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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 Jan 31. 2023

청소요정의 정체

 신발이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현관을 지나 주방으로 들어오면, 수납장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진 잡동사니들이 손님을 맞이한다. 구겨진 카드 영수증과 반질반질한 귤 두 알, 그리고 한두 개쯤 먹다 남은 진통제나 지나가다 받은 홍보용 볼펜 같은 것들이 어지러이 뒤엉켜있다. 그곳을 지나 거실로 들어오면 그나마 깔끔한 직사각형의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새하얀 벽지와 희끄무레한 색의 장판, 그리고 연회색의 3인용 소파 앞에는 비슷한 컬러의 카펫이 깔려있다. 한쪽 벽을 채운 책장은 온통 아동용 그림책으로 꽉 차있다. 현관, 주방과는 달리 극단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다. 적당히 지저분하고 사람냄새나는 이곳이 바로 나와 아들이 살고 있는 우리 집이다.


 채광이 좋고 가장 넓은 안방은 아들 방으로 배정해 주었다. 아들이 가장 소중해서,라는 이유는 아니고, 그저 녀석의 짐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옷 몇 벌, 가방이나 잡동사니 몇 개와 더불어 작은 방에 침대 하나 놓고 지내고 있다. 피부에 뭔가 닿는 걸 싫어해서 화장품 하나 없고, 반지나 귀걸이 등 액세서리도 없으니 짐이 적어 딱 좋다. 틈 날 때마다 집 청소를 열심히 하는 남자친구는 이 집에 같이 살지 않는다. 집 관리를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이 여기 살지 않는다니 얼마나 역설적인지!


 나도 꽤 열심히 청소를 하는 편이지만, 남자친구의 깔끔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적당히 물건을 한쪽으로 모아놓고 바닥을 쓸고 닦으면 깨끗하다 느끼는 나와 달리, 남자친구는 쌓여있는 물건들마저 분류해서 다 정리해 버려야 ‘청소’라고 부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청소에 관해 끝도 없이 둔한 나와 아들 덕분에 예민한 사람 혼자 고군분투하는 상황인 것이다.

한 번은 남자친구가 자그마한 박스를 들고 와서 내 눈앞에 흔들어 보인 적이 있었다.


 “나 이거 받았다~?”


 하고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이 어찌나 환했는지, 좋아하는 과자 같은 거라도 선물 받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박스의 정체는 청소 도구였다. 그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한 얼굴로 웃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이걸 물에 담근 다음 문지르면 저절로 거품이 나면서 싱크대가 깨끗해진대. 특히 가스레인지! 오늘은 주방 청소를 할 거야.”


 빈말이 아니었는지, 그는 주말 아침 일찍부터 싱크대를 닦기 시작했다. 요리를 귀찮아하는 나로서는 아들 식사를 위한 게 아니면 거의 주방에 서지 않는데, 남자친구는 싱크대에 묻은 검댕들이 거슬렸던 것 같다. 나는 약간 머쓱한 기분이 들어 청소하는 그의 옆에서 도울 건 없나 서성거렸는데 그는,


 “뭐 해? 얼른 방에 들어가서 승오랑 놀고 있어. 나 이거 다 하고 갈게.”


 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고는 즐거운 듯 가스레인지의 검댕을 다 제거하고는 냄비 바닥도 열심히 닦는 게 아닌가! 언제나 대충 치우고 대충 사는 나로서는 이해 못 할 성실함이었다.


 청소에 늘 예민했던 전남편 때문에 내가 고생했던 걸 알고 있는 현 남자친구는 나와 아들이 적당히 집을 어지르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고는 가끔 구역을 정해서 빛이 날 정도로 깔끔하게 청소해두곤 한다. 무척 고맙지만 한 편으로는 부담스러운 친절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조금이라도 어지럽히지 말라는 식으로 말했다면 ‘그렇다면 너도 청소를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둬!’라고 받아쳤겠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내게 청소로 눈치를 준 적이 없었다. 일과 육아에 치여 너무 피곤한 날은 집에서 폭탄이라도 터졌나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 물건들이 어질러져 있을 때도 많은데, 그런 날도 그는 한 결 같이 묵묵히 청소를 할 뿐이다.


