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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늬의 삶 Sanii Life Jul 20. 2024

선물 같은 달랏의 별산책과 그랩기사의 사기수법

베트남 보름살기 16 : #Ot care  #윈드밀루프탑카페 #오지버거


오늘도 맛있는 조식이 나왔다. 태국 음식 분짜와 비슷하길래 그거냐고 물어봤더니 고기가 달라서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소스는 신맛이었다. 호스트가 말하기를 ‘짧은 바나나’ 케이크는 어제 밤에 사와서 방문을 노크하며 이름을 불렀다는데, 내가 자느라 기절해서 그 어떠한 소리도 못 들어서 아침에 먹게 되었댔다.


오늘도 평화로운 숙소


숙소에서는 그랩바이크가 잘 안 잡혀서 조금 걸어나가야 한다. 분명 대문을 잠그고 나왔는데 호스트가 Bonnie를 셀프산책 시키려는지 그 전에 문을 열어두었나보다. 밖에서 갑작스레 만난 Bonnie는 내가 자기를 산책 시키는 줄 알고 끊임없이 나를 쫓아왔다. 그거 아니야, 바보야! 위험하니까 돌아가!


그래서 15분 동안 짧은 아침 산책을 하게 됐다. 호스트한테 애가 나를 계속 따라오는데 같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메세지 보냈는데 ‘네가 그랩바이크 타면 애가 알아서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답장을 숙소 거의 앞에서 받았다. 호스트가 미안하다고 본니는 bad boy라고 해서 웃겼다. 즐거웠는걸요!



좀 걷는데 쨍쨍한 낮이라 더워 죽는 줄 알았다. 여름이다. 그랩바이크 불렀는데 3분이면 온다면서 어플 지도 한구석에 4분씩이나 고정돼있던 바이크가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만났는데 운전자가 너무 할아버지여서 내 몸을 맡겨도 되는 걸까 고민했다. 그래도 덥다가 바이크 타니까 '이래서 속도를 내는구나.' 싶을 정도로 시원하고 날씨도 좋고 기분 좋아졌다.


베트남의 오토바이 소리가 더 이상 시끄럽지 않고 asmr 같다고 느끼던 와중, 길을 몰랐는지 기사가 목적지에서 180m 떨어진 거리에서 멈췄다. 나는 그냥 걸어 가겠다고 했고 27,000동 나왔는데 거스름돈은 팁 개념으로 3만 동을 줬다. 인터넷에서 달랏은 그랩어플에 카드 정보 등록해놔도 현금으로 결제해야 한다는 말들이 많았고, 실제로 첫날 그랩택시를 탔을 때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이것도 그럴 줄 알았다.


하하호호 웃으면서 기사가 나한테 "Good luck for you."라고 한 뒤 헤어졌는데 2분 쯤 지나서 카드로 27K동이 결제 됐다는 연락이 왔다. 이렇게 되면 돈을 택시비의 두 배 이상을 낸 셈이다. 처음엔 너무 노인이라 어플 사용법을 몰랐을 수도 있지 않나 했다가, 하노이 여행 때 남성 그랩기사가 현금 팁을 받아놓고 나랑 헤어진 뒤 어플에 본인이 팁 금액을 직접 입력해 내 카드에서 돈이 또 빠져나가도록 추가결제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남자 엄청 비양심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경험을 또 하게 됐다.


노인이어도 자기 직업인데 모를 수가 없지 않을까. 현금을 팁이라고 생각했다기에는 상식적으로 팁을 원래 금액보다 많이 주겠냐는 말이다. 열 받지만 할 수 있는 건 그랩 별 1점 주고 영어로 상황설명 보내 놓는 수밖에 없었다. 기사가 빼간 돈이 고작 한화 1,391원인 게 문제가 아니라! 이 돈이 이 사람들한테 얼마나 큰 금액인데, 근데도 사기를 처먹을 수가 있나 싶었다. 그거면 숙소까지 한 번 더 갈 수 있는 돈이었는데! 열받아서 바로 그랩어플에서 카드정보 삭제했다.



