신발 청소

나는 결벽인 이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내가 결벽이 있다고 인지한 건 이십 대 초반쯤이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돌아보니 학창 시절 친구들과 라면을 부숴 먹다가 수업 종이 울렸는데도 뛰어가서 손을 씻고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바닥에 절대 가방을 놓지 않았고, 자려고 누웠는데 옷걸이에 옷이 비스듬히 걸려있으면 꼭 일어나서 똑바로 걸어놓고 잤던 기억도 난다.


지금도 바닥에 가방을 놓지 않는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무엇을 밟고 다녔는지도 모르는 신발 밑창을 생각하면 내 가방을 절대 바닥에 놓을 수 없다. 기차나 고속버스를 탈 때 도착할 때까지 가방을 안고 간다. 백팩 이외의 종이가방은 바닥에 놓고 집에 와선 버린다.


피곤한 성격인 거 안다. 결벽이 내 삶을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지 나이 들수록 결벽이 한 겹 두 겹 쌓여 더 단단해질 것 같아서 생각을 고치는 중이다. 이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기억도 안 날 것이다. 지금 당장 반드시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무감해지려고 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찜찜한 일들이 있다.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결벽이 아닌 경우가 그렇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계단 옆면에 부드러운 솔(털)이 부착돼 있다. 에스컬레이터 옆면과 이용자의 거리를 안전하게 유지하도록 하고 계단에 신발이 끼는 경우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안전장치이다.


하지만 이 털에 신발 옆창을 바짝 붙이는 사람이 있다. 간혹 신발 옆창을 솔에 대고 청소하듯 이물질을 제거하는 사람도 있다. 이거 나만 불편한가? 그 사람 뒤에 있으면 내가 먼지를 다 덮어쓰는 것 같다. 에스칼레이터 솔과 신발에 묵은 먼지들이 내게 달려드는 것 같은 찝찝한 기분. 다른 사람들 아무도 신경도 안 쓰잖아. 그러니 괜찮아.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야. 아무리 나를 진정시키려 해도 어느새 조용히 옆 칸으로 이동해 걸어 올라가고 있다.


내 결벽은 허술하고 모순이 많다. 모든 부분에서 공평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심리적인 문제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불편하면 그건 내 결벽 때문이고 내가 유난인 것으로 여기며 넘기려고 한다. 스스로 무난해지려고 애쓰고 있다. 결벽이 있다고 얘기하면 나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사람도 있다. 이건 괜찮아? 이렇게 해도 돼?라고 묻는다. 내 반응이 재밌어 장난치는 사람도 있고 내가 불편할까 봐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면 미안해진다.


말했지만 내 결벽은 허술하고 모순이 많다. 심리적인 문제라 언제나 뒤죽박죽이다. 나는 되고 너는 안되고, 너는 되고 나는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아주 변덕이다. 그러니 나도 나를 맞추지 못한다. 그러니 아무도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 혹시 나와 종종 만나는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내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건 알아서 피하니까 전혀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내 결벽은 내가 책임진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솔에 신발 청소, 나만 불편한가. 정말 궁금하다. 이거 나만 신경 쓰이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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