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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두울 Jan 11. 2022

<평등을 넘어 공정으로>

박지향

1. 자유, 평등, 그리고 공정


    인간이 자유롭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자유란 무언가를 강요받지 않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인이 생각하는 자유의 개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의 주된 내용은 한 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은 무한한 생각과 행동의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에는 항상 제한이 따르는 법이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다는 말은, 그가 속한 공동체의 규범이나 법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자유롭다는 의미이다. 저자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나의 자유가 남의 자유를 침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자유는 법이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누려야 한다고 서술한다(p20).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말은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권리에서 그러하다는 것이지 성격이나 능력이 동일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인간 사회에서 평등하다는 것은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권리를 존중받고, 타인에게 가치관이나 판단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밀이 자유론에서 주장한 자유의 본질과 흡사한 면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평등을 위해 자유를 희생해야 한다거나, 자유를 위해 평등을 희생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자유와 평등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지향한다. 자유는 누구나 평등하게 자신의 삶을 펼칠 권리이며, 평등은 차별 없이 같은 조건에서 자유할 권리이다. 역사적으로 자유를 위한 투쟁의 가장 큰 목표는 법 앞의 평등이었다.

    그러나 이 둘의 외연이 과도하게 확장되다 보면 서로 충돌하는 지점이 생긴다. 저자는 평등을 위해 자유를 침해하는 일을 경계하며, 프리드먼의 주장을 앞세워 자유가 널리 보장되는 사회에서 평등도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유를 무제한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노력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저자는 동기 상실을 우려해 자유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나타난 격차로 인해 동력을 상실한 이른바 N포 세대의 등장도 무시할 수 없다.

    저자는 평등을 대체할 개념으로 ‘공정’을 제시한다. 저자가 정의하는 공정은 특정인이 배경을 이용해 특혜를 받는 일 없이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누리며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것이다(p33). 저자가 부정하는 평등의 개념은 결과의 평등이며, 긍정하는 공정의 개념은 기회의 평등과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다수가 불평등 문제를 인식하지만, 완전한 평등을 원하는 사람도 없다. 능력을 발휘하고 노력을 기울여 성공한 사람들의 성취를 빼앗아 노력하지 않은 실패자와 나누는 것은 노력한 사람에 대한 역차별이 될 것이고, 그러한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노력할 동기를 상실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결과의 평등보다는 공정한 다름이 구현되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2. 영국이 산업혁명을 주도할 수 있었던 이유


    영국은 전통사회에서 가장 먼저 벗어나 근대화하면서 산업혁명을 맞이할 준비를 가장 잘한 사회였다고 한다. 저자가 제시한 여러 이유 중 개인적으로 영국이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 몇 가지 요인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영국은 산업 발달에 필요한 도로, 교량, 운하 등의 인프라가 민간 자본에 의해 잘 정비되어 있었다. 인프라의 발달은 전국적인 시장 형성에 기여했고, 잘 정비된 인프라와 증기기관 등의 발명이 시너지를 일으킴으로써 영국은 산업혁명을 주도할 수 있었다. 물자, 인력, 정보의 신속・저비용 이동이 산업혁명의 원동력이었다.

    사유재산권의 확립 또한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가령, 특허법의 이른 제정으로 인해 영국의 기술자들은 큰돈을 벌어 사회적 지위를 높일 수 있었다. 노동의 대가를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사회에서 개인은 성장과 혁신의 동기를 부여받았고, 그 개인들을 통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영국은 내부적 성장과 자유로운 생각의 발현을 촉진하는 지리적, 역사적 환경에 놓여 있었다. 섬나라 영국은 로마, 몽골, 나폴레옹 등 유럽을 지배하거나 위협했던 외부 세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외세의 위협 등을 구실로 국민을 강하게 구속했던 유럽의 전제 군주들과는 달리 영국의 왕권은 약했고, 이는 정치적・사회적 이론의 여러 실험을 가능케 했다. 환경적 요인은 영국에서 자유로운 생각과 문화가 꽃피게 했고, 이는 산업혁명기 영국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또 다른 혁신을 준비해야 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영국 산업혁명의 성공 요인을 따져보자.

    먼저, 모두가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거대한 인프라의 조성을 민간에 맡길 수 있을까? 많은 자유주의자의 글에서 정부 개입은 부정적으로 묘사되지만, 현대의 경제 발전에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인프라는 중앙정부나 지자체 같은 공공 영역에서 조성하는 경우가 많다. 인프라의 조성과 제공이 민영화되어 사기업의 이윤 추구 행위의 일환이 되면 어떻게 될까? 도로를 예로 들면, 수요공급 원칙에 의해 자동적으로 적정 가격이 형성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한국 민자도로의 통행료는 한국도로공사 수준의 두 배를 웃돌며, 일본과 터키 민자도로는 살인적인 통행료로 악명이 높다. 가장 민주적이고 대중적이어야 할 공적 이동 인프라를 당장의 비용 문제와 경영 효율성을 이유로 사기업에 넘기는 것은 국민 전체가 누려야 할 혜택을 소수의 기업과 그 주주들에게 몰아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적 재산권의 문제도 우려되는 바가 없지 않다. 코로나 백신이나 에이즈 치료제가 지적 재산권의 보장을 위해 독점되는 것이 사회 전체의 복리를 증진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가 지원하는 무료 선별진료소가 곳곳에 생긴 지금도 민간 병원의 PCR 검사 비용은 10만 원을 웃돈다. 공익을 위한 약의 개발과 제조에는 공적 자금도 많이 투입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노력과 성과에 대한 확실한 보상은 필요하지만, 생명에 관련된 문제에도 같은 기준을 들이밀 수 없다. 생명을 위협받거나 잃은 자는 자유하지도 공정하지도 못하며, 사회 발전을 견인하지도 못한다.