달랏 Ot Care로 마사지 받으러 왔다. 4 hands massage를 받고 싶었는데 그건 big한 몸집이 받는 거라고 해서 full body massage 90분을 선택했다. 하긴 한 사람한테 120분 마사지 받더라도 나중에 할 게 없어서 같은 부분을 반복하는 경우도 꽤 있으니까 이게 효율적이겠다.


풀 바디 마사지라고 해서 드디어 건식마사지를 받을 수 있나 생각했는데 마사지 전 종이 작성할 때 오일을 닦을 건지 그렇다면 젖은 수건 마른 수건 중 뭐로 닦을 건지라는 항목이 있길래 설마 했건만 역시나 오일마사지였다. 베트남은 기본 마사지가 오일인가보다.



마사지샵에 애기가 있는데 영어를 참 잘했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는데 달랏에서 자랐다고 했다. 직원들은 친절하고 친근했다. 사진은 진저랑 그라스를 넣은 뜨거운 물인데 다 마셨더니 또 주셨다. 더워 죽겠는데 너무 뜨거워서 땀이 났다. 맛있기는 했다.



핸드폰이랑 가방은 Ground Floor 사물함에 넣고 열쇠만 챙겨서 3층으로 올라갔다. 가장 끝방이긴 했는데 마사지사가 문을 열고 마사지 해서 밖에 지나가던 직원이 닫아주었다. 암만 수건으로 가리고 있어도 입은 게 팬티 하나면 문 좀 닫아주어야 하지 않나? 마사지사의 전문성이 의심 됐다.


추천과 비추 사이를 넘나드는 마사지였다. 이렇게 누르면서 하는 마사지는 처음이다. 피곤했던 신체 부위는 원래 좀만 마사지해줘도 좋은 게 당연하니 시원했는데, 아닌 부분은 아프기도 했고 그냥 만지는 수준인 부분도 있었다. 근데 놀랍게도 90분 모두 받고 나니까 등이 일자로 펴지고 발이 가벼워졌다. 그래서 계산하고 팁으로 2만 동을 주었다.


처음에 발 안 씻겨주고 바로 시작해서 당황했는데, 나중에 마사지 끝나고 내려오면서 계단 벽에 걸려있는 문구를 보았다. 마사지 받기 전에 세수하고 손발 씻으라는 내용이었다. 모르고 올라가서 조금 미안해졌다. 직접 씻었어야 했나보다.


마사지샵 내부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랑 비슷한 느낌이다. 골목도 80년대에서 90년대 중후반까지의 향수를 조금 느낄랑 말랑…하기엔 여긴 너무 베트남스럽군. 그래도 무언가 친근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달랏은 꽃이 활짝 안 피어있어도 예쁘다. 보는 재미가 있는 도시다.


Banh Can Nha Chung


반깐 맛집 Banh Can Nha Chung에 들렀다. 35,000동으로 총 5개가 나온다. 빵은 소스에 담가먹으면 폭신하고 그냥 먹으면 계란빵 같다. 소스가 달짝지근한데 새콤해서 맛있다. 현지인들밖에 없었고 내 미소에 직원들이 함께 마주 웃어주지는 않았으나 이 정도면 됐다. 앞에 베트남 애들은 치킨버거 같이 생긴 무언가랑 콜라를 먹었다. 초등학교 앞 버거 퀄리티 쯤이었다.


예쁘긴 한 달랏
달랏은 있을수록 정드는 곳인가봐
오늘도 롯데리아를 저 멀리서!
어제는 저쪽 길에서 수언흐엉 호수를 따라 걸었으니 오늘은 풀과 꽃이 있는 이쪽 길로!


밝은 날인데 천장이 막혀있는 쪽으로 나와서 찍은 사진이라 어둡다. 윈드밀 루프탑 카페로 가려면 건물로 들어가서 오른쪽에 있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Windmills cafe rooftop 남직원분이 베트남어로 말 걸었는데 영어로 대답하니까 당황하셨다. 그래도 주문 잘 마쳤고 페이는 후불제라고 했다.



