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어린이용 동화를 열심히 썼다. 에세이에 지친 까닭이다. 내 이야기를 자꾸, 자꾸 풀어놓는것이 내 마음속 불편함을 건드렸다.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동화 속 주인공이 내가 아닌, 나와 전혀 무관한, 완전히 다른 사람이길 바랐다.
우주로 여행을 떠난 고양이의 이야기나 앨리스처럼 작아지는 물약을 먹은 꼬마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판타지 세상 속 아이들의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진진했고,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현실에 없는, 오로지 환상속에만 있는 이야기라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주인공의 성격과 내가 겹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글 속 아이가 하는 생각에, 또는 어떤 결정적 선택에서 내가 드러났다. 시간이 더 지나자 주인공의 어린 시절의 경험과 내 경험이 겹쳐졌다. 글을 쓰면 쓸 수록 이야기 속 내 자아가 더욱 강해졌다.
'나는 일기를 쓰고 싶은 게 아니야, 글을 쓰고 싶은거라고!'
개인적 경험에 기반하지 않은, 완전히 딴 세상 얘기, 그런 얘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아무리 돌아가려 노력해도 나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내가 쓰는 것들은 결국 자기 만족에 빠져 끄적이는 일기일 뿐인거야? 이런 생각에 매우 침울해졌다.
창작 활동이 아니라 내 삶을 돌아보는 복사 붙여넣기 활동을 하는 것 같았다. 작가란 새로운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 때 한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이야기는 정말 생생하네요! 이야기가 살아있는 느낌이에요. 나도 모르게 주인공 아이를 응원하게 되네요."
그 말에 깨달았다.
나는 내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은게 아니었다. 그 이야기가 공감을 얻지 못하고, 나아가 미움 받을까봐 두려웠던 거다. 내 이야기를 자꾸 쓰면, 그게 마치 나 자신같아져서. 누군가 '재미없다. 별로다'고 하면 나 자신의 인격이 모욕당하는 기분이 들까봐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공감을 얻고 싶어서 글을 쓰는게 아니었는데.
나는 그냥 내가 좋아서 글을 썼던 거였다. 공감해주면 좋고, 아니어도 뭐 어쩌겠나 하는 마음으로. 약 일 년 간의 방황 끝에 이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좋아서 쓰는 글이야. 누가 뭐라 하든 중요한건 내 마음이지.
그러자 놀랍게도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
일단 아무거나 써 보자.
내 마음에 드는 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