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M. 액슬린, 『딥스』 (샘터, 2022)를 읽고
우리 가정엔 지적 장애인이 두 명 있다. 쌍둥이 내 동생이다. 가정에 장애 아이가 있는 경우 이들이 부모에게 주는 좌절로 인해 학대받을 수 있다고 한다. 딥스 역시 그런 아이였다. 부모의 기대에서 벗어난, 가정에서 학대받는 아이. 사회적으로 엘리트였던 딥스의 부모에겐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아이. 딥스 부모 마음이 충분히 이해됐다.
나와 우리 가족 역시 그랬었다. 정상적인 발달 과정에서 벗어난 동생을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지적 수준이 일반인에 못 미치기 때문에 동생의 의사와 감정을 묻기보다는 주로 지시하고 가르쳤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면서 동생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우리 가족에게도 교육이 필요했음을 깨달았다. 나도 부모님도 지적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무지했던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동생에게 폭력을 저지른 것 같아 아직도 고통스럽다. 그래서인지 책 『딥스』를 읽는 내내 가슴이 뻐근했다.
사회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존재들이 있다. 그들을 향해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하는지, 타자를 향한 따뜻한 관심이 한 존재를 어떻게 성장하게 하는지 이 책을 통해 모두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다. 딥스에게 관심을 놓지 않았던 유치원 선생님과 딥스가 ‘나’를 찾기까지 인내해 준 액슬린 선생님처럼 ‘관심’과 ‘믿고 기다려주는 일’이 세상 모든 딥스와 그의 가족 구성원에게 이 세상을 넉넉하게 살아갈 힘이 된다는 사실을 모두 알길 원한다.
관심과 믿고 기다려주는 일이 얼마나 귀하고 힘든 일인지 나는 안다. 딥스가 놀이 치료를 통해 한 걸음 나아가는 것 같다가도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때 액슬린 선생님이 느꼈던 마음이 어떠했을지 - 책에 자세하게 기록되지 않았지만 - 나는 안다. 딥스에게 더 묻고 싶고 다가가고 싶을 때도 딥스 스스로 움직이도록 기다려주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도 안다. 인내하고 믿고 기다려주는 일은 가족이라도 쉽지 않다. 가족이라서 오히려 힘들 때가 많다. 아무리 사명감 있고 그것이 자신이 원한 직업일지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액슬린 선생님은 딥스를 자아가 있는 한 존재로 대했고 신뢰했다. 가족이나 사회가 기대하는 존재로 변화시키기 위해 딥스를 이끌려고만 했다면 딥스는 불안정한 자아 속에 갇혀 여전히 사회 어느 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존재가 됐을 것이다.
딥스가 놀이치료를 시작하면서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을 체크할 때마다 안타까웠다. 안타까움을 넘어 마음이 아플 정도여서 ‘딥스가 놀이방에 조금 더 머물렀으면…’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딥스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기도 했다. 매일 액슬린 선생님을 만나 짧은 시간이라도 마음을 치료받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연약한 아이가 홀로 감당해야 하는 환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내가 만약 액슬린 선생님이었다면 어땠을까. 내 감정을 절제할 수 있었을까. 딥스가 조금 더 있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눈치챘다면 모른 척하지 못했을 것이다. 딥스의 놀이를 지켜보면서 더 묻고 싶은 마음을 딥스를 위해 삼키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고, 딥스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는 상황에선 어쩌면 깊은 허무와 실망이 드러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액슬린 선생님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또한 딥스가 감당해야 할 훈련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딥스는 마침내 ‘나’를 찾았다. 딥스가 “나는 내가 좋아요.”라고 고백할 때 기쁘고 뭉클했지만 나는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돌아보게 됐다. “나는 내가 좋아요.”라는 고백.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때론 액슬린 선생님이, 때론 딥스의 부모님이, 때론 딥스가 되면서 앞으로 어떤 존재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배우는 시간이었다.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 이런 글이 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작다. 그래서 어른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큰 어른과 작은 어린이가 나란히 있다면 어른이 먼저 보일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작든 크든 연약하든 강하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우리는 모두 각각 한 명의 온전한 인격체로 존재한다. 때때로 우리는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세상과 나의 기준으로 그들을 몰아세우고 끌고 간다. 하지만 그들에겐 그들만의 걸음과 시간이 있다. 우리는 기꺼이 그 걸음을 지켜보고 지지해주어야만 한다. 그 시간이 지난하더라도 그래야만 한다. 그렇게 성장한 아이는 분명 누군가의 걸음을 지지해주는 존재로 성장하게 될 것을 믿는다. 자아를 찾은 딥스가 그의 친구를 위해 ‘행동으로 옮길 참된 의지를 가지고’ 움직였듯이, 연약한 한 사람이 ‘인격의 주체’로 성장하기까지 우리 모두 그들을 향해 세밀한 관심과 지지를 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