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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토토 Feb 03. 2023

NPC 아니고 호스트, 호스트보다 다큐멘터리 감독

공간과 사람이 만나면 이야기가 펼쳐진다

prologue.


"제 일 해보려고요"


10년여간 몸담았던 방송일을 그만두며 나눴던 대화들 중 가장 이상한 대화였다.


나름 이전부터 안면이 있었던 취재기자와 작별 인사를 나누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내 일'이라니...


"나도 참 어지간히 생각 없이 말하는 놈이구나"하고 깨달았다.


여전히 그 '내 일'이 무슨 일을 지칭하는지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그리고 그해 박찬욱 감독을 만난다.


그게 화근이었다.




SCENE#1 - 텔레비전에 내가 나오고 싶은 적은 없었지만 -


방송국은 참 알다가도 모를 곳이다.


어린 시절 막연히 생각했던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이랬다.


유행의 최전선에서, 지식의 최전선에서 누구보다 똑똑하고 정직하며 멋진 사람들만 가득한 곳.


근데 웬걸?


갓 제대 후 입사했던 첫 방송국은 온갖 또라이들이 가득했다.


눈치 보는 놈, 뒤통수치는 놈, 뒤에서 받아먹는 놈, 쿨한 척하다가도 괴물로 돌변하는 놈 등등.


내 사수는 그중에서도 '이 구역에서 가장 미친놈'이었다.


위아래 할 것 없이 신경 쓰지 않고 본인 하고 싶은데로 하는 그야말로 '마이웨이'의 초상이었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를 함부로 하지 못했다.


그건 바로 그에게 가장 중요한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실력이 받쳐주었기에 주변 모두가 경외와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나는 간혹 타 방송국 사람들의 눈치마저도 보지 않는 그의 경악스러운 태연함과 뻔뻔함 덕분에 수습을 하느라 진땀을 빼긴 했지만 말이다.


그것이 군기가 아직 덜 빠졌기 때문인지, 어린 시절부터 원래 연장자를 어려워했던 내 성격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사수에게 의외로 좋은 인상으로 남았던 것 같다.


퇴사를 얼마 남겨놓지 않았던 사수가 마지막으로 고기를 사주며 평소 그 답지 않은 말투와 행동으로 나를 칭찬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를 대하는 기본적인 행동에서는 크게 바뀐 것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좋았든, 나빴든, 작별의 순간에는 웃으며 인사하는 게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치이자 태도인 것인지를 말이다.


그렇게 내가 그의 밑에서 얼마나 버틸지를 바라보는 우려와 걱정 어린 눈빛들 속에서 나는 2년을 버텨냈다.

 

*아직 다큐멘터리를 연출하지 못한 영화 프리랜서 기자이자 소셜 모임의 호스트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에 나온 모든 상황은 논픽션이며, 일부 대사와 상황은 각색될 수 있음을 알립니다.

구체적인 사명, 지명, 본명은 가급적 생략되며 문제시 수정 및 삭제처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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