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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Nov 08. 2023

[서평] 서사의 위기

# 스토리 중독시대


삶은 이야기다. 서사적 동물인 인간은 새로운 삶의 형식들을 서사적으로 실현시킨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이야기를 전제한다. 이와 반대로 스토리 텔링은 오로지 한 가지 삶의 형식, 즉 소비주의적 삶의 형식만을 전제한다... 스토리텔링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소비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야기, 다른 삶의 형식, 다른 지각과 현실에는 눈멀게 한다. 바로 여기에 스토리 중독시대 서사의 위기가 있다.


넘쳐나는 정보와 사건들 속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그 순간의 일시적 정보의 공유정도랄까? 아마도 우린 '의미'라는 가치를 잊어가는 것 같다. 대화를 하다가도, 생각이 필요한 주제는 환영받지 못한다. 단순한 정보 공유, 웃음거리, 사건에 대한 서술만이 말해진다. 이야기가 빌드 업되는 지루함을 견뎌줄 사람이 없다. 그런 이야기들이 고픈 나는 책과 이야기한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글로 풀어낸 이들과 공감하며, 중얼거리다 서평을 정리한다. 우리는 이야기가 부재한 서사의 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기억은 가까운 것과 먼 것을 전제한다. 경험한 모든 것이 간격 없이 현재로 존재한다면, 즉 가용한 상태라면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다. 체험한 것의 빠짐없는 재현은 이야기가 아니라 보고서나 프로토콜에 불과하다. 이야기하거나 기억하려는 사람은 많은 것을 잊어버리거나 생략할 수 있어야 한다. 투명한 사회는 이야기와 기억의 종말을 의미한다. 어떤 이야기도 투명하지 않다.


뉴스를 보다가 지금 우리의 삶이 너무 투명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올라왔다. 정치인이 될 것도, 고위 공무원이 될 것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의 감정으로 쓰인 나의 글을 증거로 한 인간을 쉽게 재단하고, 속단하고, 평가하고, 더불어 나의 가족까지 매도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글쓰기를 노트에 해야 하나?  ㅋ)


인간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다. 인간의 감정 또한 일시적이며, 생각도 바뀌어 간다. 그런 변화하는 과정이 인간의 삶이다. 너무 투명한 우리 사회는 수많은 디지털 정보로 인간을 억압하고 있다. 이는 양날의 검이다. 인간은 실수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니까. 이 책의 작가는 기억의 불완전성 덕분에 (잊어버리거나 생략할 수 있어야)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기억은 잊어버리거나 생략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만을 서술한 투명한 사건의 기록은 이야기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정보일 뿐이다. 너무나 매력적인 문장이다.




신 자유주의 체제의 기초가 되는 서사는 공동체 형성 자체를 방해한다. 신자유주의적 성과 서사는 모든 사람을 스스로 자기 자신의  기업가가 되게 한다. 모두가 다른 사람과의 경쟁 속에 존재한다. (중략) 모두가 스스로를 생산하고 스스로를 공연하는 곳에는 안정적인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는다.


우리는 넘쳐나는 SNS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SNS를 하지 않고서는 생활하기 힘들 만큼, 삶의 정보를 얻고 관계 맺음이 다양한 네트워크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 관계 맺음이 공허하다는 생각과 지극히 정보 위주의 파편적이며, 일시적임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허탈하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나만의 의미와 깨달음의 조각을 버무린다는 위안을 '스스로' 하면서도, 이 모든 행위가 무슨 가치가 있는지 혼란스럽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깊은 내면에는 경쟁과 성공이라는 두 글자가 꿈틀거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이의 대박스토리처럼 파워블로거가 되거나 크리에이터가 되거나 인플루언서가 되거나 하는... 내 안의 자본주의적 욕망과 타인에 대한 부러움 무의식 속에서 잠재되어 있는지도.


무엇보다 이런 파편적인 기록들이 정보일까 이야기일까 고민한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야기꾼인가? 스토리 텔러인가?



서사의 위기인 근대의 실존적 위기는 삶과 이야기가 산산이 와해된다는 데서 발발한다.

내면의 공허가 셀카중독으로 이어진 것이다. '나'에게는 안정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의미 제공이 결여되어 있다. 내면의 공허에 직면한 '나'는 스스로를 영구히 생산해 낸다. 셀카는 텅 빈 자기의 복제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과도하게 소통한다. 우리는 게시하고, 공유하고, 링크를 건다. 이 소통 없는 공동체는 공동체 없는 소통에 길을 내준다.


디지털화는 이러한 접촉의 결핍과 세계 빈곤을 계속해서 악화시킨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고립시키는 것은 늘어가는 연결성이다. 여기에 바로 파멸적인 네트워킹의 변증법이 존재한다.


일시적으로 소비되어 버리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우리가 정으로 불렀던 관계 맺음에 대한 아쉬움도. 눈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소통하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여러 세대가 뒤섞인 지금은 가치관의 혼란이 왔다. 어떤 관계 맺음을 해야 하는 건지 헷갈린다. 전화보다 메신저를 이용하는 후배들에게, 소통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다. 자꾸만 소통 없는 공동체가 되어가고, 그 자리를 사내 메신저방이나 단톡방에 공동체 없는 소통으로 길을 내어주고 있다. 연결되어 있으나 빈곤한 접촉으로 더욱 서로를 고립시키는 관계가 늘어가고 있다.




스토리는 서사가 아니다. 스토리, 즉 정보는 끊임없이 등장하는 다음 스토리로 대체되어 사라진다. 반면 서사는 나만의 맥락과 이야기, 삶 그 자체다.


결국, 우리의 외로움과 공허, 핵개인이 겪는 존재의 고립은 서사가 없는 초네트워크 사회가 빚어낸 결과가 아닌지 돌아본다.


지금 우리를 성찰하게 하는 훌륭한 책이다. 사회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삶을 풀어내고, 종종 고개를 갸웃거리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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