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엄마가 나를 죽이려고 했다 (3)
- 불안과 환희
결혼 후 4~5년쯤 지나고 나서, 나는 우연히 외할머니가 엄마와 대판 싸우고 쫓겨나 판자촌에서 생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급하게 주소를 물어 물어 찾아가자, 할머니는 곰팡이 가득한 쪽방에서 반가이 나를 맞이했다.
"할머니, 제가 말했잖아요. 엄마 믿지 말라고..."
울컥 눈물이 났다.
내가 엄마에게 몸과 마음을 얻어맞으며 지내고 있을 때, 할머니는 '내 딸이 그럴리가 없다.'며 믿지 않았었는데... 그래서일까. 내 경고를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억 단위로 돈을 빼앗기고, 욕듣고, 얻어맞고, 몇 년을 그러다 맨몸으로 쫓겨났다.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고 있는 할머니... 그리고 몇년간 말로, 주먹으로 얻어맞다가 결혼으로 도피한 나...
그나마 난 돈이라도 잃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봐야할까.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훌쩍였다.
할머니는 쪽팔려서 어디 말도 못하겠다며 그간 있었던 이야기들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여러번, 엄마의 말이나 행동이 도저히 이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분명히 할머니에게 돈을 빌려가 놓고, 그건 처음부터 내 돈이었다, 라고 하거나, 갚은 적 없는 돈을 이미 다 줬다고 우긴다고... 할머니가 길게 말하지 않아도, 나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더니 의외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느이 엄마가 고3때 일거야. 그러니까 열 아홉 살이었지. 어느날 학교에서 집에 왔는데 말이다. 가 가 눈이 훼까닥 뒤집혀가꼬 왔더라고? 깜짝 놀라서 아를 붙잡고 막 물었지. 니 와이라노? 어? 누가 니를 패드나? 아님 어디서 자빠졌나? 와이라노? 정신좀 채리봐라.
근데 입에 거품을 물고, 눈에 흰자만 보이고, 아가 대답을 안해. 느그 할배는 술에 잔뜩 취해가, 디비 자고있고. 내가 아 손잡고 큰 병원에 갔다아니가. 무슨 뇌 어쩌고 하는데를 찾아갔지.
선생님요, 야가 똑똑하고 말도 잘하는 아 인데, 갑자기 이럽니다. 이거 우째야 되겠습니까? 하니까, 의사가 뭔 검사를 한참 하드만 '이거 여기 와서 될 일이 아닌데'하더라고.
그라믄 어디로 갈까요? 하니까 어디 정신병원을 소개해주데. 나는 그럴리가 없다, 내 딸이 정신병이 있을리가 없다 하고 집으로 와삤지. 근데 야가 계속 대답을 똑바로 몬해. 눈이 계속 안돌아오고 상태가 점 점 안좋아 비는기라. 그래서 다음날 병원에 다시 갔지.
그, 의사가 가라캤던 그, 무슨 정신병원에 갔어. 가니까 한참 검사를 해보디만 입원해야 된다카네. 야가 뭐가 안좋은겁니까 물어도 일단 입원시키고 나서 검사를 해보자 해. 아 이게 어찌된 일이고 하믄서 아를 거기 입원시키고 집에왔지. 오니까 허전하고. 이게 아니다 싶고 참말로 죽겠는기라.
느그 할배는 멀쩡한 아를 갖다가 병원에 쳐넣었다고 지랄로 하고... 내 참.... 그래서 3일인가 있다가 병원에 다시 찾아갔다 아니가. 근데 아가 눈도 돌아와있고, 말도 그럭저럭 하더라고?
엄마 내 여 안있을란다. 집에 갈란다. 막 그래. 그래서 그냥 데리고 나왔지. 의사한테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때는, 그러면 아 못데리고 가게 할까봐서 그랬다 아이가. 그냥 손 잡고 집에 가자, 얼른 가자. 하고 나왔지. 그래, 그게 느이 엄마 고3때 일이다. 그런 일이 있었다. 죽은 니 할배랑 내, 그리고 느그 엄마 세명밖에 모르는 얘긴기라."
잔뜩 충혈된 눈의 할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그게 진짜로. 그러니까 내 딸이. 느이 엄마가. 정신병이 있기는 한갑다...."
이상하게 그녀의 마지막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이 대화 후 며칠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는데, 불안과 환희가 뒤섞여 나를 정신없이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내가 왜 흥분한건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나 자신을 찬찬히 돌아보자 마음 깊은곳에 자리잡은 거대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나는 이 모든 얘기를 남자친구에게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심 불안했나봐. 내가 엄마처럼 될까봐. 근데 할머니는 그 나이에도 말짱하시잖아. 차라리 내가 할머니를 닮았으면 좋겠어.
늙어서 엄마처럼 될 거 같으면 그냥 안 사는게 나을거같아. 그 모든 고통을 겪고 이렇게 멀쩡하게 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데, 늙어서 엄마 닮아 미쳐버리기까지 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눈물은 나지 않았다. 나는 건조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근데 엄마는 이제, 누구에게 그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