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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늬의 삶 Sanii Life Jun 04. 2024

일출은 실패했으나 마사지에 로컬음식 잔뜩 비 오는 날

베트남 보름살기 09 : #원스파 #Nguyen Loan #촌촌킴


기왕 바닷가에 왔으니 해가 뜨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구글에 Nha trang sunrise time (냐짱 일출 시간)을 찾았더니 06:07이라는 시간이 떴다. 약간 늦은 시간인 05:57에 호텔을 나갈 때, 이미 푸르스름한 동이 터있어서 그랬을까?


06:40까지 붉은기 하나 보지 못하고 기다리며 ‘나트랑은 일 년 중 대부분 일출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좋은 도시라면서. 나는 대부분을 피해가는 건가. 구름이 많아서 안 보이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아쉽고도 또 아쉬웠다.



그러던 중에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파도방울인 줄 알았다. 나트랑에선 파도와 제일 멀리 앉아있어도 내 얼굴까지 간혹 몇 방울씩 튀어오고는 했으니까. 파도가 아니라 비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조식 먹으러 돌아오며 비를 약간 맞았다. 내일은 날이 좋고 내가 더 일찍 밖에 나가서 일출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도 낭만적이었다. 하나도 춥지 않고 조금은 습한 아침이다.



조식 먹고도 오늘은 창 밖이 흐렸다. 2월이면 베트남 건기라면서! 지금까지 날 좋다가 오늘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럴수록 더욱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 오늘은 레몬주스와 브라우니를 처음 만났다. 무난하게 맛있었다.



오늘 호텔 조식 라운지에서 나온 쌀국수인데 면발이 진짜 얇다. 오바 보태면 거미줄 수준이다. 맛있어서 이름을 찍어두었는데 영어로는 Glass-noodle chicken soup인데 '글라스-노 델레 치킨 누들'이라고 번역이 되어있다. 아마도 '노 델레'가 '누들'인가보다. 유리면이라니 굵기와 어울린다.



허허. 혹시 몰라서 베트남 일기예보를 찾아봤더니 내일은 확실한 비 표시가 떴다. 이렇게 나트랑 일출 못 보고 가나요? 낭만을 쫓는 여행자한테 갓 뜨는 해 좀 보여주란 말이야! 나트랑 현지날씨를 알수 있는 사이트 주소는 아래와 같다.


https://weather.com/weather/monthly/l/f2a4da95c71b07515414fb81e2db3f2bb4694f42e05b9fd11a2c52dd2d7edc6f



이러나 저러나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니 할 일을 해야 한다. 여기는 동남아니까 마사지를 받으러 나트랑 원스파로 간다. 가는 길에 만난 하얀색 강아지는 입가가 약간 지저분했고 털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너무 얌전해서 인형인 줄 알았다.


작지만 깔끔하던 원스파


마사지를 받으며 새삼스레 놀랐다. 몸이 많이 나아졌다. 어제는 살짝만 눌러도 미치도록 아프던 곳이 오늘은 단단해져 아무렇지 않았다. 이게 바로 근육통을 좋아하는 이유다. 잠깐만 아프면 온전한 내 근육이 되니까! 시간은 언제나 흐르므로 근육통을 안 즐길 이유는 없다.



냐짱의 제이스파는 스크럽 가루 같은 걸 발에 묻혀서 물에 문질문질 닦고 원스파는 여기부터 마사지 하듯이 주물러준다. 그래서 이때부터 예약했던 120분 마사지를 시작한 줄 알았다. 제이스파는 예약한 시간인 10시부터 옷 갈아입고 발 씻고 마사지 다 받았는데 12시가 되기 전에 로비로 내려가서 음료 받아 먹었으니까 여기서도 마사지만으로 120분 채울 거라는 기대가 없던 거다.


그런데! 나트랑 원스파는 발 씻고 누운 뒤부터 스탑워치에 2:00라고 찍힌 걸 보여주셨다. 와우, 정확한 사람들이네. 고객의 몇 분도 허투루 쓰지 않는 거 너무 좋다.


