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나두울 May 18. 2022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예술가를 지망하는 한 소년의 자전적 성장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자전적'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 묘사된 주인공 '스티븐'의 삶은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삶과 너무도 유사하다. 결국 이 책은 작가가 어린 시절을 살아오며 겪었던 여러 사건들을 통해 예술가의 삶을 살게 된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추구하게 된 예술과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미학적 고민을 담고 있다.


    스티븐의 유년 시절 이야기에는 정치적 입장 차이로 벌어지는 가족 간 논쟁과, 부유한 아이들이 가는 예수회 학교에서의 경험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자아를 형성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스티븐의 사고방식은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작문 수업 과제에서 묻어 나온 '이단적'인 색채, 부당한 체벌에 순응하지 않고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는 당돌한 장면에서 그의 반항적이고 거부적인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스티븐의 삶은 크게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완전히 뒤바뀌게 되는데, 그 첫 번째는 더블린의 사창가에서 순결을 잃은 사건이다. 자신이 지은 간음이라는 큰 죄는 스티븐의 마음에 엄청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며, 그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인해 학교에서는 더욱 신앙심 깊은 학생인 양 행동하게 된다. 이미 깊숙이 박혀버린 죄의식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은 스티븐을 모범적이고 신실한 학생으로 평가하고, 이로 인해 그의 내면적 갈등은 심화된다.

    스티븐이 성직자 제의를 거절한 것은 바로 이 내면적 갈등 때문이었고, 바로 이것이 스티븐의 인생의 두 번째 전환점이 된다. 갈등 속에서 스티븐의 자의식은 어린 시절 가족들의 정치적 논쟁, 아웃사이더로 지낸 유년기의 학교,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종교적 처벌을 생각했고, 기나긴 방황의 끝에서 그는 자신을 규정하는 종교, 국가, 가족 등의 장애물을 모두 벗어던지고 주체적 사유를 통한 순수한 예술을 추구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 나라에서는 한 사람의 영혼이 탄생할 때 그물이 그것을 뒤집어씌워 날지 못하게 한다고. 너는 나에게 국적이니 국어니 종교니 말하지만, 나는 그 그물을 빠져 도망치려고 노력할거야(p.313)


    이 젊은 예술가는 욕망과 혐오로 대표되는 동적인 감정의 자극을 모두 초월하고 정적인 진리, 심미적 아름다움만을 깊이 탐구하는 자신만의 예술관을 형성해 나간다. 소설은 스티븐의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지 않는다. 작가는 모든 속박을 벗어던지고 예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장면으로 소설을 끝낸다. 따라서 그의 젊은 날의 방황과, 방황 끝에 내린 선택이 결국 그에게 어떠한 결론을 주었는지에 대해서 독자는 알 수 없다.


    이 책은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책이니만큼 그 서술 방식이 여느 고전과는 다르게 실험적이고 현대적이다. 스토리의 전개보다는 내면의 묘사에 많은 페이지가 할당되고, 시간의 흐름보다는 감정의 연결이 중요시된다. 순식간에 뒤바뀌어 있는 시공간적 배경과 갑자기 튀어나오는 새로운 인물들로 흐름을 놓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아직까지도 시대의 명저로 꼽히며 너무 난해하게만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젊은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서서히 찾아가는 주인공의 고민과 요즘 젊은이들의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싶다.


    사회와, 신앙과, 관습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스티븐의 모습에서 우리는 결코 표출하지 못했던 내면의 분노를 떠올린다. 우리는 자신을 규정하는 사회의 시선에 압박감을 느끼고, 인정받는 삶과 내면의 충만함을 추구하는 삶 중 어떤 삶을 살아아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당장의 욕망에 대한 자기통제가 결국에는 (사회적 의미에서의) 소극적인 자유로 이어질 것이라는 불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스티븐에게는 그 모든 사회적, 가족적, 종교적 가치를 다 버리고서도 이루어야만 했던 예술적 열정이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스티븐을 바라볼 때 그의 삶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하여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각자의 문학적 상상력 속에서 그의 독선적이지만 예술적인 삶을 바라보는 것에서 나름대로의 대리만족이 느껴지기도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