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내 기억 속의 엄마
코로나로 쓰러진 엄마를 보며
그간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던
우리 자매는 엄마에게 자연스럽게 그러나 신속하게 다가갔다.
엄마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엄마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을 통해 단서를 찾으려 하다 보니
그 놈팡이, 외할아버지의 행적과 엄마의 형제들 이야기도 들추어냈다.
그런데, 내가 막상 만난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엄마는 차가웠다.
내 기억 속에 엄마의 다정한 말, 따듯한 눈길은 없다.
품에 안긴 기억 또한 전무하다.
유일한 기억이 있다면
열 살도 안 되었던 어느 날 열이 펄펄 나며 감기몸살을 앓던 때에
나는 잠결에 엄마가 가만히 내 뜨거운 이마 위로 손을 얹었던 기억이 있다.
실눈을 뜨고 살짝 바라본 엄마의 눈빛엔 근심이 가득했다.
아! 엄마도 나를 걱정하는구나.
그뿐이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엄마와의 정, 교감을 느낄 수 없었다.
엄마 스스로도 말했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자식을 포함해서 말이다.
엄마와의 신체접촉 중 강력한 것이 있다면 등짝 스매싱이었다.
엄마는 자주 우리 자매의 등을
그 투박하고 커다란 손바닥으로 내리치곤 했었다.
주로 시키는 일을 야무지게 해 내지 못하고
이것저것 하면서 동선을 비효율적으로 했을 때 어김없이 등짝 스매싱이 날아오곤 했다.
"이 맹꽁이야"라는 날카로운 질책과 함께.
주로 심부름과 집안일이었다.
매일 쓸고 닦고 빨고 치우는 엄마의 일상에서
우리는 보조원이었다.
걸레를 들고 요리조리 돌려가면 모든 살림살이와 창틀, 굽도리의 먼지를 닦아내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무릎을 꿇고 방바닥을 싹싹 닦아야 했다.
식사를 준비하거나 김치를 담을 때, 메주를 만들 때
우리 자매는 어김없이 중요한 보조원이었다.
어릴 때부터 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의 간을 맛보고,
열무와 배추를 원 없이 다듬고 마늘과 생강을 까고 져몄다.
학교 과제가 많은 날도, 다음날이 시험일 날도,
고등학교에 들어가 입시를 앞두고도 이런 보조활동을 예외가 없었다.
이런 보조활동에서 서툴고 효율이 떨어지면
어김없이 등짝 스매싱이 날아오고 "맹꽁이, 맹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이 결과 나는 자연스럽게 요리의 기본을 익히게 되었다.
직장을 다니며 요리다운 요리를 해 볼 시간도, 여력도 없는 환경에서
나는 남들보다 척척, 빠르고 맛깔나게 음식을 해내곤 했다.
모든 경험이 버릴 것이 없다는 나의 확신의 뿌리도 이 경험이 아닐까 싶다.
엄마는 자녀의 학업에도 그리 관심이 없었다.
좋은 성적을 받아올 때도 칭찬의 말이나 대견스러운 표정 따윈 없었다.
엄마는 일관성이 있었다.
대학을 못 간 딸에게도 큰 관심과 우려를 보이지 않았다.
고3 수능을 80여 일 앞두고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셨을 때 비로소 엄마의
흐느낌을 처음 보았다. 유일하게 목격한 엄마의 깊은 감정표현이었다.
나와는 각별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나는 형제 중 가장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몇 달 후 있은 대입시험, 담임선생님과의 원서지원, 합격자발표, 졸업식,
그리고 취업의 과정 등등
여기에도 엄마는 없었다.
나는 반 친구들 중 유일하게 엄마 없이 선생님과 머리를 맞대고 대학을 정하고
원서에 엄마대신 도장을 찍고 대입지원서를 냈다.
학과와 진로를 고민할 때도 엄마는 늘 구경꾼처럼 쳐다볼 뿐이었다.
첫 번째 들어간 작은 회사가 망해 문을 닫고
나로서는 큰 위기 앞에 서서 취업을 하느라 고군분투하며
가방에 원서와 명함사진, 풀, 가위등을 넣고 돌아다니며
씨름하고 있던 때에도 엄마는 없었다.
그 시절 엄마의 마음은 어디에 있었을까?
여전히 집을 쓸고 닦고
연립의 계단을 대표로 물청소하고
백 원이라도 싼 값에 공산품, 먹거리재료를 사러 시장을 휩쓸고 다니던
엄마의 최고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부재와 남겨진 자녀들, 경제적인 어려움, 막막함 속에서도 엄마는
우리들에게 하소연하거나 슬픔을 내비치지 않았다.
엄마의 울음은 돌아가신 그날 새벽의 흐느낌,
매년 아버지 기일에 방문한 용인의 산소 앞에서의 슬쩍 닦아내는 눈물이 다였다.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내었을까?
압도하는 현실의 벽을 두고, 막막함과 무거운 책임감에 마비되어
그저 일상의 자잘한 움직임으로 회피한 걸까?
어쨌든 엄마는 아버지 사후에도 집안에서 꼼짝 않고
세상밖으로 나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