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소설은 늘 영적세계와 현실세계를 넘나들거나, 혹은평행세계를 넘나 든다. 그 매개체와 연결되는 스토리가 진부하지 않고 기발하다. 영적세계에 대한 표현이 직접적이지 않지만, 현실적인 느낌이 더 두렵고 무섭다. 태평양에서 갓 잡아 올린 참치처럼 신선하다.
하루키 소설은 하루키만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이 기발함은 하루키 전매특허다. 그중 하루키의 자아 찾기 시리즈를 좋아한다. <양을 쫓는 모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해변의 카프카>. 지금 읽어도 스펙터클 넘치는 소설들이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나온 '세계의 끝'과 연결되는 스토리다. 작가 후기에 보니, 1980년대 문예지에 기고했던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을 30년간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소설화시킨 것이라고 한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소설화했지만, 목에 걸린 가시처럼 온전한 그것만의 소설로 풀어내고 싶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주인공이 그림자가 없는 도시를 알게 되고, 그곳에 갈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빌드업된다. 결국 그 도시에 들어가 꿈을 읽는 이가 되고, 기존 소설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은 도시에 남고, 그림자는 다시 현실세계로 나간다. 기존 소설과 같은 느낌이다.
2부는 현실세계로 나온 그림자가 진짜 그림자를 가진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꿈과 현실과 평행세계가 혼재되어 전개되는 2부는 흥미진진했다. 육체를 갖은 사자(死者)인 고야스 씨와 천재 옐로 서브마린 소년은 역시 하루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였다.
주인공이 잘 나가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후쿠시마 시골 도서관장이 되어 생활하는 삶은 인생에 대한 무상함을 주었다. 읽으면서 차분해지고, 자본에 도취되어 사는 지금의 우리에게 던져주는 진한 메시지가 있달까? 시골의 풍경은 서정적이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3부는 옐로 서브마린 소년이 불확실한 벽을 통과해 그림자가 없는 주인공을 만난 후 합체되는 상상이상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리고 주인공은 다시 현실로 돌아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끝이 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서정적인 감정이 올라왔다. 칠순의 하루키가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묻어나는 느낌이랄까? 과거 소설에서 보여주던 역동성과 스펙터클은 사라졌지만, 오히려 삶에 대한 진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간 읽었던 그의 소설들보다 더 좋았다. 접어둔 글귀 몇 개...
진실이란 것은 일정한 어떤 정지 속이 아니라, 부단히 이행=이동하는 형체 안에 있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여기에는 시간이 무한히 있습니다.
말보다 숫자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사람은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 것, 한평생이래야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초연해진 느낌이다. 그의 작품을 떠올리면, 그저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나의 블로그에 기록해 둔 하루키 소설서평에 재밌는구절이 있어 옮겨본다.
하루키는 미래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 아니면 꿈을 파는 자? 그는 잠을 자면서 다른 세상을 다녀오는 건 아닐까?
어쩌면,
하루키가 말하고자 하는 인생이란, 호접몽과 같은 것인지 모른다. 꿈도 현실도 죽음도 삶도 구별이 없는 것. 우리가 눈으로 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사실이라 믿는 것, 그 모든 것이 한순간 만물의 변화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