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빈터호프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하루에 판단하는 의사결정의 개수는 약 35,000개에 이른다고 한다. 일상과 휴식의 경계가 분명했던 과거와는 달리, 인터넷을 통해 24시간 타인과 연결되고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판단해야 할 가짓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세상은 개인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만 같고, 개인은 이러한 요구에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타인과의 비교 속에 더더욱 자신을 채찍질한다. 사는 게 팍팍할 때 우리는 ‘헬조선’, ‘정보의 홍수’, ‘과잉 사회’ 등의 단어들을 통해 사회의 ‘과도한 요구’들을 탓한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인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외부적인 자극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
저자를 찾아온 사람들은 결과에 대한 불안감에 결정을 회피하고, 책임져야 할 상황을 만들지 않으며, 대외용 이미지를 만드는 데 집중하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참을성과 인내력은 찾아보기 힘들고, 당장의 자극에 충실히 반응한다. 저자는 이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어른이 되지 못하고 ‘미성숙’ 한 상태로 성장이 멈추었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 현상이 단순히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선을 돌리면 책 제목처럼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가 보인다.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 사회에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미루어지고, 책임은 전가된다. 의미 없는 서류와 결재가 난무하며, 이는 또 다른 비효율적인 요구가 되어 개인을 옥죈다.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된다. ‘과도한 요구’에 대한 ‘미성숙한 사람들’의 반응이 결국 더 과도한 요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현대인의 이미지에 대한 집착은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군비확장 경쟁을 보는 것 같다. 더 강해 보이기 위해, 더 유능해 보이기 위해 서로 한 가지의 무기라도 더 갖추려고 노력한다. 누군가 하면 나도 해야 한다. 저자는 이미지에 대한 집착은 정신적 측면에서 비극이라고 말한다. 모든 방면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이를 통해 좋은 대외적 이미지를 쌓은 사람들의 자존감 상태는 대부분 썩 좋지 않다. ‘훌륭하게 보여야 한다’는 압박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끊임없는 불안과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불안과 압박 때문에 사람들은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았음에도 더 많은 요구에 직면한다.
스스로 만든 ‘과도한 요구’를 대면한 사람들은 결정을 회피하기 시작한다. 과도한 요구에 처해 있다고 느끼는 개인들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삶의 사소한 결정들을 타인이 내려주기를 염원한다. 헬스 트레이너, 웨딩플래너, 반려견 훈련사, 취업 컨설턴트 등은 개인의 결정을 대신해주는 사람들의 목록이며, 이러한 ‘관리자’들은 점점 삶의 더 사소한 영역들로 들어오고 있다. 개인에게 부여된 여러 과제들을 해결하는 주체 중 아이러니하게도 당사자는 없다.
우리 사회는 조화를 크게 강조한다. 남녀 간의, 세대 간의, 지역 간의 조화를 위해 수많은 지식인들이 노력한다. 저자는 조화를 이루기 위해 갈등을 무조건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조화는 역할과 임무에 대한 분명한 인지를 통해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조화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모든 이들이 자신의 위치와 타인의 기대에 상응하는 바를 행할 때,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을 때 찾아온다. 반면 갈등을 피하려 애쓰는 것은 해결책을 주지 않고, 묵히고 묵혔던 여러 감정들은 갑작스러운 폭발로 이어진다. 아이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아이가 원하는 것을 뭐든 해주고, 집안 대소사의 결정권을 어린아이에게 넘기는 가정이 많다. 이렇게 큰 아이는 자신의 한계와 역할을 인지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노력을 기피하며, 커가면서 마주하는 작은 갈등과 시련도 견디지 못하는 미성숙한 어른이 된다.
사실 우리 언제 어디서든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어느 시점에서 받아들일지 결정할 수 있다. 모든 생각을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거리를 두고, 한계를 정하고, 좌절을 극복하는 능력도 언제든 학습할 수 있다. 이러한 ‘어른’의 삶을 살기 위해 저자는 역할과 신뢰를 제시한다. 결국 자기 삶에 대한 뚜렷한 철학과 주관을 가지고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또는 적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인지는 신뢰로부터 나온다. 자신을 신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타인을 신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신뢰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대안이 있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진정으로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어떤 문제가 생겨 신뢰가 깨지는 상황도 겸허히 감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상대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성인들의 사회가 되기를, 그리고 나 또한 불편한 감정을 수용할 수 있고,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