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글래드웰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객관적 열세의 주인공이 절치부심하여 강한 상대를 물리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몇몇 오디션 예능에서는 누구도 기대하지 않던 참가자가 예상 밖의 좋은 결과를 낳는다. 미디어에서 '언더독의 반란'은 이제는 놀랍지 않으며, 약자가 강자에게 굴복하는 당연한 스토리가 오히려 클리셰를 깨부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대중은 약자가 강자를 이길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현실 속에서 강자에 대항하여 이길 수 없는 사람들에겐 항상 내면의 결핍이 존재하며, 미디어는 이를 교묘히 활용하여 대중의 보상 심리를 충족시켜주는 대가로 수익을 창출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조금 다른 의견을 말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이 이기는 것은 그리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라고. 그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의 성공 사례들을 보여 주며, 세상을 무너뜨릴 것 같이 느껴지던 고난과 역경이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에서 그는 강점이 약점이 되는 순간들과, 약점이 강점이 되는 순간들을 서술한다.
다윗이 최강의 보병 골리앗을 상대로 근접전에서 이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돌팔매를 들고 나와 전투의 양상을 원거리 속도전으로 바꾸어 버렸고, 투석병은 일반 보병을 쉽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큰 칼, 두꺼운 갑옷과 위압감을 주는 골리앗의 덩치는 결코 강점이 되지 못했다.
소위 ‘큰 물’에서 놀기 위해 청춘을 다 바쳐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현실적으로 큰 연못의 큰 물고기, 용의 머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기업’, ‘명문대’로 대표되는 큰 연못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살롱’에 들어가지 않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데 집중했기에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반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명문대’에 들어간 몇몇 학생은 더 우수한 학생들과의 경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아실현을 포기해 버린다. 강점이 강점이 되지 못하고, 약점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는 사례이다.
나름 좋은 대학을 다니고, 대기업에서 인턴을 경험해 보면서 느꼈던 점과 비슷한 군데가 있다. 큰 연못에서 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큰 연못에서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면 자존감은 심연으로 떨어진다. 내가 이 집단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면 무력감이 온몸을 짓누른다.
표면적 성과에 이러한 이면이 있듯이, ‘어려움’에도 긍정적 측면이 존재한다. 난독증 환자들은 자신의 다른 많은 능력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성공한 사업가, 최고의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마을의 폭격, 이웃의 죽음, 전쟁의 상흔이 남은 사람들의 마음에 부정적 영향만을 줄 것이라는 독일군의 생각과 달리 역경 속에서 살아남은 영국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동기가 부여되어 있었다. ‘우연히’ 어려움을 극복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도 자신감과 기쁨이 샘솟을 수 있다. 바람직한 어려움은, 고난을 통해 더 큰 것을 얻고 역경을 장점으로 승화하게 한다.
어느 한 방향에서 바라본 힘은,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때 약점이다. 당장의 어려움이 인생을 바꿔줄 강점이 되기도 한다. 수많은 자원은 오히려 문제를 키우기도 한다. 의도가 선하더라도 공정성이 결여된 권위는 무너진다. <다윗과 골리앗>은 저자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한 가지 사고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시선에서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사례는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약자가 ‘다윗의 전략’을 실행하기에는 큰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다윗의 전략’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해 볼 수 있다.
사실 말콤 글래드웰의 책은 <아웃라이어>,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에 이어 세 번째이다. 누구나 관심을 보일 법한 흥미로운 소재를 찾는 능력, 유려한 글솜씨, 치밀하고 논리적인 분석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그의 책들을 읽으며 항상 아쉬웠던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가 발견한 어떤 현상을 지나치게 일반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던 포인트를 거리를 두고 다시 바라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다윗과 골리앗>에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나열한 사례들은 물론 약자가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탈바꿈시켜 결국엔 승리하거나 성공을 쟁취한 사례들이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사회에서 대부분의 약자는 말 그대로 ‘약자’ 일뿐이며,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글래드웰도 책 속에서 이따금 이 점을 인정하고 언급하지만, 책에 몰입해 읽다 보면 그 점을 간과하게 되기도 한다. 약자의 비상으로부터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독자들을 끌어들이기에는 충분하지만, 현실적으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일이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