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는 어떻게 20세기 영화의 상징이 되었나
20세기는 영화가 산업으로서 '골든 에이지'를 본격적으로 맞이한 시기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그 자체이자, 대중의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나아가서는 '꿈'에 이르기까지.
영화만큼 예술과 상업의 양면성을 동시에 가진 카테고리는 음악과 미술 외엔 꼽기 힘들다.
또한, 일반인부터 프로까지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어도 누구나 만들어 낼 수 있는 친 대중적인 콘텐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21세기에 이르러, 그것도 영상 기기의 발달이 고도화된 현재의 이야기일 뿐이다.
영화 <파벨만스> 속 스필버그가 처음 영화를 접했던 시기는 1952년도로, 당시에는 스크린 속에서 영화가 이야기의 구조를 정립해 가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일컫어지는 <시민케인>의 개봉 연도가 1941년이며, 이후 불과 10년 후의 시점에서 꼬마 스필버그는 두려움과 호기심 속에서 영화 <지상 최대의 쇼>를 접하게 된다.
열차와 자동차가 충돌하는 신에서 강렬한 영감을 받은 꼬마 스필버그는 이후 어머니의 도움으로 8mm 카메라로 비친 렌즈 너머 '필름의 세계'를 꿈꾸게 된다.
아마도, 이 꿈은 일반적인 평범한 가정의 소년이었다면 감히 꿈꾸기 힘들었으리라.
당시 8mm 카메라와 편집기를 합한 가격은 IBM의 인정받는 직원이었던 스필버그의 아버지 버트 파벨만(폴 다노 분)조차 "취미치고는 너무 비싸"다고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아버지의 탐탁지 않은 반응과 달리 스필버그가 영화감독의 꿈을 이어갈 수 있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 미치 파벨만(미셀 윌리엄스 분) 덕분이었다.
아들의 재능과 열정을 단숨에 꿰뚫어 본, 본인 역시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미치는 누구보다 아들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이렇듯 자신의 꿈에 대한 상반된 온도를 지녔지만, 누구보다 아들의 재능을 사랑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어머니와 아버지 밑에서 꿈을 키웠던 스필버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어머니로 인해 잠시 꿈을 내려놓게 된다.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역시 어머니 미치의 절친한 친구로, 더불어 온 가족의 사랑을 받았던 베니(세스 로건 분)의 존재로 인해서 말이다.
베니와 어머니 미치의 불륜과 다름없는 스킨십을 우연히 필름에 담게 된 스필버그는 큰 상실감과 괴로움에 휩싸인다.
사춘기 무렵의 유년 시절,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어른 두 명의 치부를 목격하게 될 때의 그 실망감과 상실감은 이루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서적인 영향은 이후 다양한 작품에서 반영이 된다.
영화 <E.T.>에서는 외계인 ET를 구하려는 어린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적이 어른들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주인공의 가정은 미혼모 가정이기도 하다.
이후 영화 <A.I.>에서는 주인공 안드로이드가 엄마를 찾는 여정을 보여주지만, 알고 보니 그토록 찾아 헤맨 엄마에게 파양 된 비운의 캐릭터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러한 스필버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 속 곳곳에 숨겨진 부모와 어른들에 대한 감정이 아름답지만은 않게 그려진 것은 못내 유년 시절의 영향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소년 스필버그의 슬픔은,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 앞에서는 그저 일종의 장애물에 불과했다.
어느 날 방문한 어머니 미치의 오빠이자, 자신의 삼촌인 보리스(주드 허쉬 분)에게 "결국 너는 예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 스필버그는 결국, 당대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이자 서부극의 거장인 존 포드(데이비드 린치 분)를 만나게 된다.
그로부터 '지평선'이 주는 시각적 흥미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 청년 스필버그는 결국 영화인의 길을 운명처럼 걷게 된다.
영화 역사를 대표하는 거장들은 무수하게 많다.
스릴러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 일본이 낳은 천재 '구로사와 아키라', 위에서 언급된 서부극의 상징 '존 포드', 초현실주의의 대가 '루이스 부뉴엘', 누벨바그의 거장 '장 뤽 고다르', 봉준호가 사랑한 누아르의 대가 '마틴 스콜세지', 대부하나로 설명이 끝나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에 이르기까지.
그렇지만 영화의 학술과 문법을 논하는 영화학도와 평론가, 전문가들이 아닌 '대중'이 가장 사랑한 영화감독을 꼽아야 한다면, 단연 '스티븐 스필버그'란 이름은 실로 거대하고 높은 위치에 존재한다.
언제나 '동심'과 '환상'의 경계에서 절묘하고 가슴 뛰는 연출로 영화가 오락이자 유희로 존재할 수 있게 그 길을 개척해 온 스필버그의 업적은 모든 극장과 제작사들이 경배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아마도 '영화의 신'이 있다면, 그 은총은 스필버그에게 향하지 않았으리라.
부유한 유대인 집안에서 자란 것도, 예술적 재능이 넘쳤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 또한 아니었으리라.
처음 극장에서 느꼈던 가슴 뛰는 감정을 운명처럼 받아들였을 뿐이리라.
영화를 좋아한다면, 영화를 보고 심장이 움직였다면, 사랑하라 '스필버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