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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Nov 04. 2024

달리기

# 나를 닮은 달리기

지난 9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언 2년째 해오던 요가는 절반도 가지 못하고 종료됐다. 평일저녁 정해진 두 타임을 맞추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요가. 올해는 여러모로 야근과 일정들이 겹치다 보니 갈 수가 없었다. 굳어가는 몸과 피폐해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선 뭔가 운동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밤 10시에 운동화만 신고 나가면 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동호회도 아니고 나 혼자 그냥 달리기 앱 하나 깔고서 앱에서 시키는 데로 달리는 거다. 처음 아무것도 모르고, 5분 인터벌 달리기 30분 하고 혼쭐이 난 이후 초급코스부터 시작했다.


두 달이 지나고, 세 번째 달이 시작한 요즘 30분 연속 달리기만 남겨두었다. 25분 쉬지 않고 달린 후 겁이 났다. 너무 힘들었다. 막상 달리기 시작하면 10분이 고비이다. 이 시점을 지나면 그냥 달릴 수 있는데, 특히 첫 5분은 너무 힘이 든다. 시작한 달엔 꼬박꼬박 주 3회를 달리다  인터벌 간격이 길어진 두 번째 달에는 주 2회를 달렸다. ㅎㅎ


오늘 겁먹은 나는 마지막 연속 30분 달리기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다시 5분 5회 달리고 1분 걷는 인터벌 달리기를 했다. 이젠 이 정도 달리기는 할 만한 체력과 지구력을 키웠다. 기특하다.


문득, 괴로운 심장을 손을 얹고 달래며 1분 걷기를 하다가... 나의 달리기가 나를 참 닮았구나 싶었다. 누구와 한 약속은 아니지만, 나와의 약속이 더 중요하다. 나에 대한 실망은 자괴감으로 다가와 나를 괴롭히니까. 꾸역꾸역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 안의 악마의 소리와 싸우며 집을 나서고, 달리는 내내 힘들면 걸어도 된다는 악마의 소리와 싸우며, 계획된 달리기를 잘 마치고 나면 안심이 된다. 만족감을 얻는다.


무엇보다 나의 욕망 즉, 악마의 소리에 굴하지 않고 계획되고 목표한 바를 한걸음 나아간 내가 가장 멋지게 느껴진다.  만족스럽다. 달리기는 정말 자신과의 싸움이다. 크루가 있다면 좋겠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싫어 그냥 혼자가 편하다


그러다 보니 자신과의 무던한 싸움이 되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안 한다고 벌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다. 이래저래 야근과 술자리 이후 이어지는 달리기는 정말 고통스럽지만, 나와의 약속을 지킨 나는 너무 대견하다.

 

그래서였던지 혼자 달리기는 인생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 자신만이 결정하고, 고통을 이겨내고, 한걸음 더 나아가는 나와의 끊임없는 밀당.


요즘 힘들면 뛰고 싶다. 달리기의 고통이 그날의 힘듦을  별것 아니게 느끼게 하니까. 달리다 보면 생각도 정리되고, 고통도 잊힌다. 달리는 게 더 힘드니까. ㅋㅋ. 뭐 겨우 30분 달리기에 이 호들갑이냐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걷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하나 없던 운동경력 제로의 저질체력인 사람에겐 큰 도전이었음을 양해하시어, 호들갑을 이해해 주시길.


벌써 겨울이 걱정이다. 참 달리기 좋았던 9월, 10월이었다. 또 방법이 있겠지. 답답하면 달려보시길.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순간 극한의 고통을 느껴보는 쾌락이 지금의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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