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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용 Dec 26. 2021

버르장머리 훈육

육아하는 아빠들을 위한 글



나는 예의를 중시한다. 옛날부터 아버지에게 밥상머리에서 그렇게 교육받았고, 나 스스로도 예의를 무척 중요시 한다. 그래서 아이가 생겼을때 좀 알아들을 만한 나이가 되면 그 예의를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절대 지켜야되는 나만의 육아 원칙을 고수했고, 훈육에 있어서 엄격하게 단호하게 했다고 생각했다. 예를들어 양치는 꼭 해야하는 것이고, 엄마를 때리면 혼나야하고, 위험한 물건을 만지면 절대 안되고, 이유없이 떼쓰면 안된다는 것들.

물론 위에 사례들이 당연한거 아닌가 생각할수 있으나 그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위험한 물건을 만지면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엄마 때리면 훈육의자에 가둔뒤 혼냈고, 양치를 안하면 강제로 시켰다. 이런 폭력적인 방식들이 문제였다.

나는 지금 이것을 매우 후회한다. 내가 엄격하고 단호하게 훈육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직 미숙한 아이한테는 그저 공포심과 자존감 상실만 줄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나도 역시 아빠가 처음인 부족하고, 미숙한 아빠였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게 있다. 아빠는 엄해야하고, 엄마는 인자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육아할때도 역할을 양분한다. 애 칭찬하고 돌볼때는 엄마가, 애 훈육하고 규칙을 가르쳐줄땐 아빠가. 이것은 좋지 않은 방식이다. 둘다 상황에 따라 엄하기도, 인자하기도 해야되는거지 애한테 Good Cop, Bad Cop이 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가장 우선적으로 육아의 원칙, 훈육의 원칙을 부부가 통일하고 정립해야 한다. 이것은 아이를 키우면서 첫째로 아이가 통일된 원칙들을 학습할 수 있게 해주며, 둘째로 애를 둘러싼 양육방식 차이로 인한 부부싸움의 원인이 줄어 든다.

예를들어 애가 밥먹는데 밥상에서 밥을 안먹고 장난친다. 아빠는 안된다고 하는데 엄마는 용인해준다면 이는 아이가 뭐가 뭔지 올바른 규칙을 배우지 못한다. 또 부부가 밥상에서 이런 문제로 애 때문에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통일된 육아원칙을 부부가 스스로 정하는것은 어렵다. 서로 의견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는 이 부분에서 엄마의 의견을 많이 따르되, 좀 아닌것 같은건 서적이나 방송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정립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육아하다보면 시간이 없다. 매일매일이 육아전쟁이다. 애한테 모든 힘을 쏟아붓기 때문에, 거기에 지쳐서 부부들은 서로에게 소홀할 수 밖에 없다. 서로 힘들단걸 알면서도 내가 당장 힘들기 때문에 상냥하게 말하는게 아니라, 싫은 소리가 나간다.

그래서 이 육아에 대한 대화를 하고 #부부육아원칙 을 정할 시간이 없다. 막상 저녁에 육퇴하고 시간이 되도 서로 피하거나, 서로 대화한다고 해도 힘드니까 짜증부터 내고 싸우게 된다. 그러면서 서로 멀어지고 육아에 있어서도 상대가 적군, 방해꾼이 된다.

부부는 육아전쟁을 같이 치루는 전우다. 서로 먼저 상대방의 힘듦을 이해하자. 내가 힘들어도 말부터 이쁘게 하도록 해보자. 배우자를 사랑해서 결혼하고 애도 낳은게 아닌가? 나는 애보고 있는데 쳐자빠져 있는게 꼴보기 싫어도 인내하고, 상냥하게 말하도록 해야 한다.

서로에게 매일 말해주자. "오늘도 너무 고생했고, 당신의 희생 덕분에 내가 행복하게 하루를 보낼수 있고, 항상 그렇지만 너무 사랑하고 너무 존경한다"고 해주자. 낮간지럽고 닭살돋더라도, 오늘 술먹었냐는 소리 듣더라도 계속 해주자. 도저히 말이 안나오면 카톡으로라도 해주자.

"한심한 놈아" 하면 점점 한심한 놈이되고, "잔소리 좀 그만해" 하면 점점 잔소리 더 한다. "애 좀봐줘 나혼자 낳았어?" 하면 점점 더 독박육아 하게 되고, "진짜 징글징글하다" 하면 점점 더 징글징글해진다. 너도 "그렇게 해서 대학가겠니? 공부좀 해라" 하면 하기싫었잖아. ㅋㅋ 말하는대로~ 알지? 말의 힘은 생각보다 무섭다.​

나는 저렇게 못했다. 그게 너무 후회스럽다. 물론 내 나름대로 육아에 열심히 동참했고 그부분은 와이프도 인정한다. 다만 내 훈육의 방식은 아주 잘못 돼있었다. 나는 그게 아이를 위한것이라 생각해 그렇게 아이를 혼냈었고, 나중에 밖에 나가 혼자 울면서 담배피웠다.

나는 옛날 아빠식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기 위한 육아를 해왔고, 나 역시 말 이쁘게 못하고 와이프랑도 점점 멀어졌다. 그래서 그때 감정의 골로, 세수를 리스하는 부부가 되었다. 둥둥이도 아빠를 보면 자꾸 화냈다. 뭔가 잘못됐음을 깨닳았다.

아이는 생각보다 어리숙하지만, 또 생각보다 똑똑하기도 하다. 아빠가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있고, 또 자식은 아빠를 더더욱 사랑하고 있다. 무섭게 하는 것과 단호한 것은 다르다. 화내는 것과 엄격한ㅇ것은 다르다. 그것을 구분할 줄 알고 훈육을 해야된다.

절대 화내지 않고, 절대 무섭게 하지 않는다. 나는 OO개월밖에 안되는 아기를 가르치고 있다. 아기는 계속 원칙을 알려주는 것이지, 화내고 협박하면 안된다. 말 안들어서 화나도 그걸 아이에게 표출하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 받았던 무서움을 내 아이에게 물려주면 안된다. 부정적인 단어를 쓰지 않는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계속 표현해주고, 훈육할때도 이것을 잊지 않는다. 내가 과거의 나에게 얘기 해준다면, 아이를 대할때 꼭 이렇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우리 아들은 52개월(5살) 이고, 아빠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때리면서 논다. 힘들다... 근데 의외로 밖에서는 예의가 바르다. 그냥 아빠를 패는게 하루의 낙인가 보다. 그럼 어떤가? 나는 애가 예의 없게 크는걸 경계했는데, 그럴 필요 전혀 없었다. 굳이 혼내지 않아도, 아빠가 사랑으로 대한 다면 아이는 결국엔 바르게 큰다.

아이는 부모가 아무리 부족해도 부모를 사랑한다. 아이는 절대 아빠의 손을 먼저 놓지 않는다. 알량한 자존심이나 고집으로 아이의 손을 먼저 놓지 말자. 아직도 난 미숙한 아빠겠지만, 아기의 버르장머리를 가르친다는 아빠들부터 생각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고 싶다.

아이는 버르장머리가 아니라 아빠를 배운다. 아빠가 가르치는 예의범절이 아니라, 아빠의 모습 자체를 보고 배운다. 아빠가 올바르고 예의바르고 가족을 사랑한다면, 아이도 그렇게 자랄것 임을 믿어 의심치 말라고, 나와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할 아빠들에게 훈육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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