 여덟 살 아들이 우다다 뛰어다니는 활동 반경 곳곳마다 물건들이 나뒹굴어도, 먼지만 안 날리면 깨끗하다 생각하는 나는 그냥 내버려 둔다. 설거지도 그때그때 하지 않아 쌓여있을 때가 있고, 외투는 옷장 속이 아닌 식탁 의자에 줄줄이 걸려있다. 이렇게 적다 보니 엄마로서 자질을 의심하게 되는데, 어쨌든 내 나름 열심히 청소를 하는 편이긴 하다. 나는 공기의 환기라던가 바닥 먼지, 이불의 진드기 이런 것들에 예민해서 빨래를 굉장히 자주 돌리고, 먼지를 하루 네다섯 번씩 닦아낸다. 어질러진 물건들은 한쪽 구석에 산처럼 쌓아둔 채 말이다.


 얼마 전에 남자친구에게 청소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었다.


 “너 혼자 계속 그렇게 열심히 청소하면 지치지 않아?”


 “안 지치는데.”


 “나랑 승오가 맨날 어질러서 화가 나지 않아?”


 “화 안 나는데.”


 “내가 청소를 열심히 하길 바라지는 않고?”


 “응. 그냥 내가 하면 되는데.”


 언제나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남자라서 속내를 알기도 쉽지 않다. 그는 늘 괜찮다고 하지만, 퇴근 후 밤 10시가 되었는데도 청소하느라 애쓰는 남자를 보면 말리고 싶어 진다. 내가 말리면 그는 적당히 멈추는 듯하다가, 내가 잠든 후에 나와서 청소를 마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늘 그런 식이다. 모두가 잠든, 혹은 고요한 주말 낮의 집에서 우렁 각시(?)가 나와 남모르게 청소를 해 준 덕에 우리 집은 적당히 깨끗하게 유지된다.


 고마운 마음 반, 미안한 마음 반.


 나랑 아이가 둘이서 사는 집인데, 같이 살지도 않는 남자친구가 늘 우렁이 각시처럼 청소해 놓고 가는 게 민망해서 나는 늘 비슷한 내용의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한 명이 지나치게 희생하는 관계는 좋지 않아.”


 “희생? 누가 희생하는데.”


 “너 혼자서 만날 청소하잖아. 차라리 나를 불러서 같이 해. 아니면 다 같이 하지 말던가...”


 걱정 섞인 나의 잔소리에 남자친구의 반응 또한 언제나 비슷하다.


 “어... 다음에 그럴게.”


 “그래놓고 또 혼자 할 거잖아.”


 “음... 맞아.”


 “어휴 고집... 말 진짜 안 듣지! 제발 퇴근하고 나면 누워서 폰 게임하면서 맛있는 거 먹고 놀다가 푹 자란 말이야. 주말엔 늦잠 좀 자고. 너 그러다 쓰러져.”


 “안 쓰러지게 조심할게.”


 나는 남자친구가 더 많이 쉬고, 자고, 여가시간을 누리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이곤 내가 더 많이 쉬고, 자고, 여가시간을 누리도록 만들어준다.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는 내 부모처럼 나를 챙기고, 내 남편처럼 아이를 보살핀다. 자신이 살지도 않는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 놓고, 심지어 내가 그 사실을 모르도록 숨기기도 한다. 상대가 이렇게까지 배려해 주면, 나 또한 언제든 상대를 위해 무엇이고 내놓을 마음을 내게 되는 것이다. 못 하는 요리라도 해 보려고 애쓰게 되고, 살 떨리는 통장 잔고를 보면서도 남자친구의 새 옷을 사주고, 좋아하는 게 뭔지 계속 물어보고 맞춰주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커플은 싸울 일이 전혀 없다. 서로를 위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늘 내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 친구가 ‘남편이 제시간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서’ 너무 화가 나고, 심지어는 이혼하고 싶어 진다고 말했다. 결혼이 지옥이 되는 이유가 참으로 사소하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이혼 후 연애하며 육아하는 삶이 천국이 되는 것도 ‘배려와 존중’이라는 사소한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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