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배언니 Sep 17. 2024

엄마가 왜 그럴까?

7) 엄마 집안의 흑역사

온 가족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던 할아버지가 객사하고

가슴속 한을 입밖에 내지 않고 마음에 묻어둔 할머니가 모두 가셨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자녀 4명 중 그들의 성정, 성향이 둘로 나뉜 것이다.


한량 할아버지와 똑 닮은 작은 삼촌.

목소리가 크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버럭 스타일에

공부를 싫어해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않았고

무언가 한탕 잡으려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던 꼬마 삼촌. 

삼촌의 인생은 나의 관심사에서 멀어 있기에 자세히 그의 행적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와 할아버지는 많은 부분 겹쳐 있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며

고교 졸업장도 받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던 작은삼촌은 3살 연상의 여자와 혼전 아이를 가졌단다.

책임질 마음이 별 마음이 없었던 삼촌은 

이모와 엄마등 집안의 강력한 주장으로 등 떠밀려 그분, 외숙모와 혼인했다.

그리고 외숙모의 길고 긴 고난의 삶이 시작된 듯하다.

물론 삼촌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일을 했던 것 같지만

경제적인 것은 주로 숙모가 책임진듯하다.

잘 생긴 삼촌과는 달리 수더분하고 다소 촌스럽게 생긴 숙모는

오랫동안 인천의 공장에서 일을 했다.

일찌감치 이혼한 큰딸, 출산과정에서 핏덩이만 남겨놓고 사망한 작은딸.

딸 셋인 삼촌은 지금 딸 하나만 남았다. 

삼촌 내 내외는 지금 이혼한 장녀의 자식, 죽은 딸이 남긴 자식을 돌보며 살고 있다. 

남편의 무능, 고된 공장생활, 딸들의 영향으로 숙모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말이 없었던 할머니와 비슷하게 숙모도 거의 말이 없었다. 

숙모의 웃음이 기억나질 않는다.


반면 큰삼촌은 평범하고 펑퍼짐 한 외모에 사람 좋은 웃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답답하리만큼 사람이 물렀고

경제적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역시 그의 부인도 늘 바깥일을 해야 했다.

남편과 다르게 깜짝 놀랄 만큼 예쁜 큰 숙모.

어릴 적 외가댁에 가면 좁고 궁색한 살림, 그리고 똬리를 틀듯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 담배연기를 뿜어내던 할아버지, 그리고 삼시세끼 바치느라 종종거리던

큰 숙모의 손톱은 언제나 빨간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어린 나이에 나는 이상하리만큼의 부조화를 느끼곤 했다.

숙모는 왜 매니큐어를 칠했을까?

어쩌면 그도 숨 막히고 답답한 생활에 조금이나마 벗어나려는 몸짓 아니었을까?


그 역시 남편과 경쟁하듯 착했다.

괴팍하고 까다로운 시아버지와 말없고 예민한 시어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을 모시며 싫은 내색 한번 없었다. 

엄마와 이모는 그런 숙모에게 미안해하면서도 혀를 찼다.

시집 한번 잘못 와서 지지리 고생이지.

삼촌부부는 지금 이혼한 장남의 자녀를 돌보며 살고 있다. 


이모는 엄마보다 3살 위였다.

활동적이고 직설적이었고 소위 여장부였다. 

그런 이모는 결혼하고 자녀들을 낳고는 줄줄이 학교 다니는 아이들과 알코올중독의 남편을

남겨놓고 외지로 떠났다. 돈을 번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7,8십 년대에는 일본을 수시로 드나들었고

이모는 일본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한듯하다.

술집, 가라오케 주방에서 일했던 것 같고 어쩌면 음주 도우미로도 일하지 않았을까?

어찌 되었든 나는 이모가 귀국할 때면 들고 오는 일본제 상품과 먹거리에 매료되어

이모의 방문을 기다렸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일본에서 할 일이 없어지자 이모는 당산동의 뜨내기들이 드나드는

허름한 골목에 여관을 빌려 운영했다.

엄마는 낡은 여관을 운영하면서 홀로 각종 진상과 취객들을 상대하는 이모를 보며

혀를 둘렀다. 

그렇게 이모는 남편과 일찌감치 졸혼하고 역마살이 낀 듯 훌훌 방랑하는 삶을 살다

여관운영 중 암에 걸려 70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모가 죽고 얼마 후 태어날 때부터 심장병을 앓아온 딸이 죽었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를 가장 증오했던 작은 삼촌과 이모는 자신들의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특히 그렇게 혐오했던 역마살,

그리고 가족을 책임진다는 명목하에 가족을 버리고  배우자에 고통을 준 것도 닮아 있었다. 


그럼 엄마는 누구에 영향을 받았을까?

엄마, 나의 엄마는 이모와 사뭇 달랐다.

겁 없는 이모의 행보에 엄마는 기겁을 했고 

집 밖을 벗어나지 않고 무언가를 시도해 볼 생각도 못하는 삶을 살았다.

집 밖은 온통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느꼈던 엄마.

삼촌과 이모처럼 할아버지 부류는 아니고

그렇다고 할머니의 케이스도 아니었다.

남편의 방랑과 무책임에 세상으로 나와 힘들고 고된 삶을 산 할머니의 모습은 일도 없는 엄마.


엄마는 왜 이럴까?

엄마의 어린 날을, 젊은 시절을 회고해도 단서를 찾을 수 없다. 

엄마 역시 남편의 무능, 생활고, 40대 초반에 갑작스레 맞은 남편의 죽음,

이 모든 것이 엄마를 세상밖으로 힘껏 밀쳤을 텐데

엄마는 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을까?

엄마가 보고 느낀 세상의 모습은 무엇이었기에 유리창 너머 현실에 삶에 

뛰어들질 못했던걸까?

엄마 가족의 흑역사를 돌아보며 그 단서를 찾으려 했으나

잘 모르겠다.  돌아가시기 전에 물어볼까?  물어본들 무엇에 득이 될까?

그래도 궁금하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왜 그럴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