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엄마를 가두고 있는 것
엄마는 살면서 늘 우리들의 뒤통수에 대고 이야기하곤 했다.
조심해라.
위험한 것에 접근하지 마라.
복잡하고 번화한 곳에 가지 마라.
사람을 믿지 마라.
세상은 위험한 곳이다.
한 발짝만 나가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위험!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
그렇다.
엄마는 어떤 상황이 펼쳐지기 전에 늘 각종 리스크의 시나리오를 떠올린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그 경우의 각종 옵션을 상상한다.
"집 밖은 위험하다!"
이런 엄마의 인식을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과거의 일을 무한 반복하여 읊조리듯 들려주는 엄마의 과거사에 의하면
엄마는 어릴 적부터 몸을 움직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학생시절 체육시간은 기필코 피하고 도망 다니는 것이 일이었다.
집안에 꼼짝 않고 살림살이만을 광나게 쓸고 닦는 게 유일한 취미.
그래서 그런가?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비록 누추한 살림살이지만 집안은 늘 티끌하나 없었고
모든 것이 반짝반짝 윤이 났다.
어릴 때 내 손에는 항상 걸레가 들려있었다.
매일 언니와 나는 젖은 걸레를 들고 집안 살림의 모든 먼지를 닦아내야 했다.
아니. 매일 닦으면 먼지가 쌓일 사이도 없을 텐데 왜 해야 하는지 투덜거렸다.
이따금 친척들이 올 때면 우리 집 이불장부터 열어보곤 했다.
깨끗이 빨아 다림질해서 각에 맞춰 차곡차곡 쌓여있는 낡은 이불들에
친척들이 감탄한 것이 생각난다.
엄마는 누추하고 바랜 살림살이가 부끄러워 그렇게라도 가리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초등학교 입학 전 우리는 부암동 언덕의 맨 꼭대기 집에 살았다.
마당이 넓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감나무, 대추나무가 있었고 구석 한편에 염소 두 마리도 있었다.
매일 누런 양동이에 염소젖을 짜서 거품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염소젖에 설탕을 뿌린 후 휘휘 저어 먹곤 했다.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 훌륭한 먹거리였다.
멸균처리가 되지 않은 생 염소젖을 먹는다는 것은 지금의 기준으로는 기겁할 일이겠지만.
서너 살이었던가?
어느 날 나는 대문밖 호박밭을 들어갔다가 인분구덩이에 빠져서 변냄새를 지독하게
풍기며 울면서 집으로 들어왔다.
똥범벅이 된 나는 빡빡 씻고 아버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고
아버지는 그런 나를 품으로 받아 무릎에 앉히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즉시 '아이고, 똥냄새'하면 무릎에 나를 얼른 치우셨지.
그때 아버지의 반응이 왜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일까?
서울 한복판임에도 집안으로 수도가 들어오기 전인 그 시절 물을 확보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였다.
돌계단을 한참 올라 맨 끝집에 집이 있었기에 엄마는 하루에도 수차례
계단 아래의 마을 공동우물에서 지게를 지어 물을 올리곤 했다.
왜 아버지의 지게 진 모습은 내 기억에 없는 것일까?
아무튼 엄마는 남보다 큰 체구를 이끌고 양 어깨에 물양동이를 걸고
몇 번이나 우물을 왕복하였다.
그렇게 힘들게 길어온 물을 아껴가면 사용했겠지.
사용한 물을 헛투르 버리지 않고 재사용을 거듭하다 결국 마지막에는
배추밭에 뿌려졌겠지.
이런 유난한 살림노동 탓일까?
엄마는 3,4십대부터 허리통증, 다리절임을 달고 살았다.
몸을 안 가리고 움직이다 디스크가 파열된 것이 아니었을까?
몇십 년을 끙끙거리며 변변치 않은 약과 대체식품을 전전했다.
그렇다.
엄마는 미련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은 함부로 사용하면서
세상을 향해서는 몸을 극도로 아꼈다.
엄마는 아직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제주도에 갔을 때 딱 한번 탔던 비행기가 유일한 하늘의 경험이었으리라.
여행을 권할 때마다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최후에는 기어이 내빼는 엄마.
해외 한 번 못가본 엄마의 삶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엄마는 자신은 아예 여행할 욕구와 호기심이 없다고 되풀이한다.
그러면서 걸음이 비교적 자유로왔던 십년전에 담양에 함께 여행했던 것을
추억하는 것은 뭘까?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엄마에게 세상은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위험과 번거로움만 가득한,
되도록 접근하지 말아야 할 곳이었을까?
손주를 육아하면서도 귀가 닿도록 '조심'을 외쳤고
어떤 시도라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 나의 딸은 그런 엄마의 수십 년간의 육아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겁도 없이 시도하고 저지르는 용감함은 어디서 나왔을까?
역시 타고난 기질의 영향이 큰 것일까?
아니면 지나침에 대한 반작용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