    외세의 침략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영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빈번히 침략을 당해 왔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일제의 통치 아래 있었던 사람들은 국가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을 수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을 배제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민족주의가 발전한 것은 영국에서 자유주의가 발전한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다만 광복과 민주화 등 격변의 시기를 거쳐 보다 안정된 환경에서 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지금, 더 나은 삶에 대한 고찰, 자유와 평등에 관한 토론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3. 변화하는 시장의 모습


    책은 개인이 극단의 이기심을 표출하는 것이 결국 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진 역사적 사례들을 제시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많다. 개인의 이익 추구 행위가 사회 전체의 복리를 증진시킨다는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현대 사회의 사례로 충분히 반박 가능하다.

    첫째, 사익의 추구가 단기적인 사회 발전에 기여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 화석 연료의 사용은 지난 몇백 년간 인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그로 인한 환경 파괴의 대가는 우리 세대에게 돌아오고 있다. 세계적으로 그린 뉴딜 정책을 내세우며 지난 세기의 업적을 대체하려는 것만 봐도, 단기적인 성과만으로 시장의 성패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경 문제뿐 아니라, 최근 청소노동자 처우에 관한 문제에서도 드러나듯 시장의 수요와 공급은 누군가의, 주로 ‘을’의 위치에 있는 자들의 희생으로 맞춰진다. 이처럼 경제적 효율성을 위한, 이익 창출을 위한 이기적 조치들은 긍정적 가치만을 창출하지는 않는다.

    둘째, 이제는 많은 소비자들이 사회적, 환경적 가치판단을 소비 행위에 녹여낸다. 가격만이 수요의 독립변수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 이득만을 좇다가 도덕적 가치를 상실한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의 사례는 수없이 많다. 반대로, 남몰래 사회에 기여하던 기업이나, 조그마한 동네 가게의 선행이 밝혀지면 소비자가 해당 업체에서의 소비를 늘리는 현상도 발생한다. ‘돈쭐 내다’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이다. 사회적 트렌드가 합리적, 경제적 소비를 넘어 가치 소비, 윤리 소비로 이어지면서 이윤 추구를 위한 이기적 행위가 실제 이윤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4. 파괴적 혁신이 가능하려면


    산업혁명을 보아도, 최근 기업들의 성장 배경을 보아도, 가장 효과적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파괴적 혁신이다. 기존 제품과 서비스를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존속적 혁신과 달리, 파괴적 혁신은 밑바닥 시장부터 공략하여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여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우버, 넷플릭스 등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비즈니스가 세계적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존의 대기업 계열사들이 아직도 높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한다. 혁신적인 서비스는 몸집이 커지기 전에 기존 시장에 흡수되고, 거대 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은 계속된다. 차량 공유 플랫폼 ‘타다’, 변호사 중개 플랫폼 ‘로톡’의 사례만 봐도, 기존 업계의 반발 때문에 모두의 삶을 바꿀 혁신적 서비스들이 빛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 업체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자본력을 이용해서 후발 주자의 싹부터 자르는 마당에 어떻게 파괴적 혁신이 가능할까?

    애덤 스미스는 개인이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남의 소유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이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지나친 낙관적 판단이 아니었나 싶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소유를 빼앗거나 사회 전체의 복리를 저해하는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인간은 유혹에, 특히 돈의 유혹에 쉽게 굴복한다. 자신이 창업가라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사업을 키워 대기업에 큰돈을 받고 매각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대기업들의 몸집을 불려주는 방식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의 방식이 21세기에도 유효할지는 의문이다.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고 모두가 자유롭게 파괴적 혁신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혁신적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스타트업 시장에 공적인 보호막을 둘러주는 것이 21세기의 발전에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5. 어떤 사회 이론이 최고의 이론인가?


    “자유주의가 경제 성장에 효과적이다”, 혹은 “개입주의가 경제 성장에 효과적이다”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진리 같아 보이는 과학조차 새로운 발견에 따라 패러다임이 바뀌는데, 하물며 여러 의견이 난립하는 사회・경제이론에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정답이 있을까? 정답을 찾을 수 없을 때는 시대 상황과 맥락에 따른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역사가 있다. 책의 부제가 ‘역사를 통해 배우는 성공한 국가의 조건’이듯이 과거가 말해주는 사례들을 살펴 최선의 선택을 찾는 것이 역사를 통해 배우는 합리적이고도 올바른 자세이다.

    자유주의를 통해 영국과 미국이 급성장할 수 있었고, 1930년대 대공황의 시기에는 케인즈의 국가개입주의가 세계가 다시 안정을 찾는 데 기여했다. 석유 파동으로 인한 혼란이 있었던 시기에는 대처, 레이건 등의 신자유주의가 주류로 떠올랐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대표되는 2008년 경제위기를 통해서는 신자유주의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어느 경제 이론이 정답인지를 다투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정확히 진단해야 역사를 참고하여 가장 적절한 선택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돌아보면 개인의 탐욕이 극에 달할 때 국가 개입을 요구하는 주장이 힘을 얻었으며, 혁명적 변화를 앞둔 시기에 시장의 자유에 대한 요구가 득세하였다. 그리고 어느 한 주장이 정설이 되어갈 무렵 이를 비웃듯 실패 사례가 나타나며 각 주장 간의 균형을 맞추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쯤에 있을까? 우리는 어떤 사회를 준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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