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성취의 기쁨은 일시적인데 비해, 사회는 실패에 관대하지 못하다. 사람들은 더 큰 성취를 위해 자기 몸을 혹사하고, 이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만족시킬 정도의 성과가 따라오지 않으면(대부분의 경우는 이러하다) 지친 몸에 무력감이 깃들어 우울증, 신경쇠약과 같은 현대인의 질병이 발생하게 된다.
근대 후기 성과사회에서 지친 인간이 맞닥뜨리는 폭력은 강압적이기보단 자발적이고, 외재적이기보단 내재적이다. 지난 시기의 폭력은 타자와의 관계성 속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나와 다른 종교, 나와 다른 정치적 이념,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자들은 배척의 대상이었다. 이질성과 경계를 두기 위해 규칙이 만들어졌고, 보호의 명목 아래 규칙은 강제, 감시, 심지어는 처벌의 준거가 되었다. 자아를 지키기 위해서 타자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대부분의 폭력이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한 우리 몸의 면역학적 메커니즘과 유사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은 세계화와 탈경계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낯선 것은 우리가 새로이 향유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을 제공해주며, 종교나 이념 같은 거창한 개념은 물론이고 성적 취향 같은 아주 사적인 개념들조차 이해와 포용의 대상이 된다. 여기서부터는 긍정성의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과잉 생산, 과잉 커뮤니케이션 등이 초래하는 긍정성의 폭력은 면역학적 메커니즘과는 사뭇 다르다. 생산물, 관계, 성과로부터 오는 달콤함은 이질적인 것에 대한 적대성으로부터 나오는 긴장 상태와는 달리 아주 평화로운 방식으로 현대인을 잠식해나간다. 말하자면 식 행위로부터 나오는 즐거움을 무분별하게 과잉 소비하게 되면 비만이라는 질병이 되어 한순간에 건강을 무너뜨리고, 성과를 위해 몸을 혹사하다가 탈진 상태에 놓이게 되면, 그 무용감과 무력감은 우울증이 되어 정신적 분열의 원천이 된다. 비만과 우울증이 현대인의 가장 큰 질병이라는 것이 이상할 게 없다.
생각처럼 되는 일이 없다. 인간관계에 지쳤고, 공부하는 것도 힘들다.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 걸 보면 뒤처지는 것 같고 무언가 해야 할 것만 같다. 몸과 마음이 쉬고 싶을 때는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파이팅!” “할 수 있다!”를 외친다. 서점에서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힐링 서적들이 인기다. 긍정성의 과잉이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강제성이 소멸하니 조금 더 자유로운 방식의 자기 강제가 나타났다. 저자의 핵심적은 메시지는 “응원도, 긍정도 폭력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왜 꼭 힘을 내야만 할까? 쉬고 싶을 때 그냥 쉬면 안 되나? 왜 끊임없이 무언가 해야 하지? 책을 다 읽은 후 책을 같이 읽어보자고 다짐한 친구들과 함께 고른 책 목록을 봤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책, 비즈니스에 철학을 응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등. 마음의 휴식과 평안, 책 자체에 대한 흥미보다는 책을 읽는 행위가 또 다른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자기 계발의 일종이 된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은 슬펐다.
“성과 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이러한 자기 관계적 상태는 어떤 역설적 자유, 자체 내에 존재하는 강제구조로 인해 폭력으로 돌변하는 자유를 낳는다.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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