조금 더 비교해보자면 제이스파는 시설 상에 마사지는 중상, 원스파는 시설 중상 (오픈 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무언가를 공사 중이었음), 마사지 상! 제이스파는 왕실에서 고급재료로 고급 검을 만드는 느낌이면 원스파는 조금 투박해도 장인의 정신을 갈아넣은 전설의 검을 만드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색 선택의 자유 없이 고정관념의 끝판왕인 분홍가운을 줘서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바지가 준비돼있어서 좋았다. 2시간 동안 마사지사분이 진짜 철저히 마사지해주셨다. 귓속, 날개뼈가 특히 신선했다. (나중에 달랏 Ot care에서도 귓속을 대충 슉-하긴 했다. 나트랑 원스파가 훨씬 제대로 해준다.)


얼굴을 감싼 수건이 계속 내려가더라도 숨 잘 쉬고 시야가 잘 가려져있는데 자꾸 과하게 신경 써주시던 점이 아직은 노련한 거 같지 않으셨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압을 ‘보통’으로 선택했는데 2시간 내내 압 강하게 유지하셔서 정말 마음에 들었다. 끝나고 팁으로 5만 동 드렸다. 새로 태어난 느낌이다.



처음 마사지샵에 막 들어갔을 때는 독특한 맛이 나는 물을 받았고, 마사지가 끝나고 나면 오렌지쥬스랑 아이스아메리카노 중에 선택해서 받을 수 있었다. 난 아무래도 오렌지쥬스다. 얼음이 들어가 시원했고 맛도 좋았다. 노곤노곤해진 몸으로 달콤한 걸 마시니까 끝내줬다.



베트남 VP bank ATM이 수수료가 없다길래 출금하러 갔다. 수수료가 진짜 없는 줄은 모르겠고, 2020년 2월 기준으로 200만 동 출금하니까 한화로 108,119원이었다. 2024년 6월, 찾아보니 한화 108,400원이다. 베트남 원화도 조금씩 올랐나보다.


Bun Cha Nguyen Loan


길 건너면 냐짱 현지 맛집인 Bun Cha Nguyen Loan이 있다. 영어를 못하셔서 바디랭귀지로 소통했다. 인터넷에서 찾아간 음식사진을 보여드리고 국수 이름을 알아냈다. Fish ball noodles랑 만두튀김이다. 만두튀김 안에는 메추리알도 들어있다. 고소하다.



누들을 몇 입 먹다보면 조금 느끼할 수 있는데 그럴 때 왼쪽 소스 넣어먹으면 얼큰하게 즐길 수 있다. 동남아 여행을 다니면서 소스로 맛과 향을 더욱 풍요롭게 즐기는 법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반면에 오른쪽 소스는 맵고 단 맛이라 내 취향은 아니었다.



식사를 마친 뒤 캄언 (베트남어로 감사합니다) 하고 맛있었다고 영어로 말했는데 알아들으셨는지 깜언 하고 웃으며 대답해주시던 할머니 사장님! 마음이 따뜻해졌다. 한편으로는 전세계 모든 언어를 프리패스로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었다.



베트남 프랜차이즈 카페인 브이프룻 2호점에 방문했다. 3층까지 있고 나는 2층에 앉았다. 1층에서 아보카도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앉아있으면 물이랑 같이 가져다준다. 직원분이 선풍기 틀어줄까 물어봐서 괜찮다고 캄언 했더니 땡큐라고 대답해주셨다.


어차피 오픈된 공간이고 베트남이 실내흡연도 가능하단 거 알았지만 현지 남자가 바로 옆 테이블에서 담배 피우니까 코랑 목이 괴로웠다. 남자한테 마구 소리치고 싶었다. 너는 매너라는 게 없냐? 2층에 너랑 나밖에 없는데 좀 멀리 가서 피우면 안 되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처음엔 카페에 음악이 안 나와서 챙겨다니던 이어폰을 끼고 내가 고른 한 곡을 들었다. 곡이 끝나자마자 매장에 음악 재생이 시작 됐다. 여긴 그래도 선곡이 괜찮았다. 베트남 노래가 다 뽕삘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보카도 아이스크림


아보카도 아이스크림은 독특한 맛이다. 위쪽은 맛있는데 아래는 아보카도의 쓴맛조차 사랑해야 좋아할 듯하다. 멍하니 밖을 내다보는데 별안간 비에 젖은 풀 냄새랑 쇠 냄새가 나더니 10여 분간 소나기가 내렸다. 이제는 비를 보는 것도 낭만적이었다.



