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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두울 May 08. 2022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200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광복 이래로 지속해서 종교인이 늘기만 하는 나라였다고 한다. 어릴 적 산이나 높은 빌딩에 올라 바라본 서울의 밤에는 빨간 십자가가 가득했고, 나 또한 매주 부모님의 손을 붙잡고 그중 하나로 들어가곤 했다. 그러나 2022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탈종교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20대의 무종교인 비중은 78%에 달한다고 한다. 나 자신도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일부 부도덕한 종교인에 대한 실망, 과학적 사고의 확산, 저성장과 공동체 의식 약화 등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탈종교화 사회 현상에 대해 분석하는 여러 지식인들의 의견이 있다. 사회 현상의 설명에서 조금 더 나아가, 자신이 신을 믿지 않는 이유를 과학적, 논리적으로 제시하며 종교를 거세게 비판하는 지식인들도 많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며, <만들어진 신>은 'God Delusion(신이라는 망상)'이라는 원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종교와 신에 대한 그의 주장을 약 600페이지에 걸쳐 강하게 피력하는 책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매우 다양한 각도에서 종교에 대한 비판적 논지를 펼친다. 진화론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적 주장은 물론이고, 윤리학, 심리학, 심지어는 신학에 대한 깊은 공부를 바탕으로 아주 조금의 논리적 허점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드러난다. 이에 반해 그와 대척하는 종교인들의 논리에는 한 가지 큰 허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모든 종교인들의 논리는 '신이 존재한다'라는 믿음을 토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부 종교인들은 생명의 복잡성을 두고 "이렇게 복잡한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나타날 확률은 쓰레기장에서 회오리바람에 의해 보잉747 항공기가 조립될 확률과 비슷하며, 따라서 생명에는 '설계자'가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만 가능하다. 그들은 복잡한 생명체의 '설계자'의 필연적 복잡성과 그 확률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반면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 속 신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검증해야 할 가설일 뿐이며, 그 가설은 지금까지 나온 여러 과학적 증거들을 살펴보았을 때 상당히 타당성이 떨어진다.


    종교가 범세계적 윤리의 기준이 된다는 주장도 책에서는 낱낱이 파헤쳐진다. 세상의 수많은 전쟁, 학살, 그리고 차별의 중심에는 종교가 있었다. 이러한 특성은 사상체계로 분류될 수 있는 유교나 불교에서보다 같은 뿌리를 바탕으로 하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의 유일신 사상에서 더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전쟁과 같이 큰 사안이 아니더라도, 종교인들이 저지르는 오만하고 끔찍한 사례들은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일부 사례에만 집중한다는 오해에 대하여 리처드 도킨스는 성경으로 대표되는 교리의 윤리기술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순교를 빙자한 테러, 성소수자에 대한 멸시와 차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낙태 반대 시위 등은 극단적이지 않은 종교인들조차도 당연히 여기는 기본적인 교리로부터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가 화합과 포용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종교는 오히려 차별과 갈등, 혐오를 초래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다녔던 나를 설명하는 한 가지 단어는 '모태신앙'이었지만, 모태신앙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부담감이 항상 있었다. 아무 지식도, 신념도 없이 그저 부모를 따라온 어린아이가 과연 '신앙'을 가지고 있을까? 초등학교 시절에 간 교회 수련회에서 남들 따라 울면서 기도해본 적은 있는데, 과연 그게 내 믿음을 증명해주는 것일까?

    <만들어진 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그 부모가 "이 아이는 크리스천 어린이입니다!", "얘는 카톨릭 아이예요"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언급한다. 어느 한 어린아이에게 마르크스주의나 신자유주의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듯이, 개인의 믿음을 근간으로 해야 할 종교에 대해서도 어떠한 꼬리표를 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불신에 대한 처벌과 지옥이라는 끔찍한 세계에 대한 형상을 그려주는 것, 두려움과 공포를 도구삼아 믿음을 강제하는 것 또한 종교가 미성숙한 내면에 가하는 폭력의 일종이라고 말한다.


    종교에서 벗어난 지금 나의 상태와는 별개로, 적어도 주체적인 사고가 가능한 한 인격체가 되었을 때 종교를 갖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 종교의 주장이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인 것과는 상관없이 어떠한 집단 속에서의 안정감을 목적으로, 혹은 특정 계기를 통해 나도 언젠가 깨달음을 얻어 종교에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작가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리처드 도킨스는 상당히 극단적인 무신론자라고 생각한다. 책 말미에서 드러나듯이, 도킨스는 종교의 순기능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조차 과학과 이성의 영역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만들어진 신>은 종교에 관하여 개인적으로 느껴왔던 것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에 대하여 매우 논리적으로 쓰인 글이라 생각의 정리에도 도움이 되고 많은 영감도 주었지만, 적어도 마지막 부분에 있어서는 완전히 고개를 끄덕이지는 못한 채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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