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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 Sep 24. 2024

어느 날 엄마가 나를 죽이려고 했다 (1)

- 폭풍의 전조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조금씩 이상해졌다. 증상은 가끔씩만 나타났고, 아주 조금씩 심해졌다. 처음 시작이 언제였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내가 중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와서 엄마와 단 둘이 살던 시절에, 그때의 엄마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나는 열아홉 살이었고, 중국에서 고등학교 졸업을 마치지 못한 채 한국에 돌아온 상태라 고졸 검정고시와 수능시험, 그리고 미술대학을 가기 위한 실기 시험 준비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평소, 기분 좋은 상태의 엄마는 꽤 괜찮아 보였다. 조금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면이 있긴 했지만, 이상한 범주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아침부터 대성통곡하며 살고 싶지 않다고 호소하는 날이 있었다. 열심히 달래는 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며 그저 울기만 했다. 나는 그저 엄마가 이혼하고서 많이 힘든가? 했다. 한평생의 소원이 이혼인 것처럼 굴더니 막상 이혼하니 별론 가보네, 이게 당시 내 감상의 전부였다. 그러면 안 됐었다.


시간이 지나자 멘트가 조금씩 바뀌었다. 자신의 삶에 대한 한탄과 가끔은 나에 대한 공격을 눈물과 함께 쏟아냈다. 널 낳지 말 걸, 너 때문에 다 망했어, 나는 그냥 죽는 게 나아, 이제는 끝내고 싶어... 그런 식의 말들이었다. 역시, 처음엔 많이 당황했지만, 그런 말을 내뱉는 순간의 엄마 얼굴이 너무 고통스러워 보여서, 나는 말없이 달래주기만 했다.


가끔 자살 예고를 하기도 했다.


"너가 학원 갔다 왔을 때 내가 집에 없으면. 죽었나 보다 생각해."


이런 막연한 예고에서부터,


"베란다 쪽 커튼봉이 튼튼하잖아. 거기 목매달고 죽을 거거든. 혹시 날 발견하거든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절대 경찰에 신고하지 말아 줄래? 제발."


하는 꽤나 자세한 계획까지 다양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엄마는 꽤나 예민하고 극단적인 성격이라, 뭐 하나에 꽂히면 청자를 당황시킬 정도로 파격적인 말을 종종 하곤 했다. 그 빈도가 늘어난 거 같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런가 보다'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 엄마는 정말로 예전부터 좀... 그런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심한 나도, 엄마가 '같이 죽자'는 말을 꺼냈을 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가 죽어라, 나는 죽고 싶다 이런 말은 많았지만, 동반 자살 예고는 처음이라...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갱년기 증상'과 흡사했다. 관련된 더 많은 정보를 검색해 보고, 주변에 물어보니 얼추 정답을 찾은 것 같았다.


'아, 우리 엄마가 갱년 긴가 보다...'


그런 거 치고 더 격렬하긴 했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같이 병원이라도 한 번 가보지 않겠냐는 온건한 권유가 모조리 거절당하고 나자, 이제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되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고3이었고, 검정고시, 수능시험, 입시미술 세 가지를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동시에 해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엄마는 점점 심각해졌다. 알코올 해독을 못해 입에도 못 대던 술을 밤새 퍼마시는 모습은 이제 일상이었다. 그녀는 자영업을 했기 때문에 주말까지 일하던 시간을 주 3,4일 정도로 줄이고 집에 처박혀 울면서 시간을 보냈다. 갱년기라 하기엔 좀 심한 거 같은데... 시기도 지나치게 이른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못 본 척 했다. 어차피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달래주는 것뿐이다. 투명인간처럼 곁에 서서...


그 시기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어찌 몇 줄의 글로 다 쓸 수 있으랴. 어쨌든 나는 원하는 미대에 합격했고, 다급히 서울로 떠났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는 너무 멀쩡했다. 그래서 지방에 내려와 며칠 묵으면 또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 헐레벌떡 도망치길 반복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일하다 결혼 직전 지방 집에서 몇 달 머물렀다. 그때가 내 인생 최고로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엄마의 이상함은 정상인의 범주를 훌쩍 넘어서 있었다. 그녀는 내가 하지 않은 말을 했다 하고, 처음 듣는 말을 '전에 여러 번 말했잖아'라며 우겼다.


재빨리 수긍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뺨을 때리곤 했다. 폭력성은 나날이 심해졌다. 처음엔 약간 아프고 깜짝 놀란 정도였다면 나중엔 피멍이 들도록 손을 휘둘렀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렸다. 제일 당황스러운 점은, 훼까닥 돌기 전의 그녀는 무척 멀쩡한 상태였다는 거다.


엄마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대화하고, 웃고, 소통하다가, 어느 시점에 돌아버려 욕설을 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 간극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어떠한 전조 증상도 없이 욕설이 시작되었기에, 나는 늘  차분한 상태로 물었다.


"엄마, 이번엔 왜 또 화난 거야? 소리 지르지 말고 차분하게 말해봐."


그러면 엄마는 화나지 않았다, 소리 지른 적 없다며 울분에 찬 목소리로 고함을 질러댔다. 그리고 내 머리채를 잡고 주방을 돌아다니며 엉엉 울곤 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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