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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Feb 11. 2022

어부의 꿈

나의 꿈, 어른들의 꿈

사진 출처: pixabay


  담뱃대를 문 채 고깃배 옆에 느긋하게 누워있는 어부를 보고 어느 실업가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왜 고기를 안 잡는거요?"
  "오늘 잡을만큼은 다 잡았소."
  "왜 더 잡지 않소?"
  "더 잡아서 뭘 하게요?"
  "돈을 벌어야지요. 그러면 배에 모터를 달아서 먼 바다로 나가 고기를 더 많이 잡을 수 있잖소. 그렇게 되면 나일론 그물을 사서 고기를 더 많이 잡고 돈도 더 많이 벌게 되지요.
  당신은 곧 배를 두 척이나 거느릴 수 있게 될거요. 아니, 선단을 거느릴 수도 있겠지. 그러면 당신은 나처럼 부자가 되는 거요."
  "그런 다음에 뭘 하죠?"
  "부자가 되면 누워서 편히 지낼 수 있잖아요."
  "지금 누워서 편히 지내고 있잖소."
  "……."




  한창 취직을 준비할 때 우연히 마주한 이야기는,  마음 한켠에 확고히 똬리를 틀었다. 마음을 대변하는 목소리이자 나를 인도하는 꿈이 되었다.


  혼자서는 다 먹지도 못할 고기, 먼 바다 것까지 싸그리 잡을 필요가 있나. 잡아서 뭘 하게. 오늘 잡을 만큼만 잡으면 그만이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남으면 벌렁 드러눕는다. 담뱃대를 물어야지. 유유히 떠가는 구름이나 질리도록 올려다보며. 그래, 취직이 되면 렇게 살리라, 취직만 되면...


   그런 생각을 했던 게 10년 전이다. 어부 이야기를 동기 삼아 꾸역꾸역 전공 서적을 파고, 스터디를 꾸려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렀지만 준비가 충분하지 못해 한번 떨어졌으며, 짐을 꾸려 고향으로 내려와 날 써 줄 곳을 찾았다.


  그 뒤로 자신을 둘러싼 요인들이 어떻게 작용을 했는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꾸준하게 내 배를 밀어준 덕택에  10년 여를 순조롭게 항해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때때로 어부 이야기를 생각한다.


   어부라고 다 같은 어부는 아니다. 고전문학 시간에 으레 등장하는 강호가도 속의 어부는, 무위하면서 도식할 수 있는 이상적 존재다.


  곳간에 쌓인 재물과 곡식이 품위와 포만을 보장하기에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배를 띄울 수 있고, 고기가 미끼를 물지 않아도 달빛을 배에 실어오는 낭만을 즐길 수 있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결국 모든 사람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나는 가진 운을 최대한으로 활용했으나 아직 강호가도에는 미치지 못했으니, 꽤 오랜 기간동안 저 이야기의 어부처럼 살아야 한다. 그저 하루의 일과를 즐겁게 받아들이고 내가 잡아들인 것에 만족하면서, 굳이 배를 더 먼 바다로 몰지 않겠다. 그런 하루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가면서 매 순간의 여유를 깊이 마음 속에 간직한다.


  그러다가 혹 운이 좋아 말년까지 내 짝과 함께 건강하다면, 맹사성이나 월산대군 흉내라도 내 보리라.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어부의 꿈이다.




  대학을 다닐거면 교수가 되어 보라고 (한때나마) 나를 꼬시던 아버지, 비전공자도 얼마든지 법조계 인사가 될 수 있다며 로스쿨을 적극적으로 권하던 어머니,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내가 곧장 (어딘지 모를 곳이지만 아무튼) 높은 자리로  올라갈 것이라 찰떡같이 믿는 시골의 친척 몇 분, 서울 사람보다 (여러 가지 의미로) 더 서울 사람같은 사람이 되어 누구한테 기죽지 말고 살라던 고등학교 은사님.

  그들의 은 대관절 누구를 위해, 무엇을 향해 있는 것일까. 학문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인간이 연구실에 처박혀 매일 책과 씨름하면서 정체없는 것을 위하여 일평생을 바쳐야 할만큼 한국에는 교수할 사람이 없다는 말인가.


  법이라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기부터 하는 내가, 굳이 전국의 난다긴다하는 수재들이 몰리는 바늘구멍을 통과하려고 기를 쓴들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 군대에서 주입하는 정신개조를 일체 거부한 불온한 정신의 소유자가, 철저한 계급 사회에서 청소부 말고 어떤 구실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또 섣부른 말과 행동으로 행여 누구를 상처입힐까봐 두려운 이 나약해 빠진 놈이, 누구를 기죽이고 누구에게 기죽지 않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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