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나두울 Jun 26. 2022

<소년이 온다>

한강

    5월은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들로 점철된,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적당한 날씨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달로 여겨진다. 다만, 이 책을 읽은 순간부터 5월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 날로 기억될 것 같다. <소년이 온다>는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역사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까운 과거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시리게 남아있는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6개의 장을 통해 서로 다른 사람들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들은 결국 하나의 사건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동호'라는 소년을 매개로 합쳐진다. 6개 장의 서술 시점은 지속적으로 현대에 가까워지며 소설의 제목처럼 그 당시의 소년이 점차 다가오는 느낌을 준다. 진압과 저항, 죽음은 첫 두 장의 시간적 배경에서만 일어나지만, 죽은 소년에 대한 기억은 책 페이지가 넘어감에 따라,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남겨진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


    검열의 시대에 출판 일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은숙 언니(3장), 긴 복역을 마치고 세상에 나오고서도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진수형(4장), 불가항력적인 끌림에 의해 저항적 삶을 살아가는 성희 언니(5장), 막내아들을 잃고 파괴된 가정과 무너진 어머니(6장).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삶을 보여준다. 그때의 끔찍한 기억과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지배한다. 한강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에 사실적인 묘사가 더해지자 독자인 나에게도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그 시절을 겪어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책을 그저 소설로만 읽을 수는 없었다. 실제 이야기에 기반한 소설을 쓰기 위한, 그리고 그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기 위한 작가의 철저한 자료조사와 인터뷰의 결과가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고, 에필로그에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등장하자 소설로 진행되던 이야기의 사실성이 극대화되었다. 학교에서, 미디어에서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끔찍한 이미지들이 소설의 장면마다 떠올라 페이지를 넘기기 두려웠다.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차오르는 고통스러운 감정은 이 책이 내 안에서 마냥 소설로만 감상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방증했다. 책은 픽션과 논픽션 그 경계 어딘가에 놓인 듯했다.


    작가의 또다른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작가는 작별하지 않기 위한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통해 완성되는 사랑을 역설한다. <소년이 온다>에서도 비슷한 주제의식이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스며드는 버거운 감정들은 역설적으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슬픔이 내면의 그 어떤 무언가를 일깨웠고, 고통으로 지난날의 무지함을 성찰했다. 그리고,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고작 기억으로 속죄하려 한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소년이 온다>는 여러 사람에게 읽힘으로써 완성되는 소설이라고 밝혔다.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역설적으로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길 바란다. 그렇게 이 책에 담겨있는 처절한 이야기들이 잊히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길 바란다.




https://brunch.co.kr/@ea0cc0de95a642e/1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