비가 오고 바람이 잘 안 부니까 한국 여름 같다. 베트남은 태국에 비해서 덜 덥고 덜 습해서 그런지 이국 맞는데 이국적이라는 느낌이 덜 든다. 한국 시골의 어느 골목을 걷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정처없이 걸었던 것 같다.



숙소에서 잠깐 쉬다가 저녁 먹으러 나갔다. 비가 몇 방울씩 와서 그냥 맞고 갔다. 사람 생각 다 같은지 우산 든 사람은 딱 한 명 보고 오토바이를 우비로 가린 사람은 여럿 보았다. 거센 비가 아니라 그런지 거의 모두가 비를 맞고 다녔다.


해피뉴이어 2020
빈컴플라자 1호점 지나가기
나트랑 촌촌킴 도착


촌촌킴이라는 식당에 갔다. 인테리어가 괜찮았다. 1층에서 먹었는데 그들 나름대로는 떨어져있는 거겠지만 공간 자체가 좁다 보니까 직원 둘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밥 먹기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두 직원이 일하는 중에 서로 수다 떠는 일 없이 손님 누군가가 뭐 부족하면 바로 갖다주고 계산하고 나가면 빠르게 치웠다. 사진 속 하얀 배경에 파란 점박이 저거 두 개는 소스통이다.



스프링롤(짜조), 모닝글로리, 베트남식 수육을 주문했다. 전반적으로 깔끔했다. 짜조 같은 튀김류를 본래 안 좋아하는 나는 뒤로 갈수록 칠리소스맛으로 먹었다. 오른쪽에 마늘 같이 생긴 거 먹어보니까 생각보다 건조했다. 장아찌는 아닌데 과일처럼 씨가 있다고 느껴지길래 나중에 남직원한테 뭐냐고 물어보니까 피클이라고 했다. 뭔가 웃겨서 비엣남 피클이냐니까 맞다고 했다. 피클 치곤 상큼한 맛이 전혀 업었다. 한국 가서 먹기 힘든 생과일에이드를 기대하고 패션후르츠에이드도 시켰는데 청에 사이다 탄 그런 에이드 나왔다. 에이드는 비추한다.



먹는 중에 직원이 “소스…!”하면서 뒤늦게 갖다준 거 위쪽에 놔두었다. 받고 나서 식탁에 비치된 소스통 두 개 열어봤더니 그 중 하나였다. 내가 먹는 법을 몰라서 안 덜고 있으니까 갖다준 건가? 아님 원래 주는 건데 빼먹었던 걸까. 전자일 확률이 높은 것 같아서 스윗함에 약간 감동 받았다. 수육을 찍어먹어보니까 시큼달큼해서 처음엔 '?!' 이랬는데 계속 찍어먹는 나를 발견했다.


마지막 나쨩비치의 밤


이번 여행 마지막이 될 나쨩비치의 밤이다. 처음으로 바다수영 하는 사람 한 명도 없었고 해변가 걷는 사람도 드물었다. 나도 모래를 거의 밟지 않고 멀리서 파도를 구경했다. 파도가 진짜 셌다. 평소 나트랑의 파도는 쏴아아 인데 오늘은 철썩철썩에 쿵 까지 있었다. 어릴 때 엄마가 바다 물 들어올 때 파도 가까이 가지 말라고 순식간에 쓸려 간댔는데 그 말이 생각났다.


비 오는 메이플호텔 골목
비 오는 나쨩의 밤


이런 날이면 분위기 좋은 음악에 쓴 칵테일 혹은 우유베이스 달콤한 칵테일이 땡긴다. 상큼하거나 매운 거 말고! 꼭 뭉근하거나 달아야 한다. 근데 혹시나가 역시나, 루프탑바까지는 안 올라가고 수영장 쪽에서 슬쩍 들었는데 음악선곡이 정말 내 취향 아니라 그냥 객실 내려와서 씻고 편하게 쉬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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