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보름살기 21 : #달랏 #리엔크엉 국제공항 #리엔호아
호스트가 만들어준 아침을 먹고 마지막 날을 즐기러 나왔다. 오늘은 화창하지 않고 시야가 조금 흐렸다. 아마도 마지막이 될 이 거리를 천천히 걸어보았다. 다시 봐도 예쁜 달랏의 골목골목이다. 붉은 흙, 진한 초록의 밭, 현대식과 오래 된 건물들이 어쩌면 그리워질 수도 있겠다.
어라? 이 강아지들, 며칠 전에는 상자에 갇혀있던 애들인데 오늘은 밖에 나와있었다. 녀석들의 몸만큼 작고 좁은 상자가 혹시 집이었던 걸까? 밥이라도 열심히 먹고 있어 다행이다. 반갑고 놀라운 마음을 살짝 숨기고 다시 앞으로 향했다.
세 번째로 온 달랏 맹인마사지샵이다. Number 3인 핫스톤마사지 2시간짜리를 선택했다. 오늘은 샵이 바빠서 woman을 배정해줄 수 없다고 해서 남성 맹인마사지사에게 받았다. 몸이 풀리는 정도는 무난했다. 단지 중간에 갑자기 1분 정도 마사지를 안 하길래 뭔가 싶었는데 침대 옆에 있는 화장실 쪽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설마 변기 물 내리는 소리일까 했는데, 마사지가 재시작되자 조금 꾸리꾸리한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손 온도는 여전히 따뜻했다. 설마 소변 보고 나왔는데 손을 안 씻은 거야? 일하다가 중간에 화장실 간 거야 급하면 어쩔 수 없는 거라 쳐도, 나는 마사지사의 손이 좀 차가워도 청결한 게 좋은데?
안마 자체는 괜찮았지만 굉장히 찜찜한 상태로 마사지샵을 나왔다. 나중에 옆 베드에 백인 손님이 들어왔는데 엎드린 상태로 보니까 백인 해주시는 분은 익숙한 그 슬리퍼였다. 지난 시간 동안 나의 몸을 확실히 책임져주셨던 그 분께 받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사지 끝났더니 로비에 있던 직원 두 분이서 떡을 하나 주었다. 고맙다고 갖고 나가려 했는데 rainy라는 말이 들렸다. 20분 뒤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고 인사하고 나왔다. 몇 방울씩 비가 떨어지는 중이었고, 떡은 끈적끈적해서 손에 금방 묻는다. 맛은 고소했다.
날씨가 작별인사를 제대로 해주려는지, 떠나는 날이라고 아주 잠깐이지만 비가 쏟아진다. 한국은 12월 초 첫눈 이후로 눈 내리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때마침 대설주의보라고 했다. 눈 없는 겨울보다 여름이 좋아진 나지만, 눈만 온다면 여전히 여름보다는 겨울이 최고다.
택시를 타기 전, 나를 보내며 호스트가 "I will miss you, baby."라고 해서 "Baby?!"라고 답했다. 20대 후반이니 아기 소리 들을 일이 딱히 없어 반가워도 될 법한데도 호스트랑 많아봐야 띠동갑 차이일 것 같아서 영 어색했던 단어다. 그래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호스트분이 생생한 걸 보니, 나도 그분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다. 에어비앤비도 가끔 들여다보는데 지금은 더 이상 숙소를 안 하시는 것 같아 아쉽다.
호스트분이 공항 가면 먹을 거 없다고 콜택시기사한테 리엔호아 들렀다가 가주라고 해준 덕분에 4만 동으로 콜라랑 햄버거를 살 수 있었다. 리엔호아는 베트남 빵집 체인점이다. ‘여기 빵이 그렇게 맛있다는데 결국 못 가보나.’, ‘어차피 빵을 좋아하지도 않으니 괜찮겠지.’ 했는데 이렇게 마지막에 작은 지점에나마 들렀다 간다. 근데 맛은… 딱 보이는 만큼의 맛이 났다.
달랏공항인 리엔크엉 국제공항에 들렀다. 사이즈는 코딱지만하고 직원들이 친절하다. 콜택시 가격은 호스트분이 말한대로 정말 딱 20만 동이었다. 그랩 불렀으면 최대 51만 동이었는데 감사했다.
비행기는 15kg까지 위탁수하물 가능한 옵션이었는데 무게 재보니까 17kg 나와서 캐리어 열고 이것저것 뺐다. 다시 재봐도 16kg 쯤…. 뭘 더 뺄지 생각하고 있는데 직원분이 그냥 보내주셨다. 야호!
남성 직원분이 한국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하셨다. 그분한테 여권검사하고 통과해서 다른 직원이 여권을 한 번 더 검사헸디. 이후 신발까지 벗어서 기내수화물 통과하는데 손소독제가 걸려버렸다. 100ml 넘는 액체라 캐리어에 넣어야 하는데 깜빡했다.
손 소독하는 시늉하니까 직원이 "I know."라면서 다시 돌아가서 짐 맡기라는 눈짓을 보내는데 난 이미 캐리어를 부쳤으니까 그럴 수 없었다. 직원한테 "I will give you."라고 하니까 "Thank you very much!"라고 하셔서 유쾌하게 웃고 끝났다. 그분이 다른 직원분들한테 코리안 손소독제 얻었다고 자랑하는 걸 보았다.
구름이 최고였다. 온 세상이 하얘서 춥지 않은 아이슬란드에 여행 온 줄 알았다. 풍성한 거품 같기도 했다. 기체 뒤로는 노을이 뿜어졌다. 달랏이 내게 마지막까지 큰 선물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는 수미상관으로 이번 여행 시작 때 먹은 알탕을 그대로 주문했다.
집에 가는 버스에 탈 때부터 눈이 내리더니 중간중간 깰 때 보니까 창밖은 온통 하얀나라였다. 집 가서도 비록 눈송이는 작지만 밤까지 눈보라가 쳐서 좋았다. 베트남 나트랑과 달랏, 기대 안 했던 곳인데 굉장히 좋았다. 여행에서 받은 에너지로 앞으로도 잘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