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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두울 Nov 22. 2021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시장이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예전에는 시장의 논리, 돈의 논리가 감히 들어올 엄두도 내지 못했던 숭고한 가치판단의 영역이 존재했다. 생명, 성, 교육, 환경, 공공질서 등... 그러나 현재는 그 모든 영역이 경제적 가치에 의해 일률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대리모 서비스, 말기 환금, 합법적 성매매, 명문대 기부입학, 탄소배출권, 우선탑승권까지. 마음속 깊은 곳에선 이 단어들에 대한 반발심이 일지만, 대부분이 이미 사회에서 통용되는 단어라는 건 가슴 아픈 현실이다. 시장 논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위에서 언급한 변화를 통해 사회 전체의 경제적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공정한 거래 환경에서, 재화에 가장 높은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에게 재화가 주어지는 것은 문제의 여지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사회의 효율적 운용에 기여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공리주의(스러운) 태도가 비시장 규범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냐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부 영역에 속하는 가치는 이윤 추구를 위한 도구로서 다루는 것이 부적절하다. 일부 가치는 그 자체만으로 존중받아야 하며, 일부는 숭고한 가치로서 그 품위를 지켜야 한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시장지상주의는 오직 경제적 가치만을 추구한다. 가치의 근본적 속성에 관련한 차이마저도 고려하지 않게 되면, 거래되어서는 안 될 것들이 거래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가치 판단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시장 논리가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것을 우려하는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든다. 불평등과 부패이다.


 먼저 불평등이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다면 부유한 지 가난한 지가 더욱 중요해진다. 부유함의 대가가 조금 더 좋은 옷, 좋은 집 등 경제적 생활 수준에 관련한 것으로 제한된다면 불평등의 문제는 심각하지 않다. 하지만 부유함의 대가가 비시장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정치적 영향력, 생명의 연장, 교육의 질적 차이 등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소득과 부의 분배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노력으로 경제력의 차이를 따라잡기는 점점 힘들어질 것이고, 계층 간 격차는 점점 벌어질 것이다.


 거래에 있어서의 공정성도 불평등 문제의 일부이다.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재화를 사고파는 것은 공정한 거래로 비춰진다. 다만, 비시장 영역에서의 거래의 내면을 본다면 말이 달라진다. 과연 돈이 없어서 부자에게 신체 일부를 파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 자발적인, 자유의지에 의한 행위일까? 시장에서의 교환은 시장 옹호론자들의 생각만큼 항상 자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패는 조금 더 본질적인 문제이다. 시장의 가치평가 행위 자체는 특정 재화를 변질시킨다. 다시 말해, 시장은 단순히 재화를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교환되는 재화에 어떠한 태도를 부여하고, 드러내며, 이를 부추긴다. 앞선 문단의 예시를 똑같이 들자면, 신장을 사고파는 행위는 인간을 여러 부속이 합쳐진 존재로 여기는 객체화된 인간관을 부추긴다. 아이를 입양하는 일에 시장 논리를 적용하면, 성별, 지능, 외모가 아이의 가치를 결정한다. 두 예시 모두 인간을 존엄한 존재,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태도를 반영한 것이다.


 인간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사회 규범 또한 시장의 침범을 받고 있다. 멀지 않은 과거에는 새치기를 하거나, 약속 시간을 어기는 등의 행위가 부끄러워 마땅한, 비판받아 마땅한 행위였다. 하지만 돈을 내고 줄의 앞으로 갈 수 있는 권리를 사거나, 지각한 사람에게 '지각비' 명목으로 벌금을 책정하는 등 시장 논리가 규범의 영역에 들어서자, 이는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돈을 냈으니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부패는 부정 이득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어떤 재화나 사회 관행을 부패시키는 행위는 그 평판을 깎아내리거나, 합당한 수준보다 낮게 평가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장의 가치가 공동체적 가치를 대체하는 현 상황은 부패임이 당연해 보인다.



 최근 한 유명인이 입양아동과 잘 맞지 않으면 입양을 취소하거나 입양아동을 바꾸는 게 어떻냐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대중의 큰 비난을 받았다. 발언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과는 별개로 이미 대중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영역을 직관적으로나마 알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다만 경험적으로 보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게는 엄격한 윤리의 잣대를 들이밀지만, 자신의 이익이 결부된 한 한없이 나약해한, 또 계산적인 사람이 된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적어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영역에서만큼은, 머리로 계산하는 시장의 논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도덕의 논리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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