콘센트 자리에 앉았는데 테라스 자리 아니어도 시원했고 의자가 푹신했다. 달랏에서 처음으로 받는 차가운 물이었다. '윈드밀 쓰어다'는 카페라테 맛이었다. 진짜 시원하고 너무 좋았다. 몇 시간이고 있을 수 있을 듯했다. 음악은 유명한 팝송 리스트였고, 핸드폰 충전하고 책 좀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해지는 오후 6시경, 윈드밀에서 내려다본 달랏야시장


카페에서는 슬슬 추워져서 바깥도 그러려나 생각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오늘은 더운 날인가보다. 해가 졌는데도 한국 가을밤보다 안 추운 정도로, 바람이 안 불 경우에는 더더욱 하나도 안 춥다. 반팔 입어도 멀쩡만 하다.


오른쪽 거대한 나무가 멋진, 지나가면서 찍은 달랏야시장


달랏 Aussie Burger오지버거에 왔다. 작은 가게였다. 밖에서 주문 받으려 대기하는 직원이 따로 없었고, 한 분이 안쪽 키친에서 요리하다가 손님이 온 걸 발견하거나 기다리던 손님들이 주문하려고 직원을 찾을 때마다 뛰어나오셨다.



블루치즈버거랑 감튀에 콜라를 시켰는데 버거랑 케찹만 주고 가길래, 찾아가서 음료는 직접 가져가야 하냐고 물어봤는데 영어를 못 하시는 듯했다.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는 시늉하니까 직접 꺼내주시면서 빨대도 같이 주셨다. 그런데 나이프랑 포크는요? 허허. 나이프랑 포크가 테이블마다 없고 계산대 앞에만 있어서 직접 가지고 왔다. 여기는 벽에 어떠한 문구도 없었는데, 셀프면 셀프라고 말해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맛은 진짜 무난했다. 가게 이름이 Aussie라서 호주의 짠맛이 있을지 기대 반 긴장 반이었는데 안 짜서 좋았다. 감튀는 진작 튀겨놓은 거 준 듯했는데 나쁘진 않았다. 하인즈 케찹 오랜만이었고, 야외석에서 먹었는데 낭만적이었다. 건너편 가게에서 들리는 음악이 좋았다.



날이 시원해서 설렁설렁 걷다 보니, 원래 가볍게 걷는 편이기는 하지만 1시간 거리가 금방이고 즐거웠다. 걷다 보니 달랏대학교 오거리가 또 나오고. 지도를 안 보고도 아는 길이 생긴다는 건 여행의 참맛이고. 언젠가의 낮쯤에 어렴풋이 보았던 인공축구장도 또 보고.


개들도 보고


달랏 날씨는 정말… 선물이다. 여름밤보단 시원하고 가을밤보단 안 추운, 한국이라면 일 년에 일주일 정도일 저녁 날씨랄까. 생각해보면 어느 도시를 가든 새 사람 만날 기대를 하는 나인데 달랏에서는 에어비앤비에 머물면서 매일 대화상대가 있으니 사교욕구가 충족돼서 그런지 새로운 사람보다 기존에 알던 지인과 아무 말 없이 달랏의 길들을 걷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 온 여행이다. 혼자 걸으니 잊고 있었던 노래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와 지인 대신 그 시절의 나와 친구하듯이 걸었다. 근데 숙소 가서 씻고 나오니까 혼자인 거 너무 좋고 혼자 있길 잘했다 생각했다.



전봇대 사진을 안 찍으면 내가 아니지, 라기에 이번에는 의도해서 찍은 의미 있는 사진이 아니고 별 찍으려다 얻어 걸렸다. 이렇게 변화가 생기는 건가보다. 달랏은 미세먼지가 없고 하늘이 맑아서 별이 엄청 보인다. 폭신폭신한 구름, 환상적인 분홍노을, 선명하게 빛나는 별들까지 하늘이 아름다운 곳이다.


아이폰 6s로 찍은 별
숙소 앞 오후 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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